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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과학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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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 과학의 가치

한겨레

지난 15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이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은하의 모습(사진 왼쪽)을 공개했다. 지구에서 3억 광년 떨어진 이 은하는 해마다 수백개의 별을 생성시키는 ‘스타버스트’ 은하다. 저 은하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과 문명이 존재하고 있을까? 오른편 십자로 빛나는 것은 우리은하에 존재하는 별이다.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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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과학을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내 삶이나 생각과는 일체의 관련도 없는 딴 세상의 이야기라 생각하시나요? 자동차나 텔레비전, 스타크래프트, 스마트폰 같은 과학기술을 떠올리시나요? 과학은 결코 고답적 학문이나 생활에 유용한 기술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과학은, 우리가 가진 경험적 한계로부터 우주적 보편성으로 우리의 시각을 확장시키는 깨달음 같은 것입니다. 과학의 도움 없이는 경험할 수 없는 경이로움에 과학의 진면목이 있습니다.

“과학이 대체 뭐냐”는 질문을 간혹 받을 때가 있다. 그 답이야 우리 모두 교과서에서 이미 오래전에 배웠다.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이론을 정립, 증명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해서 물질 세상의 법칙을 최대한 정확하게, 세밀하게 알아내려는 것이 또한 과학의 목표라고도.

하지만 나 자신도 그랬듯이, 이런 설명들로는 과학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받을 수 없다. 아니 외려 딱딱하고 별로 안 좋은 인상만 남는다고 할까. 공부를 무척 많이 한, 나와는 전혀 무관한 누군가가 흰 가운을 입고 고가의 장비를 통해 정체 모를 것을 들여다보고는 복잡한 방정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그게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암호 같은 논문을 발표하고 때로는 노벨상 같은 것도 받는다. 이런 식이라면 내 삶이나 생각과는 일체의 관련도 없는 도무지 딴 세상의 이야기다.

그래서 그나마 우리가 관심이 있는 건 과학을 응용한 기술 쪽이다. 여하튼 과학기술을 통해서 자동차도 굴리고 텔레비전도 보고 스타크래프트도 하고 스마트폰도 들고 다니고 달에도 가고, 바람직하진 않아도 원자폭탄 같은 놀랍고 무서운 것도 만드니 말이다. 이런 것들이야 우리 주변에 늘 있거나 신문잡지에 나오거나 광고에 주구장창 등장한다.

은하 하나에 별 수천억개

그래서 생각한다. 아, 과학이란 건 이런 게 가능한 기술의 바탕이 되는 거구나. 그래서 기업은 돈을 벌고 우리는 편하게 살 수 있는 거구나. 그래서 과학이 ‘신성장동력’이라고 불리고 또 창조경제의 기반이 되는 거구나. 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과학에 대해 철저하게 오해하고 있다. 물론 저 위의 설명이 굳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틀리지 않았다고 꼭 정답은 아니듯이, 저런 이야기들로는 과학의 진면목과 힘을, 그리고 그것이 자아내는 경이로움의 마력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저것은 그저 과학의 기계적인 정의일 뿐 살아 있는 내용과 의미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많이들 아시겠지만, 지금 지구 저궤도에는 허블이라는 인공위성 겸 망원경이 20여년째 떠서 돌고 있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샌드라 불럭과 조지 클루니가 우주왕복선을 타고 고치러 갔다가 화를 입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물건이다. 지구 대기의 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지상의 더 큰 망원경에 비해 성능이 훨씬 뛰어난데, 이 허블망원경이 멀고 깊은 우주를 들여다보며 찍은 사진을 허블 딥필드 사진이라고 한다. 이 사진들에는 점점이 수천개의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것들이 찍혀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각각의 점은 태양 같은 별이 아니라 은하다.

대개 은하 하나에는 별이 수천억개씩 들어 있다. 그리고 최근의 관측 결과 그중에도 많은 별이 지구와 비슷한 조건에 있는 암석 행성을 거느리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우리은하의 경우 그런 행성의 수만 약 100억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럼 이제 상상해 보자. 도대체 저 사진 한 장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이, 그리고 문명이 존재하고 있을까? 비록 우리 눈에 하나하나 보이지는 않지만 탄생과 진화, 멸종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이벤트부터 시작해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 각자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그리고 삶과 죽음의 드라마들이 얼마나 많이 담겨 있을 것인가 말이다. 수조에 달할지도 모를 그 하나하나의 존재에게는 각자의 삶이 모두 우주 전체만큼이나 의미있고 중요할 것이다.

게다가, 이 허블 딥필드 사진은 지구에서 보이는 전체 하늘에서 겨우 엄지손톱으로 가려질 정도의 지역만 담고 있을 뿐이다. 이제 이런 생각을 우주 전체로 확대한다면 우리는 그저 우주의 광대함을 깨닫는 것을 넘어 그 속에 가득 차 있는 생명들의 존재와 희로애락마저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허블망원경으로 찍은 우주엔
수천개 형형색색 은하가
우주의 광대함 일깨우는 사례

