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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英 탈퇴파 '내홍' 지리멸렬…길 잃은 브렉시트 출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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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후폭풍]

뉴스1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운동을 이끌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의 앞으로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이 지나가고 있다.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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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손미혜 기자 =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이 전 세계 지형을 뒤흔든 지 불과 일주일, 영국에서는 배신과 몰락을 테마로 한 한편의 정치적 드라마가 펼쳐졌다. 현실판 '하우스 오브 카드', '왕좌의 게임'이라고 불리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사임표명 이후 유력 차기총리로 손꼽혔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다.

◇"브루투스 너마저"…고브의 배반과 존슨의 몰락

국민투표 이후 조성된 상황은 비교적 분명했다. EU 잔류운동을 펼쳐 왔던 캐머런 총리가 브렉시트 결정의 책임을 지고 9월 전당대회 전까지 사임하겠다는 결정을 내놨다. EU 탈퇴운동을 진두지휘했던 존슨 전 시장은 여러 여론조사와 배팅업계에서 차기 총리 하마평에 오르며 권력 공백을 메울 브렉시트 결정의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존슨은 브렉시트 투표 일주일만인 30일(현지시간) "동료들과 논의를 거친 결과, 의회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나는 차기 총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보수당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와 함께 브렉시트 운동을 이끌었던 러닝메이트격인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이 당권도전 의지가 없다던 기존 입장을 돌연 번복하며 깜짝 출마 선언을 하며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탈퇴파의 자중지란이다.

고브 장관은 이날 "보리스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을 이끌어갈 리더십을 갖추지 못했으며, 향후 과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팀을 구축하지도 못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브렉시트 진영의 얼굴마담으로 나섰던 존슨 전 시장의 등에 비수를 꽂았다.

브렉시트 진영의 내홍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맥베스', 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를 암살한 브루투스의 현실판으로 비유된다. 존슨 전 시장은 캐머런 총리에 맞서 브렉시트를 이끌 때만 하더라도 배신자 브루투스였다. 그러나 고브 장관이 브루투스 역할을 자임하며 칼을 꺼내들면서, 존슨 전 시장은 내부 배신을 당하는 카이사르로 상황이 바뀌었다.

결국 브렉시트 전선의 선두에서 싸움을 이끌던 장군 존슨은 지금은 "역사의 조수에 맞서 싸울 때가 아니며, 홍수 속에서 조수를 타고 행운을 향해 항해할 시기"라며 전장에서 물러섰다.

◇역량부족·내홍…예고된 브렉시트 진영의 분열

브렉시트 진영의 불안은 이전부터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EU 탈퇴 운동을 주도해 온 존슨 전 시장이 정작 브렉시트 이행절차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나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 대한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혹이 정치권 내부에서 끊임없이 제기됐다. 판은 흔들렸는데, 흔들린 판을 안정화할 논리가 갖춰졌냐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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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운동을 진두지휘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이 30일(현지시간) 보수당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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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 전 시장이 텔레그래프 기고 칼럼을 통해 국민투표 이후 처음 내놓은 공식 입장표명 역시 비현실적이고 불충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민자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다소 선회하는 것으로 보여 반(反)이민 정서를 기반으로 구축된 브렉시트 강경파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으며, 기존의 공약을 뒤집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내걸었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게다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존슨 전 시장과 코브 장관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향방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고브 장관이 항상 존슨 진영의 "뻐꾸기(X맨)"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혹을 제시했다.

전날 유출된 고브 장관 부인 세라 바인의 이메일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바인은 남편 고브 장관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존슨을 지지한다는 구체적인 약속을 할 필요가 없다. 굴복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과 데일리메일 편집장 폴 데이커가 존슨 전 시장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英 출구전략 고심…메이 유력 차기총리 급부상

탈퇴파의 불안 속에 유력 차기총리로 급부상한 건 테레사 메이 내무장관이다. '제 2의 대처'로 비유되며 26년만에 영국의 여성 총리가 다시 태어날 가능성을 키우는 주인공이다. 동료 내각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과 패트릭 매클로플린 교통장관이 메이 장관 지지를 공식선언했으며, 60여명의 보수당 의원들도 메이 장관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메이 장관은 브렉시트라는 심각한 도전을 극복하고 영국의 주권을 수호하며 경제성장을 유지할 최선의 선택지로 여겨진다. 의회를 장악한 보수당 다수가 메이 장관과 같은 EU 잔류파인 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메이 장관은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했지만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다. 국민투표가 치러졌고, 투표율도 높았다. 대중은 그들의 의견을 내놓았다"며 "EU에 잔류하려는 어떤 시도도 없으며, EU로 되돌아가거나, 두번째 국민투표를 치러서도 안 된다"면서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하고, 이번 결정을 번복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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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메이 영국 내무장관. © AFP=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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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장관은 다만 브뤼셀과의 탈퇴협상은 수년이 소요될 것이며 올해 안으로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협상을 좀 더 장기전으로 이끌고 가, 브렉시트로 초래될 영국 내 혼란을 완화하고 내부 분열을 봉합하고자 하는 의도다.

일각에서는 조기총선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조기총선은 브렉시트의 순조로운 '이행' 또는 '무산' 양쪽 모두에서 고려된다. 브렉시트의 지지동력을 얻기 위해, 또는 기존의 국민투표를 뒤집고 잔류 표심을 모으기 위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는 것. 다만 차기 총리가 유력한 메이 장관은 "2020년 전까지는 총선을 치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yeou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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