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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좀비상륙작전’ 임무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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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좀비영화의 매력 뭐기에…

생존위기 사람들 갈등·대립이

관객들 눈뗄 수 없게 만들어

재난대처 못하는 정부권력 비판 등

웹툰 주요 소재로 등장하기도

“영화 ‘부산행’ 성공땐 국내에도

좀비영화 본격 뿌리내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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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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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꽉 차는 날, 죽은 자들이 땅 위를 걸을 것이다.”(조지 로메로 감독의 1978년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새벽> 대사 중)

좀비(zombie)는 아프리카 앙골라 북서부에서 사용하는 킴분두어로 ‘망자의 넋’을 뜻하는 ‘은줌베’(nzumbe)에서 파생된 단어다. 흑인 노예와 함께 카리브해 지역에 퍼진 ‘부두교’ 무당들이 주술로 만들어낸 ‘시체 같은 사람’을 뜻하던 좀비는 ‘좀비 영화의 아버지’ 조지 로메로 감독을 통해 공포영화의 캐릭터로 재탄생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었다 살아난 좀비는 산 사람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좀비에게 물리면 그 역시 좀비가 된다. 어떠한 대화도 불가능한 잔인한 살육자들. 뇌를 파괴하는 것만이 대체로 좀비를 영원히 잠재우는 방법이다. 이것이 로메로가 고안해낸 좀비 영화의 전형이다.

블록버스터 좀비 영화 <월드워Z>(2013)의 원작자인 맥스 브룩스는 “그들은 전염병이고 인류는 그 숙주다”라고 말했다. 지구상에 한 명의 인간도 남겨놓지 않겠다는 듯 숫자를 불려나가는 좀비는 그 자체로 공포다.

좀비물이 장르로 정착한 서양과 달리 한국은 오랫동안 ‘좀비 청정 지역’이었다.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좀비물’로 부를 만한 작품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의 흥행이 이례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개봉 닷새 만인 24일 관객 500만명을 돌파(배급사 NEW 집계 기준)하며, 온 나라 영화관을 비명 소리로 물들이고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좀비들의 한반도 대침공을 맞아 좀비와 관련한 알짜 정보를 총결집해본다. 암암리에 활동 중인 ‘좀비 덕후’들이 입을 열었다. <부산행> 이전에 좀비와 함께 찾아왔던 작품들도 살펴본다. 좀비, 그 공포의 매력 속으로 조심스레 첫발을 디딘다.

한번 빠지면 약도 없는 좀비물 “수많은 인파 속을 헤치며 걸어봤다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본 적 있을 것 같아요. ‘이 많은 사람들이 좀비라면 어떻게 하지?’” 좀비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의 주동근 작가는 ‘좀비 덕후’다. 각종 재난물을 다 좋아하지만 좀비물은 그중에서도 “오락성이 최고”란다. ‘과연 나는 영웅처럼 사람들을 구할까, 집 밖을 나오지 않는 현실주의자가 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된다’는 그는 영화 <28일 후>(2002)와 <새벽의 저주>(2004)를 본 뒤 아예 좀비물을 직접 그리기로 작정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내기 위해 학교라는 폐쇄적인 장소를 선택한 그는 좀비보다 더 혐오스럽고 무서운 것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좀비만 피한다고 살아날 장담이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좀비물의 매력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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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를 소재로 한 주동근 작가의 웹툰 ‘지금 우리 학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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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편에 달하는 좀비물을 섭렵한 온라인 쇼핑몰 ‘펀샵’ 에디터 한상현(30)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미드 <워킹데드>를 예로 들었다. “<워킹데드>가 진행될수록 좀비 비중은 점점 줄어든다. 생존의 극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갈등과 대립이 되레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힘이다.”

연상호 감독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부산행>을 준비하며 웬만한 좀비 영화는 다 봤다는 그는 좀비와의 사투 못지않게 기차 안 인물들의 심리를 그리는 데 고심했단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기차 안은 ‘우연과 운에 의해 악인 또는 선인이 되기도 하는 세상’인데 여지없이 좀비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등장한다.

