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110년 아픈 歷史, 용산기지에 살아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110년 외국땅' 용산기지] [上] 내년말 돌아오는 땅, 미리 가보니…

조선왕실 제천행사 열리던 곳, 1906년 대한제국이 日帝에 넘겨

美軍, 日이 남긴 건물 대부분 재활용… 곳곳이 근·현대사 유적

71만평 공원 조성 계획… "역사·문화적인 특성 최대한 살려야"

1년 반 뒤인 2017년 말 미군이 평택으로 떠나면, 111년 만에 용산(龍山)이 한국 품으로 돌아온다. 일본은 1906년 4월 대한제국으로부터 서울 용산 일대 부지 300만평을 사들였다. 일본은 이곳에 조선 주둔군 기지를 건설했다. 일제(日帝) 패망 이후 70여년간 용산은 줄곧 주한 미군 기지로 사용됐다. 이 나라 근·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용산에서 111년 만에 외국 군대가 떠나고 그 자리에 71만평짜리 초대형 공원이 만들어진다.

한·미는 지난 2003년 7월 용산의 주한 미군 기지를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하는 데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주한 미 8군사령부의 선발대가 지난 5월 평택 기지로 이전한 것을 시작으로 내년 말까지 미군 본대가 모두 평택으로 옮겨 갈 예정이다. 다만 한미연합사령부는 용산 기지에 남게 된다. 북의 어떤 도발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한·미 동맹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소수의 연합사사령부 인력과 시설이 용산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조선일보

일본군 보병부대 정문의 돌기둥, 한미연합사 뒤쪽에 그대로 - 1906년 대한제국으로부터 구입한 땅에 일본이 군사시설을 건설한 이래 111년 만인 2017년 용산이 대한민국에 돌아온다. 100년 넘도록 용산 기지 내에 멎어 있던 역사도 함께 반환된다. 왼쪽 사진은 현 한미연합사 자리에 건설된 일본군 6사단 보병부대 정문(1908~1910년 사이 촬영)이고 오른쪽은 2016년 6월 현 한미연합사 뒤쪽 모습이다. 돌기둥(빨간 점선)과 철 난간 아래 만초천 개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학자 김천수 제공·박종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부는 미군 부대가 용산을 떠나면 이후 소파 협정에 따라 반환 협의 절차를 끝내고 이곳에 대한 환경 평가 및 문화재 조사 등을 거쳐 2027년까지 235만㎡(약 71만평)에 이르는 부지에 역사·문화·생태 공원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6월 TV조선과 함께 기지 이전 작업이 막 시작된 용산 기지 내부를 취재했다. 용산 기지는 그간 언론 접근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곳이다.

용산 기지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구한말 외국 군대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한양 도성 바깥 주민들이 살던 삶터였고, 조선 왕실 제천 행사가 수시로 벌어진 곳이었다. 현재 용산 기지를 사용 중인 미군은 일제 강점기 당시 건물을 대부분 재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지 곳곳에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부는 용산이 가진 역사·문화적 특성을 최대한 살린 생태 공원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부는 지난 4월 이곳에 경찰박물관, 여성사박물관 등 정부 각 부처가 요구하는 8개 시설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역사를 망각한 부처 간 나눠 먹기"라는 비판을 불렀다. 111년 만에 한국 품으로 돌아오는 용산의 올바른 개발 방향을 찾기 위해 용산 기지를 미리 살펴봤다.

[박종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