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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제게는 지금껏 가장 정직한, 거짓 없는 연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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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10% 돌파하며 막내린 '또 오해영'의 서현진

중앙일보

자기 감정과 욕망을 당당히 드러내는 오해영을 두고 서현진은 "내가 생각하는 걸 맞춰봐, 보다 내가 뭘 생각하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게 관계에서 더 좋은 게 아니냐"고 말했다. [사진=점프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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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 엔딩일까봐 엄청 걱정했어요. 저희도 사나흘 전까지 결말을 몰랐거든요. 인간은 나약한 존재여서 일어날 일을 많이 바꿀 수는 없지만, 순간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일이 일어난 이후의 삶은 바뀔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을 뚝심있게 쓰신 것 같아요."

28일 막내린 드라마 '또 오해영'을 두고 주연배우 서현진(31)은 이렇게 말했다. 해피엔딩은 극 중 이야기만이 아니다. 첫회 2%대 시청률로 출발한 이 드라마는 상승세가 주춤하는 듯 싶더니 마지막 20회는 결국 10%대를 돌파했다. 그 일등공신인 서현진도 새로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주인공 오해영이 박도경(에릭 분)과의 사랑을 쟁취하기까지, 자존감이 추락하는 거듭된 수난 속에서도 자기 감정과 욕망을 가식없이 드러내는 모습을 소화하는 서현진의 연기 역시 가식 없는 당당함이 빛났다. 종영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야기의 한 축은 자존감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 이야기"라며 "사랑 이야기에서는 내 연애의 민낯을 보여드리자는 각오였다"고 말했다. "오해영을 연기하는 건 결국 서현진이라는 사람이니까, 마치 그 사람의 밀착 다큐처럼 보이기를 원했어요. 순간순간 창피해지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스태프들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어요. 덕분에 그동안 찍은 작품 중에 가장 정직하게, 거짓 없이 연기한 것 같아요. "

개인적으로 공감한 장면으로는 오해영이 박도경에게 거절당한 심경을 토로하던 대목을 꼽았다. "12회에서 전화 통화로 '너한테 너무 쉬웠던 나를,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나를, 그렇게 쉽게 버리니' 할 때, 그 장면 연기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많은 분들이 오해영을 좋아해주신 게, 그렇게 다들 생각은 하지만 입으로 뱉지 못한 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달리말해 오해영은 사랑을 애걸할 때조차 당당한 여자라는 점에서 좀 새로운 캐릭터다. "실제 연애에서요? 저는 다가가지도, 다가오지도 잘 못해서 어려워요. 좋다고 고백도 못하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저를 좋아해주기 바라는 답답이에요."

당당한 여자의 계보라면 실은 '내 이름은 김삼순'(2005, MBC)같은 멋진 선배가 있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비교죠. 오해영은 김삼순처럼 둥글둥글한 성격이 아니잖아요. 훨씬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여자라서 비교되면 오해영의 단점이 더 많이 보일텐테." 그는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를 마냥 편들지는 않았다. "주인공이 결점 없는 사람이어야 좋은 걸까요. 못난 부분이 있어도, 저는 몰라도 보는 분들에게 해영이가 좀 얄미워도, 중간에 진저리가 나서 해영이가 싫어져도 그런 부분까지 밀착해서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좀 다른 이유로 오해영에 실망한 시청자도 있다. 직장생활을 비롯, 성장 드라마를 써내려가는 대신 갈수록 사랑이 전부인 여자처럼 되어간 모습 때문이다. 서현진의 답변은 이랬다. "성장이 단기간에 쉽지 않잖아요."

극 중에서 박도경은 미래의 순간을 미리 보는 남다른 체험을 거듭하며 모종의 후회를 맛본다. 그같은 후회로 서현진은 "네 살 때부터 고 1때까지 무용을 했는데 그걸 그만둔 것"을 꼽았다. "연기가 좋은 건 집중하는 순간이 좋아서인데, 한국무용은 순수예술이라 집중도가 높아요. 가장 집중도가 높았던 순간이 무용했던 때였는데." 같은 중·고교 동창인 배우 한예리를 두고 "연기도, 무용도 하고 있는 게 굉장히 부럽다. 현명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의 인생행로가 바뀐 건 고교 1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발탁돼 4인조 걸그룹 '밀크'로 데뷔하면서다. 이후 연기자로 전직, '제왕의 딸 수백향' 등 주연한 드라마가 여럿이다. 그 중 전환점으로 자타가 꼽는 건 지난해의 '식샤를 합시다2'였다. 그 직후 뮤지컬'신데렐라'로 첫 무대에도 섰다. "마지막 공연 쯤에 느꼈던 것 같아요. (드라마) 현장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많잖아요. 내가 못나보이면 반사판으로 잡아주고, NG도 있고, 감독님 디렉팅도 있고. 그런데 무대 위에서는 그 순간 책임질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에요." 스스로의 표현을 빌면 "배우라는 자각"을 갖게 된 순간이다. 그는 "배우라는 직업이 너무 불안정해서 도망치고 싶고, 캐스팅이 안 되면 아쉬운 것 없는 사람처럼 떠나고 싶어 한 발을 빼고 있었던 것 같다"는 말로 한때의 모습을 돌이켰다. 슬럼프 극복 방법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얘기"라면서도 답변을 이어갔다. "어떻게 극복했냐 하면…극복하지 않았어요. 극복하는 분들 보면 존경해요. 극복했다면 지금쯤 멘토링 강사가 됐을 거에요. 그냥 버텼어요. 시간이 그냥 지나가길 바랬고, 다른 거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다른 거 할 용기가 없어서 그냥 보냈어요. 그러면서 연기학원 꾸준히 다니고 워크샵도 하고."

'또 오해영' 이후의 계획으로는 "그저 좋은 작품과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한 두 해 하고 그만둘 게 아니라서 지금 하는 작품을 제일 열심히 하는 게 목표에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듯 제 입지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요. 달라져도 좋은데, 안 달라져도 좋아요. 저는 촬영장이 너무 좋아요. 시청률이 안나오는 드라마도 그랬고." 롤모델로는 "국내는 너무 많아 꼽을 수가 없다"며 메릴 스트립을 떠올렸다. "최근에, 작년에야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봤어요. 사람이 예뻐 보이는 거는 눈 코 입이 예뻐서가 아니구나 싶었어요. 중년의, 날씬하지도 않은 여자인데 그 표정에서 설레임이 일어요. 용기를 가지고 연기할 수 있겠다, 나를 보고도 설레여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해보고 싶은 역할로 "전문직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며 "사기꾼"부터 열거해 좌중을 잠시 웃겼다. "말로 누군가를 속이거나 콧대를 눌러주는, 말발이 좋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검사, 변호사, 사기꾼…." 다른 건 몰라도 오해영 급의 말솜씨라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듯 보였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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