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위조범은 “내가 위조했다”는데… 작가는 “내가 그린 진품”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경찰은 위작이라는 과학적 증거와 수사자료를 내놨고 위조범도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작가는 “전부 내가 그린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조범은 이미 재판에 넘겨진 상황이다.

이우환의 위작 사건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우환 작가가 29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2차 출석해 경찰에 압수된 작품 13점에 대해 모두 진품 결론을 내렸다. 경찰의 위작 결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경찰은 작가가 진품이라고 할 것을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작가가 27일 1차 감정에서 이미 진품이라고 진술한 상태여서 이에 대비해 그동안의 수사 자료를 미리 준비해 공개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위조범 현 모씨의 석방 여부에 대해서도 경찰은 “풀어줄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사도 계속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생존 작가의 의견이 위작 판단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지금까지 경찰의 수사 내용과 민간 감정기관의 의견 역시 위작판단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위작임을 전제로 수사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헤럴드경제

인사동 K화랑으로부터 압수한 그림의 캔버스 뒷면에서 나무 틀을 벗겨낸 모습. 오래돼 누렇게 변색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칠을 했다. 캔버스를 나무 틀에 고정시킨 후 칠을 했기 때문에 틀 부분에는 물감이 묻지 않아 상대적으로 밝은 색이 남아 있다.


▶경찰은 왜 위작이라고 결론 내렸나= 경찰에 따르면 위조총책 현 모씨와 위조화가 이 모씨에게 13점을 보여줬고, 이들은 4점을 지목해 위조 방법을 재연했다. 그리고 4점 모두 ▷못과 본드(접착제)를 사용해 캔버스를 나무틀에 고정한 점 ▷테두리에 흰색 물감이 칠해진 점 ▷안료의 색상 ▷사용된 캔버스(후나오카 사) 및 나무틀(스키나무) 등이 이들의 범행과 일치했다.

경찰은 “위조범을 도와 표구했던 표구상으로부터 못을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소금물에 담군 후 이용했고, 캔버스는 측면까지만 덮고 뒷면은 덮지 않도록 재단했다는 추가 진술을 확보했다”며 “이는 위조범이 지목한 4점과 그 형태가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또 “최종 구매자들이 그림 대금으로 지급한 수표 23억원 상당이 유통책에 입금됐고, 이 중 현 씨에게 2000만원이 입금된 금융내역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안료분석 이외 위작 근거는= 경찰이 안료분석에서 제시한 위작의 주요 근거 중 하나가 유리의 주성분인 규소다.

경찰은 “위조범들이 이 씨가 그린 진품의 반짝반짝한 질감을 따라하기 위해 대리석과 유리를 빻아 물감에 넣어 썼다고 했는데 국과수 검증 결과 4점 모두 유릿가루가 검출됐다”고 말했다. 반면 이우환 작가는 1차 검증에서 물감에 유릿가루를 넣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규소 성분을 유릿조각의 증거로 단정짓긴 힘들다. 경찰 감정에 참여한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규소는 다른 안료에서도 충분히 검출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안료분석 같은 과학만 갖고는 (설명이) 부족하다”며 “압수된 그림들에는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문제점이 더 크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위작 그림들은 헌 나무틀을 이용하거나 캔버스 뒷면을 일부러 오래된 것처럼 보이려고 칠을 했다”고 설명했다. 또 “1970년대 말 ‘점으로부터’ 같은 경우 서예를 하듯 한 호흡에 긋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인데, 미리 점을 찍고 밑칠을 한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우환 작가, 진품 결론 근거 내놓을까= 이우환 작가는 2차 감정 이후 기자들과 질의 응답에서 “호흡이나 리듬ㆍ채색기법이 다 내 것이었다”며 진품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물감 성분이나 기법이 다르다는 국과수 결과에 대해서도 “그때 그때마다 물감이 조금씩 다른 것을 쓸 때도 있고 붓을 다른 것 쓸 때도 있고 해서 색채가 다를 때도 있고 성분이 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림들의 ‘이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진품의 경우 언제 전시했는지, 도록에 있는 작품인지, 어떤 경로로 컬렉터나 갤러리에 판매된 것인지 ‘이력’이 남기 마련인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 특히 구속된 위조범이 위조 사실을 인정한 부분에 대해서도 “난 모르겠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우환 작가의 법률 대리인인 최순용 변호사는 “작가가 1970년대 말 당시 그러한 그림을 한달에 40개씩 그릴 정도로 다작하셨기 때문에 일일이 다 기억을 하진 못한다”며, “전시회 유무, 소장 경로 역시 30~40년 전 오래된 일이라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아미ㆍ구민정 기자/amigo@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