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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개발자는 누구를 위해 야근하는가… 한국 게임업계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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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관행과 시각’의 실태… 규제 대상으로 보지 말고 불합리한 이윤 구조 고쳐야



경향신문

7월 21일 오후 11시 판교 테크노벨리에 입주한 게임회사 건물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 박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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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은 후 일을 쉬고 있는 전직 게임개발자 이소현씨(33·가명)는 8년간 몸담았던 게임업계로 돌아가는 대신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다. 이씨는 온라인 게임의 그래픽 업무를 담당하다가 지난해 5월 출산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뒀다. 모바일 중심으로 게임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이씨의 입지도 흔들렸다. 화려하고 웅장한 그래픽보다는 단순명료한 그래픽이 선호받았고, 회사 경영진은 그래픽 인력을 줄이기를 원했다. ‘임신한 여직원’인 이씨는 더욱 부담을 느꼈다. 업계에 남더라도 야근이 잦은 업무 특성상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여성 개발자’로서 넥슨이 이용자들의 원성에 떠밀려 최근 페미니즘을 지지한 여성 성우와 계약을 해지한 사건을 접하고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씨는 “막막하지만 게임업계로 돌아갈 자신도 없고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게임업계는 다양한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품을 만한 ‘돈’도 ‘문화’도 없다는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온통 휴대폰을 보며 게임하는 사람들 일색인데, 소비자들이 내는 돈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모두들 게임을 하는데도 게임업계는 죽어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 11월 국내 게임시장의 규모를 2014년 기준 9조9706억원으로 집계했다. 3년 연속 정체상태다. 게임개발 종사자 수는 3년 연속 줄었다. 2012년에는 1만명 가까이 감소했다. 그럼에도 수출액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업계가 그만큼 종사자들을 갈아넣어서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계가 왔다”고 말했다. 해외 대작 게임이 이용자들을 사로잡는 반면, 시장을 뒤흔드는 국내산 게임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 게임벤처의 대표 주자였던 넥슨의 김정주 대표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이에서는 ‘정경유착’ 의혹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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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들은 게임업계는 정글 상태인데, 정부와 업계 모두 ‘낡은 관행과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게임업계가 당면한 문제로 꼽았다. 게임을 규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과 속도전으로 수익을 내려는 방식, 불합리한 이윤 분배 구조가 대표적이다.

게임기획자로 일하는 정현우씨(36·가명)는 최근 유럽의 업체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깜짝 놀랐다. “한국에서 한 달 안에 결정하라고 할 사안을 1년 4개월이나 주더라구요.”

게임 등 IT업계의 독특한 노동행태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적으로 IT 붐이 불었을 때 독일에서 예티족(Yettie)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젊고 기업가적이며 기술에 바탕을 둔 엘리트라는 의미였다. 개발과 창작에 보람을 느끼며 자발적인 주말근무나 밤샘근무도 마다하지 않는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등이 해당됐다. 주어진 임금을 지급받는 기존의 노동자들과 달리, 재능을 발휘해 획기적 개발에 성공하면 커다란 인센티브를 받는다는 점도 예티족들의 자기계발 욕구를 자극했다. 예티족은 막연한 찬양의 대상이 아니었다. 독일 켐니츠공대의 귄터 보스 교수(사회학)는 “예티족은 자신을 하나의 상품으로 팔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근로자”라고 정의했다. IT경제에서 노동자들이 기업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경쟁에 내몰릴 것에 대한 우려였다.

