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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아버지 전사를 인정해달라"...딸의 고독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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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전쟁 당시 '지게부대'라고 아십니까?

전쟁터에서 군인들의 탄환과 보급품 등을 지게로 나른 짐꾼, 노무자였는데 군번이나 기록이 없이 징발된 민간인 참전자인데요.

이렇게 지게부대로 전쟁에 끌려갔다 숨진 한 남성의 딸이 아버지의 전사를 인정받기 위해 10년 동안 정부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박조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1951년 3월.

정 씨들만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에 평범한 농사꾼 한 명이 살았습니다.

어여쁜 부인과 다섯 살배기 딸, 그리고 한 달 뒤면 태어날 둘째를 기다리는 평범한 가장이었죠.

그의 이름은 정문채, 마을에선 ‘기수'라고 불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

행방불명된 것은 문채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마을의 다른 정 씨 2명도 함께 자취를 감춘 겁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사라졌던 남자 중 두 명이 다시 마을로 나타나면서, 정문채 씨의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정판병 / 전북 고창군 해룡리 주민 (당시 15살) : 정창주 씨(생존자)가 앉아서 노상하는 이야기가, 어느 날 세 명이 군인들의 짐을 짊어지고 생막골(생촌리)에 갔는데 한 분은 (총소리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자기는 무서워서 여기로 도망 와 버렸고, 그 분은 그 길로 돌아가셨다고.]

공비 토벌 작전을 가던 군인들이 마을에서 제일 건장한 남자 3명을 짐꾼으로 차출해 옆 마을 장성으로 데려 갔고, 갑자기 벌어진 총격전에 두 명은 도망쳤지만 문채 씨는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는 것.

이것이 사람들이 기억하는 문채 씨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기리며 올해도 떠들썩하게 치러진 호국보훈의 달 마지막 날.

철도길 옆 판자촌에서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전쟁터에 갔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은 농사꾼 정문채 의 딸, 정금임 씨입니다.

[정금임 / 6·25 전쟁 유복자 : 식모살이도 했고 노점 장사도 울기도. 저쪽에 야채 시장 있을 때는 정금임이는 울보여 울보.]

아버지 명예를 찾고 합당한 보상을 받기로 결심한 건 10년 전인 2006년.

하지만 노무자였던 아버지 역시, 군번이나 기록 등, 증거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울보 금임 씨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2012년, 국방부가 아버지의 전사 여부를 직접 조사하고 나선 겁니다.

[정금임 / 6·25 전쟁 유복자 : 내가 잊어버리지도 않아. 거기서(국방부에서) 지역(고창)을 싹 쳐다봤어. 국방부에서 나온 사람들. 방에 들어와서 어른들 모셔놓고 하는데 타자 치면서 (조사하더라고.)]

그리고 3년 만에 나온 최종 보고서.

금임씨의 아버지 정문채 씨는 노무자 신분으로 전쟁터에 끌려갔고, 장성 생막골 인근에서 공비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는 결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믿을 수 없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육군 본부가 상급기관인 국방부의 조사 결과를 뒤집고, 정문채 씨가 전쟁터에서 숨진 것이 확실하지 않다고 판단한 겁니다.

사망을 목격한 증인이 한 명밖에 없고, 그마저 너무 고령이라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는 이유였습니다.

[정금임 / 6·25 전쟁 유복자 : 자기네들이 조사했잖아. 조사하고 통보했으면서 이제 와서 인정을 왜 안 해주느냐 이거지. 여기 서류가 다 있는데.]

[정금임 / 6·25 전쟁 유복자 : 아빠! 정문채! 정금임 딸이 왔어! 그런데 어째 아빠는 대답도 없어…. 영혼이 있으면 나한테 와서 안아주던가. 아버지 보고 싶어 미치겠어. 아빠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YTN 박조은[joeun@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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