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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제비가 둥지 틀었나요 ‘흥부네 집’으로 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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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제비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너무 귀엽고, 신기해요!”

지난 8일 서울 용두동의 한 주택가에서 전선에 앉은 제비들과 주택 처마 밑의 둥지를 확인한 풍문여고 학생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전래동화 속에서나 보고 시골에만 사는 줄 알았던 제비를 가까이에서 보고, 손에 닿을 듯한 제비 둥지를 관찰하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중구청소년수련관 환경동아리 ‘그린캐미’ 소속의 고등학생 10여명이 국립산림과학원 전문가, 서울시 공무원 등과 함께 용두동 골목길에서 제비 둥지를 찾아나선 이유는 제비 보호를 위한 ‘숨은 제비 찾기’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숨은 제비 찾기’는 서울 곳곳에 서식하는 제비를 확인하고, 보호·홍보하기 위한 활동이다. 이날 풍문여고 학생들은 제비 둥지가 확인된 주택에 ‘흥부네집’이라는 문패를 붙여주고, 배설물 받이를 설치하는 작업에 동참했다. ‘흥부네집’ 문패를 붙여주는 것은 주민들이 “제비가 찾아오는 복받은 집”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배설물 받이를 부착해주는 것은 제비 배설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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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용두동 골목길에서는 벌써 수년째 처마 밑에 제비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는 여러 집이 확인됐다. 골목길 건물 처마의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도 제비 둥지가 발견됐다. 10여마리의 제비가 전선에 앉아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폭염으로 낮 기온이 32~33도를 오르내리던 날이었지만 학생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숨은 제비 찾기’에 동참했다. ‘흥부네집’ 문패는 컴퓨터 모니터, 배설물 받이는 지하철 광고판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사회적기업 ‘터치포굿’이 버려지는 물건을 재활용해 다시 가치를 부여한 이른바 ‘업사이클링’ 제품이라는 점에서 학생들은 더욱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풍문여고 2학년 윤원서양(18)은 “빌라 입구에 제비 둥지가 있었던 집에서 배설물 때문에 불편할 텐데도 제비집을 없애지 않은 채 공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며 “배설물 받이를 달아주면서 조금이나마 제비와 사람들의 공생에 도움을 준 것 같아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대체로 자신들 집에 제비가 둥지를 트는 것을 반기고 있었고, ‘흥부네집’ 문패를 달아주는 것도 기쁘게 여기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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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한 주택에서 주민들이 서울시와 국립산림과학원 등이 제공한 ‘흥부네집’ 문패를 달고 있다. 김기범 기자


서울의 제비 서식지는 용두동만이 아니다. 산림과학원과 서울시가 집계한 서울 내의 제비 서식지는 모두 56곳으로, 확인된 개체 수는 650개체 정도이다. 주로 서울숲이나 중랑천 등 호수, 하천이 가까운 지역에서 많이 확인되고 있다. 서울 곳곳에서 제비가 눈에 띄던 1980~1990년대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아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닌 셈이다.

제비의 주택가 서식은 주민들의 기분을 좋게해주는 상징적인 의미뿐 아니라 실질적인 혜택도 준다. 국립산림과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제비 한 마리가 하루 잡아먹는 곤충의 수는 20~30마리로 5~9월 사이 잡아먹는 해충의 수는 약 5만마리가 넘는다. 산림과학원 박찬열 박사는 “둥지 재료인 진흙을 얻을 수 있는 하천 주변 지역에서 주로 제비들의 모습이 확인된다”며 “용두동에는 거실 안에 제비가 둥지를 트는 바람에 집 안에서 사람과 제비가 공생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민들의 도움이 없다면 서울의 제비 수는 더욱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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