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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냐” 뒷감당 못하는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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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EU가 뭐예요?” 검색

“심각성도 모른 채 투표” 한탄

직접민주주의의 폐해인가. 포퓰리즘에 영합한 삼류정치의 결과물인가.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놓고 세계는 물론 영국 내에서도 당혹해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EU) 잔류 의견이 많았던 런던 시민들은 온라인 청원사이트 ‘체인지(www.change.org)’에서 사디크 칸 런던시장에게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EU에 가입하라는 청원을 시작해 16만 명 넘게 서명을 하기도 했다.정작 영국 국민들은 브렉시트의 의미조차 모르고 투표권을 행사했다는 한탄이 나온다. 검색 결과 분석 서비스인 구글 트렌드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브렉시트 개표가 끝난 뒤 영국 구글에서 둘째로 많이 검색된 질문 중 하나가 “EU가 뭐예요?(What is the EU?)”였다고 밝혔다. 가장 많이 검색된 질문은 “EU를 떠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What does it mean to leave the EU?)”였다.

미국 경제지 포춘은 구글 발표를 인용해 “이제 와서 이런 질문을 하기엔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비꼬기도 했다. 브렉시트 논의로 지난 수개월간 영국 사회가 두 동강 났고 국민투표 투표율도 72%가 넘었지만 정작 사안에 대한 이해도는 낮았던 점을 꼬집은 것이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개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개표 초기 지브롤터에서 96%의 잔류의견이 나오자 ‘지브롤터로 이사하는 법’을 집중 검색했고, EU 탈퇴 가능성이 커지자 ‘아일랜드 여권 얻는 법’ 검색이 100% 이상 늘었다. EU 회원국인 아일랜드는 영국과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으며, 아일랜드 출신 부모나 조부모를 둔 영국인은 아일랜드 국적을 신청할 자격이 있다.

소셜미디어에선 EU 잔류를 원했던 젊은이들의 불만과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한 당혹감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WhatHaveWeDone)’나 ‘내 이름은 빼줘(#NotInMyName)’ 같은 해시태그가 퍼져 나갔다.

영국 내에선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문제를 직접민주주의 수단인 국민투표로 결정한 것이 합당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로이터통신이 운영하는 온라인매체 ‘브레이킹뷰스’의 로브 콕스 에디터는 “이번 투표는 직접민주주의의 폐해를 보여줬을 뿐 아니라 정치인들이 책임을 회피할 구실을 만들어 줬다”며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대의민주주의를 선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럽에선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민투표가 느는 추세다. 1950년대 유럽 전체적으로 연간 3건 정도였는데 근래 8건으로 늘었다.

이번 국민투표가 포퓰리즘에 영합한 3류정치의 산물이란 비판도 나온다. 영국 BBC방송은 ‘EU 탈퇴파가 승리한 8가지 이유’란 온라인 기사에서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 따라 과장되거나 틀린 정보를 제공했고 유권자들은 자극적 선동에 염증을 느꼈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이민자 문제를 집중 부각시킨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 당수 등 탈퇴파의 선동 ▶전문가의 권위를 앞세워 EU 탈퇴 시 막대한 경제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 영국 중앙은행 등 관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국민투표를 강행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유권자와 유리된 노동당의 어정쩡한 태도 등을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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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자동차·버버리·비행기표 등 영국제품 싸게 사려면?

③ 영국 "탈퇴 안 서둘러" EU "빨리 나가라"

외교안보 전문 매체 더디플로맷의 앤킷 판다 에디터도 ‘저열한 군중은 저열한 정치인에 끌리기 마련’이라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브렉시트 이후 직접민주주의를 비판할 이유는 없다. 언제나 저열한 정치와 정치인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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