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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여보세요. 어디 남는 헬륨 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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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말랑말랑과학-106] "이번 발견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양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옥스퍼드대 지구과학 크리스 밸런타인 교수는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최근 이같이 밝혔다.

'헬륨'이란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를까. 아마도 파티 때 쓰이는 둥둥 떠다니는 풍선이나 고음으로 '음성변조'된 목소리(누구나 한번쯤 호기심에 헬륨으로 부풀린 풍선에 담긴 헬륨을 마셔 보고 변한 목소리에 즐거워한 적이 있을 것이다)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이는 헬륨이 사용되는 여러 분야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헬륨은 상상 이상으로 우리 삶의 다양한 부분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산업, 과학계에서 헬륨은 약방의 감초처럼 없어선 안되는 필수적인 기체다. 안정적인 데다 다른 화합물과 잘 섞이거나 반응하지 않는 특징이 있어서다.

파티용 풍선 외에도 기상 관측 기구, 비행선 등에도 헬륨을 사용한다. 헬륨이 공기보다 가벼워 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헬륨은 우주에서도 사용된다. 인공위성에 설치된 장비들을 냉각하는 데도 사용되고 로켓 엔진의 연료로도 활용된다. 아폴로 계획에서 연료로 사용된 액화산소와 수소를 냉각시키는 데도 헬륨이 큰 역할을 했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입자를 발견한 강입자가속기(LHC)를 냉각하는 데도 헬륨이 사용된다. 병원에서 볼 수 있는 MRI도 냉매로 헬륨을 사용하고 있다.

심해 잠수사들은 깊은 바닷속에서 높은 수압을 견디며 작업을 하는데 이는 80%의 헬륨과 20%의 산소를 섞어 들이마시기 때문이다.

이렇듯 헬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 우리 삶을 움직이고 있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헬륨 사용량이 점점 늘어나는 데 비해 새로운 헬륨 매장지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지구상의 헬륨 매장량이 줄어든다는 소식에 과학자들이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 세계에서 헬륨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는 미국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약 30%를 차지한다. 미국에 이어 카타르, 러시아 등이 헬륨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 생산해 보관하고 있는 헬륨의 양은 6억8530만㎥ 정도다. 미국 내 매장량은 약 43억㎥로 추산된다. 이 정도면 많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매년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헬륨의 양만 약 2억3000만㎥에 달한다. 새로운 헬륨 자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헬륨 소비량이 크게 늘지 않더라도 20년 안에 각국이 확보한 모든 헬륨이 고갈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헬륨 고갈' 문제로 신경이 곤두선 과학자들에게 최근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대규모 헬륨 가스전이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발견된 것이다. 공동 탐사로 가스전을 발견한 영국 옥스퍼드대와 더럼대, 노르웨이 탐사업체인 '헬륨 원'은 헬륨 매장량이 약 15억㎥ 정도일 것으로 추산했다. 120만대의 MRI 기기에 쓰일 수 있는 정도의 양이다.

연구팀은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극히 일부 지역만을 탐사한 뒤 이번 발견 성과를 올렸기에 향후 추가 탐사를 통해 더 많은 헬륨 매장지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탐사 프로젝트의 일원인 더럼대 지질학 존 글루야스 교수는 "우리가 발견한 것보다 더 많은 헬륨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추가적인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학적 탐사 방법을 통해 헬륨 가스전을 인위적으로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헬륨 가스전은 석유나 천연가스를 탐사하던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들이었다.

연구팀은 탄자니아의 동아프리카지구대에서 활발한 고온 화산 활동으로 인해 오래된 바위 속에 묻혀 있던 헬륨이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상대적으로 지표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가스전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을 통해 헬륨 발견을 운에만 맡겼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탄자니아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 대형 헬륨 가스전을 직접 탐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규모 헬륨 가스전이 여럿 발견된다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헬륨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밸런타인 교수가 옥스퍼드대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헬륨 가스전 발견에 대해 '게임 체인저'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영욱 과학기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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