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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브렉시트 그 후]“영국에 집 사려 했다가 계획 중단…일단 사태 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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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서 일하는 EU시민 분위기

각국 시민권 신청자 증가 추세

인종차별 범죄는 일시적 현상

경향신문

브렉시트 후폭풍으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자 영국에서 ‘안전핀 달기’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가디언 등은 30일(현지시간) 제노포비아에 반대하는 이들이 “누구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을 담아 안전핀 달기 운동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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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결과가 브렉시트로 확정된 지난 24일 카를로스 카르발리오(33)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브렉시트 소식을 본 고향 브라질 사람들로부터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며 안부전화가 온종일 쇄도했기 때문이다.

카르발리오는 영국 로펌 KGIA에서 사무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09년 브라질에서 영국으로 와 살았다. 카르발리오는 브라질에서 나고 자랐고 이탈리아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증조부가 이탈리아인이어서 이탈리아 시민권을 갖고 있다. 덕분에 EU 시민으로 영국에서 자유롭게 직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해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요즘 모두 걱정이 많다”며 “당장 2개월 안에, 2년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브렉시트가 가져온 가장 큰 위험 ‘불확실성’의 직격탄을 맞은 곳, 런던의 신금융중심가 카나리워프를 찾았다. 지하철 카나리워프역을 나오자 죽죽 뻗은 큼직한 초고층 빌딩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즐비한 런던 시내와는 이질적인 모습이다. 카나리워프에는 JP모건, HSBC, 씨티그룹, 바클레이즈, 모건스탠리, 무디스 등 세계적인 금융사와 컨설팅 회사들의 유럽본부가 들어서 있어 전통 금융가 ‘더시티’와 더불어 유럽의 ‘금융관문’인 런던을 상징하는 곳이다. 유럽으로 자본이 들고나는 것만큼 들고나는 외국인 종사자도 많다.

카르발리오가 일하는 로펌은 영국에서 두번째로 높은 빌딩인 50층짜리 원캐나다스퀘어 빌딩에 있다. 그는 “유럽 출신 주변 친구들은 모두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고 했다. 영국에 자기 재산을 투자하거나 집을 사려던 사람들도 어떻게 될지 몰라 계획을 중단했다고 한다.

카르발리오는 계속 영국에 살고 싶어했다. 브라질은 “지금 정국도 불안하고 경제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상황을 좀 지켜보다 영국 시민권을 신청할 생각이다. 영국에 온 지 5년이 지나 영주권을 받았고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나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여태까지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국경이 닫힐 것에 대비해 카르발리오가 영국의 시민권을 얻으려는 것처럼 유럽에 사는 영국인들도 현지 시민권을 얻으려는 신청자가 나오고 있다. 그는 “국민투표 후 이탈리아에 사는 영국인 200명이 이탈리아 영사관에 시민권을 신청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카르발리오의 말에는 불안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그는 “영국에 와서 지금까지 어떤 종류의 차별도 받은 적이 없다”며 “만약 브렉시트를 계기로 인종차별이 심해지고 폭동이 일어나는 상황이 생기면 떠나야 할 수도 있겠지만 영국에서 그런 일까지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영국 전역에서 부쩍 늘어난 인종차별 증오범죄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겠느냐. 한두 달이 지나면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영국 정부가 스위스, 노르웨이처럼 EU와 선택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감원설, 본부이전설이 공공연히 나도는 카나리워프는 요새 뒤숭숭하다. 불확실한 미래로 불안한 건 영국인도 마찬가지다. 카나리워프역 앞 펍에서 동료와 맥주를 마시던 한 영국인은 “이탈리아나 다른 유럽 국가로 가서 일할 생각이 있었는데 계획이 다 틀어졌다”고 푸념했다. JP모건에서 일하는 그는 의외로 최근 많이 바쁘지는 않았다고 했다.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는 브렉시트를 “영국의 미래를 망가뜨린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EU와의 협상 가능성이 있지 않으냐는 말에 그는 “영국이 자기들 좋은 것만 하고 기여는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EU가 영국만 좋은 일에 동의해주겠나”라고 답했다.

<런던 | 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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