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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독재시절의 방패막이' 불체포·면책특권, 이젠 개인 방패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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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 의원 특권 손봐야"]

- 불체포특권

불법 저지른 동료 감싸기에 악용

- 면책특권

유언비어·막말 쏟아내는 도구로

항공기 비즈니스석·공항 VIP룸 전용통로 이용 관행도 바뀌어야

20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가족 보좌진 채용 등 여야 의원들의 구시대적 병폐가 드러나면서 시대에 맞지 않는 특권을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의원의 대표적인 특권은 헌법으로 보장된 불체포·면책특권이다. 헌법은 현행범을 제외하고는 회기 중에 국회 동의 없이 국회의원을 체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는 1948년 제헌 헌법부터 보장된 권리다.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는 국회의원들의 최소한의 방어 수단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민주화 시대 이후에는 국회가 비리 동료 의원을 감싸주는 장치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많다. 국회 관계자는 "독재로부터의 방패 역할을 했던 불체포·면책특권이 민주화 시대에는 의원들의 개인 방패로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희옥(오른쪽)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과 정진석 원내대표가 3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혁신비대위회의에 참석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성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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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의 경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11건 중 4건만 가결됐다. 2건은 정부가 철회했지만 나머지 5건은 부결되거나 폐기됐다. 뇌물 수수·횡령 등 부정부패 관련 혐의가 대부분이었다. 내란선동 등 혐의로 9년 실형을 받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대해서도 반대(2명)·기권(7명)한 의원이 9명이었다. 국회 관계자는 "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회에 접수된 체포동의안 중 80%는 부결되거나 폐기됐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근본적으로 개인 비리 범죄의 경우 불체포특권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책특권 또한 적지 않은 의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거나 상식을 넘어선 폭언과 비방을 쏟아내는 정쟁(政爭)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국회의 정부 견제라는 면책특권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제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단국대 가상준 교수는 "19대 국회에서는 의원들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악용해 황당한 유언비어를 언급하거나 '막말'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시도가 너무 많았다"고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개헌을 통해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개헌 여부와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현실적으로는 의원들이 스스로의 특권을 제한하는 규칙을 만들고 준수하는 방법밖에 없다. 한국외대 이정희 교수는 "국회 차원의 특권 폐지 논의를 시작해 단기간에 하나씩 결과물을 내놓는 실천이 중요하다"고 했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리나라 선출직 공무원 중에 유일하게 국회의원만 임기 도중 유권자들 판단에 따라 자리를 뺏길 염려가 없다. 일부 의원이 '국회의원의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소관 상임위는 제대로 심사한 적이 없다. 불법적 정치자금 모금 기회로 활용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또한 여야가 수차례 금지하겠다는 선언만 했을 뿐 실제로 법안으로 처리되지 못했다. 의원 세비와 수당을 줄이거나 지급 조건을 강화하는 법안들도 마찬가지다. 의원들은 세비 외에도 연 9000여만원의 입법·정책 개발 지원금을 받고 있다.

국회의원이 공무 수행을 위한 항공기 이용 시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는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항 VIP룸과 전용통로 사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 등이 "의원 외교를 나갈 때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이용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실천되지 않고 있다. 국회 관계자는 "장관급 대우를 받는 의원들이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면 다른 고위직 공무원들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며 "결국 기획재정부의 '공무원 여비규정'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최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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