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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보복 운전에 술·마약까지…'달리는 흉기' 택시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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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택시기사 1천822명 음주단속 적발…재범률 40% 웃돌아

음주단속 무사 통과, 걸려도 솜방망이 처벌…음주처벌 받아도 재취업

연합뉴스

청주서 음주 택시 사고[청주 상당경찰서 제공=연합뉴스]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지난달 30일 오전 5시 50분 청주의 법인택시 기사 송모(41)씨는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질렀다. 술이 화근이었다.

한 마트에서 소주 1병을 들이킨 뒤 운전대를 잡았다. 택시 기사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어처구니없는 짓 때문에 그의 택시에 탄 승객 A(56)씨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운전을 하던 송씨는 앞서 가던 택시와 길가 전봇대를 잇따라 들이받고서야 겨우 멈췄다. 사고 당시 송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치인 0.12%였다.

2012년 7월에도 음주 운전을 하다가 적발돼 면허가 취소된 적이 있는 송씨였지만 못 된 버릇을 고치지 못한 채 끔찍한 사고를 저지른 것이다.

택시 기사의 음주 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반인보다 더 조심해서 운전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보복 운전에 음주는 물론 마약 복용까지 문제가 됐다. '달리는 흉기'라는 우려가 괜한 것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한 달 평균 34명꼴로 음주운전 택시 기사가 적발된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1천822명의 택시 기사가 음주단속에 걸렸다.

더욱 놀라운 건 적발된 운전기사 76%(1천384명)가 면허 취소 처분 대상인 혈중 알코올농도 0.1% 이상의 만취 상태였다는 것이다.

통상 혈중 알코올 농도 0.1% 이상이면 몸의 균형을 잡기 힘들고 판단력을 잃는다는 것이 의학계 분석이다.

제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던 셈이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탑승한 승객은 만취 기사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황당하고 아찔한 상황을 맞게 된다.

단속을 하던 경찰관을 매달고 도주한 운전기사도 있었다.

작년 9월 7일 오후 2시께 신모(34)씨가 광주 북구 석곡동에서 음주단속을 하던 윤모 경위를 운전석 문에 매단 채 7m가량 달아났다. 이 사고로 윤 경위는 손가락이 부러지고 무릎과 팔꿈치 등을 다쳤다. 신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0.12%에 달했다.

택시 기사들의 음주 행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데는 경찰의 느슨한 단속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택시 기사들의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2012년 449건, 2013년 404건, 2014년 382건으로 해마다 감소했지만, 기사들이 술을 안 마시는 것이 아니라 경찰이 단속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지난달 30일 발생한 송씨 사고 기사에 댓글을 단 누리꾼들은 "모든 차량 음주 측정 하세요. 반드시 걸립니다. 왜 택시는 그냥 통과시킵니까"라거나 "기사식당에서 반주로 술 자주 마시고 운행한다"고 택시에 대한 경찰의 허술한 음주단속을 꼬집었다.

음주단속을 하는 경찰이 차량 통행을 원할하게 하겠다며 택시는 측정조차 하지 않고 통과시키곤 하는데 이런 관행이 택시기사들의 음주운전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운전할 때 사고 위험이 커지는 이유는 핸들이나 브레이크 조작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혈중 알코올농도가 0.1%일 경우 차의 제동거리가 맨 정신일 때보다 8m가량 늘어난다. 음주 운전 사고로 인한 사망자 발생 확률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20% 더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음주 운전이 생명을 앗아가는 '살인 행위'로 불리는 이유다.

환각 상태에서 승객을 태우고 질주하다가 입건된 마약 사범도 있다.

지난 1월 16일 서울 강동구 인근 노래방 화장실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전모(51)씨가 회사에서 배차한 택시를 몰고 영업하다가 적발됐다. 전씨로부터 필로폰을 산 동료 택시 기사도 나란히 입건됐다.

보복 운전 역시 대형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뿌리뽑아야 할 악습이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 택시 기사들도 있다.

작년 6월 28일 부산시 부산진구 모 백화점 앞에서 시내버스를 추월한 택시가 수차례 급감속, 급정거 하다가 추돌 사고를 냈다. 당시 택시 기사 이모(38)씨는 주차장에서 도로로 진입하는데 버스가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복운전을 했다.

조모(56)씨는 이보다 이틀 전인 같은 달 26일 오후 9시 20분께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 골목길에서 차량 교행 문제로 다투던 박모(37)씨를 자신의 택시에 매달고 50m를 달린 혐의로 처벌을 받았다.

기사들의 일탈행위는 택시업계도 골칫거리다. 사고가 나면 보험료 할증으로 이어져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치게 된다. 사고 차량뿐만 아니라 회사 소속 택시 전체의 보험료 할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청주의 한 법인택시 관계자는 "10년간의 교통사고 및 교통법규 위반 경력을 제출받아 살펴본 후 채용 여부를 결정하지만 음주 습관까지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털어놨다.

일부 택시 업체들은 기사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음주 운전 전력이 있어도 못본 척 묵인한다.

지난달 30일 사고를 낸 송씨 역시 3개월 전 입사할 때 4년전 적발된 음주운전이 문제되 지 않았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사법당국이 강력한 처벌 의지를 밝히지만 택시 기사들의 그릇된 행태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음주 운전 등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운전자의 절반 가량은 또다시 같은 죄를 짓고 법정에 선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0∼2014년 5년간 음주 운전 재범률이 41.8%에 이르고 지난해 음주 운전 사범 중 3회 이상 적발자가 18.5%에 달한다. 택시 기사들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택시업계의 전언이다.

음주 운전을 하다가 적발되거나 교통사고를 내 인명 피해를 내도 처벌이 약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도로교통법상 혈중 알코올농도가 0.1% 이상일 경우 6개월 이상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도 있지만 통상은 최저형인 벌금 300만원을 받는 데 그친다.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하면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규정돼 있다. 죄질이 극히 나빠도 징역 2∼3년의 처벌을 받는 게 고작이다.

일반인들과 동일한 법이 적용된다. 택시 기사라고 해서 가중 처벌되지는 않는다.

충북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음주운전은 명백한 살인 행위이고, 하루종일 도로를 누비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영업하는 택시기사라면 말 할 것도 없다"며 "법을 개정해 형량을 높여 경각심을 준다면 택시 기사들의 음주운전 행태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k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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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단속하는 경찰[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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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안돼요[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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