‘호러 매니아’ 블로그 운영자 류길웅(37)씨도 ‘좀비 덕후’다. 그는 어릴 적 우연히 조지 로메로 영화를 접한 뒤 매료돼 이제껏 약 150편 정도의 좀비물을 봤단다. 그로테스크한 장면도 거뜬히 소화해내는 마니아다. 그가 본 <부산행>은 어떨까. 그는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잔인한 고어 장면은 배제했지만 좀비 분장만큼은 마니아로서 꼭 칭찬하고 싶다”고 말했다. B급 좀비물에서 눈덩이를 시퍼렇게 칠하고는 좀비라고 우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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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어떻게 진화했나 영화에서 처음으로 ‘좀비’라는 단어가 등장한 영화는 빅터 핼퍼린 감독의 <화이트 좀비>(1932년)다. 이른바 ‘부두 좀비’로 주술사의 약에 의해 영혼을 지배당하는 노예로 그려진다. 공격성은 이후의 좀비들에 비하면 매우 낮다.

‘좀비’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지만 ‘좀비물의 교과서’가 된 영화도 있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3부작’이다. 2탄 격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새벽>에서 청록색 얼굴빛을 띤 좀비들은 비록 걸음걸이는 느리지만 계단·사다리를 올라가거나 막대기 등의 도구를 사용하며 생존자의 목숨을 위협한다. 여전히 좀비 사태의 원인은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좀비들은 살아 있을 때 중요한 장소였던 쇼핑몰로 끊임없이 몰려드는데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하던 소비주의에 대한 은유라는 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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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좀비’로 눈길 끈 영화 ‘웜 바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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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좀비물’의 일대 혁신을 부른 작품은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 후>다. 어기적거리던 모습을 탈피, 이른바 ‘뛰는 좀비’ 시대를 열었다. 초자연적인 원인 대신 ‘분노 바이러스’라는 구체적인 원인을 제시해 리얼리티를 살리기도 했다. 이후 <새벽의 저주>(2004)를 비롯해 수많은 B급 아류작에서도 ‘뛰는 좀비’를 내세웠다.

‘똑똑한 좀비’도 나왔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랜드 오브 데드>(2005)에서는 인간의 ‘학살’에 분노한 좀비들이 반격에 나선다. 감정 표현도 하고, 리더가 무리를 이끌기도 한다. <웜 바디스>(2013)는 ‘로맨틱 좀비’를 다룬다. ‘여자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남자좀비’는 ‘의식을 가진’ 존재다. 연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은 좀비와 사람 사이의 거리를 크게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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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류멸망보고서’에서 ‘고등학생 좀비’로 출연한 배우 마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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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을 가능케 한 작품들 마동석은 <부산행>에서 인간들의 가장 핵심적인 병기 그 자체다. 위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드’ 따위와는 비교 불가인 전투력을 장착하고 막판까지 좀비 퇴치의 최전선에 선다. 그런 마동석은 이전에도 좀비물에 출연한 적이 있다. 2012년 개봉한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멋진 신세계’ 편에서 ‘좀비’로 등장했다. 무려 ‘고등학생’ 불량배 출신이다.

이 외에도 한국에선 <어느날 갑자기>(2006) <이웃집 좀비>(2010) <좀비스쿨>(2014) 등의 영화와 2011년 방송된 일요 단막극 <나는 살아있다>(문화방송)가 좀비를 소재로 삼았지만 대중적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웹툰에서는 꽤 많은 좀비물이 나왔다. 주독자층이 좀비에 익숙한 10~20대인데다, 영화처럼 제작비에 구애받지도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 이외에 강풀의 <당신의 모든 순간>, 모래인간의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이은재의 <1호선> 등이 대표적이다. 생존자가 남아 있는 도시에 치명적인 가스를 살포하는 정부의 행태(<지금 우리 학교는>) 등 현실을 꼬집는 듯한 내용들도 자주 등장한다. 주동근 작가는 “뉴스를 통해 본 것들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서 재난이 닥치면 이런 일들이 생기겠구나’ 하는 것들을 정리해뒀다가 웹툰에 녹여냈다”고 말했다.

‘한국형 좀비물’ 미래 열릴까 <좀비사전>의 저자이기도 한 영화평론가 김봉석은 <부산행>에 대해 “대중들이 받아들일 만한 수준에서 좀비물의 기본적 특징을 제대로 갖추고 있다. 기차 안을 한국 사회의 축소판처럼 그려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도 성공했다”고 평했다. 그는 <부산행> 성공 땐 한국에서도 좀비물이 본격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당장 블록버스터급 좀비물이 다시 나오진 않아도, 작은 규모의 공포영화 여러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선영은 <부산행>이 <연가시>(2012) <감기>(2013) 등 ‘감염재난물’의 유행 안에 있다고 본다. 그는 “원래 좀비의 속성은 탐욕의 극대화다. 신자유주의 시대 물성화된 인간을 은유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이 은유에다 ‘메르스 사태’ 등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이 더해진다”고 분석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참고 도서 <좀비사전>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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