한국의 개발자들은 ‘예티족’과도 다르다. 창작에 보람을 느끼는 성향과 끊임없는 자기계발의 압력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인센티브를 지급받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게임 제작은 크게 외주, 하청, 퍼블리싱 세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게임업계에 존재하는 독특한 행태는 ‘퍼블리싱’이다. 개인 혹은 팀으로 이뤄진 프로그래머 집단이나 제작업체가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내면 보다 자본력이 큰 업체가 이를 사들여 홍보, 마케팅, 유통 및 향후 서비스를 담당한다. 게임회사 하면 언뜻 떠오르는 넥슨, 넷마블, NHN엔터테인먼트, 네오위즈 등의 업체들은 많은 경우 퍼블리싱 형태로도 게임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퍼블리싱 업체들은 다시 스토어사업자나 다음카카오 등 플랫폼 업체를 상대로 게임을 판다. 업계에서 ‘채널링’이라고 한다. 자본 없이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는 집단이 새로운 것을 생산해내고 원활하게 자금을 조달받을 수 있도록 형성된 국제 IT 생산방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게임 관련 업계 간 이익 분배 비율은 어떻게 될까.

국내에서 통용되는 룰은 7대 3 법칙이다. 어떤 게임으로 100만원의 이익이 났을 때 30만원은 앱스토어, 구글플레이, 올레게임 등이 가져간다. 남은 70만원 중에서도 다시 7대 3 원칙이 적용된다. ‘애니팡’ 등 카카오톡 기반 게임의 경우 브랜드 사용료 개념으로 다시 70만원 중 30%(21만원)를 가져간다. 총수익의 절반도 안 되는 49만원으로 다시 퍼블리싱 업체와 실제 개발자들이 분배한다. 개발과정에 외주나 하청 형식으로 참여한 업체들도 이 ‘49만원’ 안에서 지분을 갖는다. 퍼블리싱 업체와 개발사 간, 그리고 외주와 하청업체 소속 개발자들 간에 나눠야 할 ‘공정거래 관행’이나 ‘표준계약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 사무국장은 “퍼블리싱 업체와 개발사 간 이익 배분 비율은 천차만별이다. 8대 2의 경우도 있고 9대 1의 경우도 있다. ‘마지널 개런티’라고 추가수익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야 해당 인센티브를 받도록 하는 관행도 있다. 게임 생산과정에서 초기에 비용을 투자하는 집단은 개발자인 만큼 개발자의 손해가 크다. 게임은 대박 나도 개발자는 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회사를 팔 때 가치를 크게 쳐 주거나, 추가 수익의 지분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창작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관행화돼 있는데, 국내 업계에는 이런 점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다음카카오 관계자도 “채널링에 대해서는 30%를 가져가는 것이 업계의 관례다. 최근에는 퍼블리싱에도 나서고 있는데, 퍼블리싱은 경우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퍼블리싱 업체는 완성된 게임을 사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게임 개발과정에도 참여한다. 향후 서비스 등을 퍼블리싱 업체들이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지만 “정도가 심하다”고 개발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하청과 다름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게임기획자 정씨는 “많은 사람들이 창의적인 일을 기대하고 게임산업에 뛰어들지만 실제 일하면서 내가 자유로운 창작자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퍼블리싱 업체들의 간섭이 심한데, 대부분 납기일을 맞추고 빨리 빨리 하라는 독촉”이라며 “창의적 결과물은 좀 휴식도 갖고 여유도 있을 때 가능한데 그렇지 못하다. 한국의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전쟁처럼 속도전으로 일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퍼블리싱 업체들이라고 해서 상황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한빛소프트, 조이맥스, 소프트맥스, NHN엔터테인먼트, 위메이드 등 10개 업체는 지난해 상반기 영업적자를 냈다. 한국 게임산업의 ‘허리’에 해당하는 업체들이다. 이들 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녹록지 않다. 김민성씨(30·가명)는 국내 유명 게임회사에 입사했다가 1년 2개월 만에 그만뒀다. ‘살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회사에 다니는 동안 밤 11시 이전에 퇴근해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게임은 개발자뿐 아니라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어야 서비스가 유지될 수 있다. 국내 게임업계에서 고객 응대 및 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은 전체 게임산업 인력의 7.7%, 전산 및 보안 등 시스템 유지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은 5.5%에 불과하다. 김씨는 “개발이 ‘공격’이라면 내 업무는 ‘수비’에 해당한다. ‘수비형 업무’는 잘하는 것은 티가 나지 않지만, 잘못하면 큰 불편과 고객들의 항의를 초래한다. 항상 집중해야 한다.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이 점은 근무에 고려되지 않는 데다,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초과근무를 밥먹듯이 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 게임회사의 39세 팀장이 휴가 첫날 돌연사해 업계에서는 ‘과로사’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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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게임을 하는데도 게임회사는 허덕이고 개발자는 정당한 대가를 못 받고 있다.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이 이 현상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 게임종사자들의 주된 의견이다. 2012년은 국내 게임산업이 변곡된 해다. 시장규모가 정체되고, 수출증가율이 크게 둔화하고, 종사자 수가 감소한 것도 모두 2012년을 기점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자정 이후 미성년자의 온라인 게임을 차단하는 강제 셧다운제가 전면 실시된 이후다. 김 사무국장은 “게임중독 방지 차원으로 실시된 셧다운제는 게임업계에서 중소기업의 몰락과 산업적 편중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우선 셧다운제로 인해 10대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기존의 MMORPG(역할 게임)가 큰 타격을 입었다. 10대 이용자들이 빠져나가더라도 성인 이용자들이 훨씬 더 많이 있는데 어째서 타격이 발생할까. 셧다운제를 시행하려면 차단시스템을 만들어 상시적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중소기업에는 이 시스템의 유지·운영이 큰 부담이다. 셧다운제는 온라인 게임에만 적용되고 모바일 게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점은 셧다운제가 실질적 게임중독 예방 효과는 없고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의 근거로 지적됐다. 자본력이 부족한 업체들은 줄줄이 ‘온라인 게임’을 접고, 모바일 게임으로 뛰어들었다. 그 결과 모바일 시장이 갑자기 포화상태가 되고, 경쟁이 더 치열해지며 수익률이 낮아진 것이다. 여기에 ‘클래시 오브 클랜’이 가세하며 모바일 게임시장은 더 혼돈의 도가니가 됐다. 클래시 오브 클랜은 TV광고를 하는 등 마케팅 비용에 100억원을 써 게임업계의 마케팅 전쟁에 불을 붙였다.

