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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리포트+] 생매장·돌팔매·화형이 '명예로운' 살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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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만두라는 협박을 받더라도, 나는 싸울 것이며 다시 일어설 것이다’

지난 15일, 파키스탄에서 SNS 스타로 알려진 26살 찬딜 발로치가 본인 계정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이 여성은 글을 올린 날 파키스탄 중부 도시 물탄의 부모 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파키스탄 경찰 대변인은 그녀의 부모로부터 발로치의 오빠가 자고 있던 그녀를 살해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이나 친족이 다른 가족 구성원을 살해하는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된 것이죠.

찬딜 발로치는 평소 페이스북 계정에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려왔습니다. 최근에는 파키스탄과 인도 크리켓 경기에서 파키스탄이 승리하면 누드 동영상을 올리겠다는 공약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보수적인 이슬람 관습을 가진 파키스탄 사회에서 발로치의 행동은 비난 받아왔습니다.

지난 6월 파키스탄에서는 명예살인으로 화형을 당하는 사건이 3건이나 발생했습니다.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하거나, 결혼 제의를 거절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유엔인구활동기금(UNPFA)에 따르면 매년 전세계에서 명예살인으로 희생되는 여성은 5,000여명으로 추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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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살인이 대체 뭐길래…

‘명예살인’이란 이슬람 국가와 파키스탄, 요르단, 터키 등 서남아시아권 국가에서 자행돼온 관습입니다. 명예살인은 가족 구성원 중 정조를 잃거나, 간통을 저지른 사람 또는 이슬람교를 배교하고 타종교로 개종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 때문이죠. 가족을 비롯해 마을 공동체 구성원이 살인 행위에 나섭니다. 대상은 주로 여성으로 그 방법도 생매장, 돌팔매질, 화형 등으로 매우 잔혹합니다.

명예살인이 주로 이슬람 국가에서 자행되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은 명예살인의 원인을 종교적 영향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종교 전문가들은 이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입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에서는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왜 명예살인이 코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일까요? 바로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문구 때문입니다. 명예살인은 코란의 문구를 남성이 여성을 처벌할 수 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만들어진 악습의 산물인 것입니다.

● 아내 체벌을 허용하는 입법까지…

명예살인 제도를 없이기 위해 요르단에서는 1999년 국가 위원회가 설립됐습니다. 4개월동안 15만 4천여명이 명예살인 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죠. 그러나 당시 요르단 하원은 법 개정에 반대했습니다. 명예는 아랍 남성에게만 해당되며, 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2002년 12월, 요르단 정부는 명예살인을 한 사람에게 사형 등 중형을 선고하지 못했던 법률을 개정하고 명예살인을 정당화할 수 있는 법조항도 삭제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명예살인은 종교적 신념이라는 탈을 쓰고 버젓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가정의 여성을 이유 없이 살해하고 명예살인이라고 주장하는 폐해까지 생겨나고 있죠.

발로치가 살해된 파키스탄에서는 명예살인을 ‘카로카리(karokari)’라고 부릅니다. 파키스탄 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을 당한 여성은 1100명에 달합니다. 파키스탄에서는 아내에 대한 체벌을 허용하는 입법도 추진 되고 있습니다. 최근 파키스탄의 ‘이슬람 이념 자문위원회’는 남편이 아내를 체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법안의 내용은 아내를 체벌할 수 있는 경우를 상세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명령을 거부하거나 원하는 복장을 하지 않으면 아내를 체벌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 사유 없이 부부간 성관계를 거부하거나, 생리 중에 목욕을 하지 않는 것도 체벌 사유에 해당합니다. 지나치게 큰 소리로 말하거나 낯선 사람과 대화하고, 히잡을 착용하지 않아도 남편은 아내를 체벌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 이념 자문위원회 무함마드 칸 시라니 의장은 “여자를 벌할 필요가 있다면 가벼운 구타는 허용돼야 한다. 두려움을 주려면 작은 막대기가 필요하다.”며 체벌의 강도까지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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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살인, 왜 계속 반복되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슬람 국가에서 명예살인이 자행되는 이유를 가부장적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여성을 자산으로 취급하고, 가족이나 마을 공동체라는 집단의 명예를 개인의 생명보다 우선시 하는 것이죠. 또한 일각에서는 명예살인이 자행되는 문화권 여성들의 부족한 자의식을 명예살인의 원인 중 하나로 봅니다. 가족의 명예를 지키려면, 스스로의 목숨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명예살인에 대한 처벌이 가볍다는 점도 큰 문제입니다. 요즘에는 명예살인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비난 받는 상황이 늘고 있지만 과거 피해자들은 신고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파키스탄에서는 명예살인을 가족 내부의 문제로 규정해 고의적인 살인 행위로 보지 않습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파키스탄 법에서는 기소된 범죄자가 ‘피 묻은 돈(blood money)’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자의 가족이나 친척에게 위자료를 지불하면 법적 처벌 없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프가니스탄도 법으로 명예살인을 금지하고 있으나, 가해자는 최대 2년 밖에 형량을 받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보복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죠. 2년 간 명예살인 위협을 피해 도망쳐 다닌 아프가니스탄 한 커플이 지난 5월 뉴욕 땅을 밟았습니다. 인권 단체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인도적 임시 입국 허가’로 90일 비자를 받은 그들은 미국에 망명을 신청할 계획입니다.

그들이 미국 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명예살인의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우리는 신의 뜻에 따라요. 아프가니스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어요. 미국에 가면 최소한 생명의 위협은 느끼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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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구성 :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윤영현 기자 yoo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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