강력 펌프 이용해 진공상태로
볼링공·깃털 동시 낙하실험
한 치 오차 없이 함께 떨어져
당연하다 받아들인 공기저항도
우주 차원에선 극히 희귀현상


우주에선 일상이 특수한 현상

다른 예를 들어보자. 영국 <비비시>(BBC)에서 제작한 과학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실험을 하나 하는데 그 내용은 시시하리만치 간단하고 뻔한 것이다.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유명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브라이언 콕스가 미국 클리블랜드의 한 시설을 방문한다. 예전에 미사일 발사장으로 쓰인 거대한 지하공간인데, 강력한 펌프를 사용해 30t이나 되는 내부 공기를 단 2g이 남을 때까지 빼낼 수 있다. 거의 완벽한 진공상태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제작진은, 일단 공기가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볼링공과 거대한 깃털 더미를 공중 수십m까지 크레인으로 끌어올려 동시에 떨어뜨린다. 당연히 볼링공은 수직 낙하하여 굉음을 내며 부딪히고, 깃털은 공기저항으로 이리저리 나부끼며 천천히 떨어진다. 그리고 다음으로, 예상할 수 있듯이 펌프를 사용해 세 시간 동안이나 공기를 빼 전체를 진공으로 만들고 똑같은 실험을 한 번 더 한다. 슬로모션으로 잡은 영상 속에서는 아까와는 달리 볼링공과 깃털 더미가 그야말로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놓은 것처럼 함께 땅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초등교육이라도 받은 사람이라면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릴 때부터 책에서도 읽었고 학교에서도 배웠으며 운이 좋았다면 팔뚝 길이쯤 되는 장치로 직접 실험을 해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일이 벌어질 때, 시설의 관계자들은 물론 직업 물리학자인 브라이언 콕스까지도 그 광경을 보여주면 감탄하며 신기해하고 웃음까지 터트린다. 나 역시 처음엔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고, 강연에서 틀어줘도 많은 청중이 탄성을 지른다.

하지만 좀 이상하지 않나? 그저 너무 잘 알려진 현상일 뿐인데 우리는 왜 이 영상을 보고 신기해하는 걸까. 그 이유는 비록 학교에서 배우고 이론도 알고 있지만 실제로 경험해본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체험한 것과 책으로 읽은 지식의 무게나 생명력은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우리 일상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 과학실험을 통해 현실화되는 것을 목격할 때, 우리는 우리가 배웠던 지식들이 진실이라는 것을 비로소 느끼며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일종의 ‘인지 조화’ 상태에 도달한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이런 실험의 의미를 조금 더 파고들면 더 본질적인 것들에 접근할 수 있다. 바로, 우리가 당연한 일상이자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일로 경험하는 물체가 떨어질 때의 공기저항이 우주적 규모에서는 극도로 희귀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조금 전의 이야기와 반대되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우주 공간 전체를 놓고 본다면 수많은 은하와 별과 행성에도 불구하고 실은 거의 대부분이 텅 빈 허공이기 때문에 어떤 물체가 어디로 떨어진다는 현상 자체를 구경하기 어렵다. 나아가 공기저항에 의해 볼링공과 깃털이 다른 속도로 떨어질 만한 곳은 이 우주 속에서 지극히 희귀한 특별한 장소들이다.

다시 말해 저 거대한 진공 체임버에서 일어나는 낯설고 기이한 일이야말로 우주의 일반적인 모습이고, 우리가 매일 바라보고 당연히 여기던 것은 극도로 특수한 현상이라는 말이다. 이런 깨달음은 삼라만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우리가 가진 경험적 한계로부터 우주적 보편성으로 확장시킨다. 이것은 과학의 도움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생각의 역전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와 그 속 생명의 존귀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저 드넓고 텅 빈 우주 속 이렇게 특별한 곳에서 우리가 생겨나 살고 있다는 기적적인 행운, 그리고 박테리아에서 시작한 생명이 이제 그런 우주의 진실을 찾아나갈 정도의 지성과 문명을 일궈내는 데에 이르렀다는 점, 이 모든 것이 경이롭기 그지없는 사실 아닌가.

과학은 교양 아니라 필수과제

물론 과학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과학이 결코 만능이 아니며 모든 것을 설명할 수도 없다고 비판하고, 따라서 과학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의 힘을 빌려야만 우주와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유연하고 열린 태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과학의 본질을 오해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과학은 이데올로기도 신념체계도 아닌 방법론이다. 따라서 과학은 스스로 만능이며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가졌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지난 수천년, 아니 수만년 동안 경험이나 습관, 혹은 기대와 바람을 통해 너무 쉽게 믿거나 속아버린 것들을 의심하여 객관적인 수단들을 동원해 케케묵은 환상들을 제거한다. 그렇게 하면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것이 자연스레 드러나게 된다. 물론 그래서 그 결론이 절대적 진실이라는 것도 아니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얼마든지 다른 결론으로 바뀔 수도 있고, 이렇게 엄정하면서도 열린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과학의 정신이며 또 위대함의 정수다.

최근 알파고 현상을 통해 우리 모두가 눈치채게 된 것은, 이제는 과학과 기술이 과거 산업혁명 때처럼 단지 사회구조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 인간 존재의 역할과 의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제 과학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교양으로서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가속화되는 시대상의 변화 속에서 주체적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필수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교양으로서의 위치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충분한 지원과 지지를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의 진면목에 대해 이제 정말로 생각을 해야 한다. 노벨상을 ‘목표’로 하거나 신성장동력 같은 좁은 관점으로는 과학의 진짜 가치를 키워낼 수 없고, 결국 과학으로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만드는 미래에 정신 못 차리고 끌려가게 될 거다. 과학이 제공하는 합리적인 세계관과 열린 태도, 그리고 지식이 주는 경이로움과 열정, 이것들이야말로 우리가 21세기형 인간으로 풍요롭게 살아가기 위한 가장 큰 힘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그것을 깨쳐 가야 한다.

파토 원종우, <태양계 연대기> 저자·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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