김 사무국장은 “PC 게임이 쇠퇴하고 모바일 게임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는 것은 예견된 전망이었지만, 셧다운제로 인해 한국은 그 변화가 너무 급하게 발생했다. 산업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경쟁도 치열해지니, 게임회사들은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보다 성공이 검증된 게임을 최대한 많이 양산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짠다. 외주·하청·개발업체들을 독촉하고, 개발자들을 들볶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여기에 계약, 외주 등으로 분할된 게임산업 노동자들은 더욱 대응하기가 어려워지고 노동조건은 나빠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게임 속 이미지에 대한 사회적 책임, 차별문제 등을 생각할 여유는 더욱 없다.

게임산업이 창조와는 거리가 먼 박리다매와 속도전이라는 과거식 성장방향으로 내몰리면서 개발자들을 포함해 사회가 그 부작용을 떠안는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넥슨 사건에서 충격적인 부분은 회사가 성장해 개발자에게 이익을 분배할 시점에 정경유착을 택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문화비평가 최태섭씨는 “국내 게임은 외국 게임에 비해 사람의 마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돈을 쓰더라도 게임을 재밌게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확률형 아이템 등 게임을 지속하기 위해서 강제로 돈을 쓰게 만든다”고 말했다.

게임산업에 필요한 것은 시장질서를 바로잡는 규제다. 정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유일하게 게임과 관련한 공약을 냈다. 셧다운제를 폐지하고, 게임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표준계약법을 도입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7월 18일 게임문화 진흥계획을 발표하면서 셧다운제를 ‘부모의 희망에 따라 게임시간 선택제로 대체할 수 있도록 완화’ 하겠다고 밝혔다. 게임회사 출신으로 공약을 설계한 유성민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 부위원장은 “한국 게임정책은 게임을 유해매체로 지정해 규제하는 정책이나 수출정책밖에 없었다. 셧다운제 폐지에서 나아가 공정한 산업생태계나 노동에 대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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