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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도봉구보다 인구가 적은 아이슬란드, 어떻게 잉글랜드를 꺾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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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연합뉴스


‘얼음 나라’가 축구 열기로 녹아내리게 생겼다. 지난 23일(이하 한국 시각) 아이슬란드 전체 TV 시청자 중 99.8%가 오스트리아와 벌인 유로 2016 조별 리그 3차전을 지켜봤다. 서울 도봉구보다 적은 아이슬란드인 32만명 중 유로 티켓을 구입한 사람만 전체 인구의 10%인 3만명이다.

28일 프랑스 니스에서 잉글랜드와 벌인 대회 16강전. 경기장은 아이슬란드 팬들로 푸른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부유한 사업가 한 명은 2300만크로나(약 2억2000만원)에 180인승 전세기를 빌려, 원정 응원단을 가득 태우고 니스를 찾았다.

유로 본선 첫 출전에 16강 진출만으로 이미 새 역사를 썼지만, ‘바이킹의 후예’들은 여전히 굶주려 있었다. 전반 4분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허용한 아이슬란드는 2분 만에 수비수 라그나르 시구르드손의 오른발 슈팅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견고한 수비벽을 쌓고 역습 기회를 노리던 아이슬란드는 전반 18분 빠른 패스 플레이로 잡은 찬스에서 콜베인 시그토르손이 오른발로 역전골을 뽑아냈다. 남은 시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타들의 거센 공세를 막아낸 아이슬란드는 2대1로 승리하며 8강 진출의 감격을 누렸다.

국토의 79%가 축구는커녕 사람이 살기조차 어려운 빙하와 용암, 호수 지대인 척박한 나라에서 이뤄낸 기적 같은 결과에 전 세계 축구 팬들이 놀라움을 표했다. 아이슬란드 베스트11의 몸값(예상 이적료·트랜스퍼마르크트 기준) 총합은 400억원으로, 잉글랜드 공격수 라힘 스털링(맨체스터시티) 한 사람의 예상 이적료(530억원)보다도 적다.

이번 유로 2016에 출전한 아이슬란드 선수 23명은 전원 해외파다. 아이슬란드엔 프로 리그가 없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로 활동하는 숫자는 100여 명에 불과하다. 대표팀에서 ‘투잡족’을 찾기도 쉽다. 헤이미르 할그림손 아이슬란드 감독은 대표팀 일정이 없을 땐 치과 의사로 활동하고, 주전 골키퍼 하네스 할도르손은 영화를 찍는다. 잉글랜드전에서 역전골을 어시스트한 욘 보드바르손은 겨울이 되면 주유소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슬란드는 작은 나라다. 인구가 적어 “아이슬란드인 5명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이 대표팀 선수와 아는 사이”(월스트리트저널)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얇은 선수층은 역설적으로 클럽팀 이상의 탄탄한 조직력으로 이어졌다. 길피 시구르드손(27·스완지시티) 등 현재 아이슬란드 대표팀 주축을 이루는 1988~1992년생은 이른바 ‘인도어 키즈(Indoor Kids)’ 1세대다. 거센 추위로 1년에 8개월은 실외 축구가 어려운 아이슬란드는 2000년부터 정식 규격의 실내 축구장인 ‘풋볼 하우스’를 건립했는데, 이들이 그 혜택을 처음 받고 자라난 세대다. 선수들끼리 서로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아는 사이가 된 것이다. 수비수 아리 스쿨라손은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실내에서 공을 차면서 자란 사이”라며 “그 어떤 대표팀보다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이번 대회 4경기에서 모두 똑같은 베스트11으로 출전했다.

일당백의 강인한 정신력도 아이슬란드의 8강 진출에 원동력이 됐다. 16년간 아이슬란드 대표로 활약했던 헤르만 흐레이다르손은 “거센 눈보라를 뚫고 학교에 가곤 했던 아이슬란드인들은 기본적으로 터프하다”며 “정신력에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정부와 축구협회의 지속적 노력으로 축구를 가장 대중적인 생활 스포츠로 만들었다. 학교마다 들어선 인조 잔디 구장이 수백에 이른다. 프로 축구단은 없지만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한 생활 축구인은 전체 인구의 7%인 2만2000여 명이다.

우승 후보 간 대결로 관심을 끈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16강전에선 이탈리아가 2대0으로 승리하며 스페인의 3연속 우승 꿈을 날려버렸다. 전반 33분 조르지오 키엘리니가 선제골을 터뜨렸고, 후반 추가 시간 그라치아노 펠레가 발리 슛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장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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