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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똑같이 뉴욕 가는데… 일반인 111만원, 공무원 42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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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공무원 전용 항공권 'GTR', 동일 좌석 항공료 최대 4배

공무원 항공권 제도, 표 확보 어렵고 스마트폰 없던 80년대에 만들어

예매·환불 쉽고, 일정 변경해도 수수료 싼 지금은 국가 예산 낭비

정부 "비싸긴 하지만… 돌발 상황 때 항공권 안정적으로 확보 가능"

공무원들이 해외 출장을 다닐 때 지나치게 비싼 항공권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 전용 티켓은 정부항공운송의뢰제도(GTR·Government Transportation Request) 내지 'GTR 항공권'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 예산 편성의 근거가 된 2016년도 정부 예산 편성 지침을 기준으로 보면, 인천과 뉴욕 간 대한항공 이코노미클래스 왕복 GTR 티켓의 단가는 1장당 421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다만 이 가격은 예산 책정 기준 최고가로 실제 구매 시점에서는 어느 정도 미리 예약하느냐 하는 등의 부가 조건에 따라 389만원, 237만원짜리 티켓도 나올 수 있고 차액은 정부에 반납한다. 30일을 기준으로 할 때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는 성수기(7월 25일~8월 3일)의 이코노미 티켓을 최저 202만원에 예매할 수 있다. 특수하게 판매되는 '할인 항공권'이 아닌 공식 판매 가격이다. 비수기(10월17~26일)에는 111만원으로도 예매 가능하다. 비즈니스 티켓도 GTR 738만원, 성수기 예매가 450만원으로 차이가 난다.

GTR 제도는 1980년대 공무원들이 한국 국적기를 이용하도록 하면서 업계 건의로 도입됐다. 과거에는 항공권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데다 스마트폰·인터넷 기반이 부족해 환불이나 일정 변경이 쉽지 않았다. 정부 업무 편의와 국적 항공사 육성을 위해 일정 부분 필요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국적기 여부에 관계없이 간편한 예매와 일정 변경, 환불 등이 가능하며 위약금이 있는 경우에도 이용자 입장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만약 기업이었다면 30년 넘은 제도를 그대로 운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공무원 전용 GTR 항공권과 일반인 대상 항공권 요금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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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는 "GTR이 일종의 보험이기 때문"이라며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일반 항공권은 발권 시기에 따라 요금이 천차만별이고, 취소하거나 일정을 변경할 경우 적지 않은 수수료가 발생한다"고 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돌발 일정이 있을 때 GTR이 없다면 각종 수수료 부담으로 운임이 더 비싸질 수 있다"며 "GTR은 이런 리스크(위험) 부담을 항공사에 떠넘긴 제도"라고 했다. 실제로 하루 이틀 뒤 급박한 일정으로 환불, 일정 변경, 마일리지 적립, 좌석 승급이 모두 가능한 인천-뉴욕 왕복 이코노미 표(비수기 기준)를 구한다고 하면 GTR이 400만원대 초반, 일반인 대상 표가 470여만원대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이 '일정 변경에 대비해 GTR을 이용한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근에는 일정 변경에 따른 수수료도 과거와 달리 싸졌다. 예컨대 인천-샌프란시스코행 GTR 단가는 312만원이지만, 대한항공 홈페이지에서는 10만~20만원 정도 추가 비용으로 도착 일정 변경과 환불도 되는 티켓이 비수기 기준 87만원에 예매가 된다. 155만원짜리 티켓은 위약금 12만원을 내면 출발편 변경도 가능하다. 정부 관계자들은 "GTR이 아니면 급하게 표를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도 한다. 그러나 30일 기준으로 '7월5일 출발, 14일 귀국'하는 대한항공 이코노미 좌석 런던행은 223만원부터, 뉴욕행은 202만원부터 예매 가능한 것으로 올라와 있다. 또 정부 부처의 경우 대부분 수개월 전부터 출장 일정을 짜고 상대 국가와의 업무 일정도 조율해 놓기 때문에 변경하는 일이 민간 약속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앙 부처 공무원들은 예산 편성 단계부터 관행적으로 'GTR 티켓'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부항공운송의뢰에 관한 규정'(국무총리 훈령 제640호)을 명분으로 대기도 한다. 규정(제3조)에 "업무 수행상 부득이한 사유로 곤란하거나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자국적 항공기를 이용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적기를 이용하라고 돼 있지 어떤 조건의 항공권을 구입하라고는 정해져 있지 않다. 실제 기재부 관계자는 "GTR 요금이 하나의 예시로 제시돼 있긴 하지만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사항은 아니며, 이보다 싼 가격에 항공권 이용이 가능할 경우 일반인과 같은 방식의 예매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GTR 운임으로 구매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략 5대5의 비율로 알려져 있다.

[이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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