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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하반신 마비에 6000만원? 우리 위자료는 왜 이리 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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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마비 경우 8000만원… 영국 5억원·이탈리아 15억원·미국 70억원



경향신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박나원양의 어머니 김미향씨(오른쪽)가 5월 23일 서울 신문로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닦고 있다. / 김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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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씨(44)는 지난해 10월 서울 성산대교에서 자동차 접촉사고를 당했다. 뒷범퍼가 떨어지고 트렁크가 살짝 찌그러졌다. 이 사고로 주말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특별한 외상은 없었고 병원에서는 간단한 진찰만 받았다. 일주일쯤 뒤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다. 치료비 등 명목으로 어른 80만원, 어린이 40만원을 책정했다고 통보했다. 김씨는 처음엔 그냥 받아들였다. 그러나 며칠 뒤 동승한 부인이 허리가 좀 불편한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한동안 차가 무서워 못 타겠다고 하소연했다. 뒤늦게 억울한 생각이 든 김씨는 배상금을 더 요구했다. 주말 시간 허비에 건강 염려증까지 더해져 뭔가 손해본 기분이 들어서다. 보험사 직원은 “약관에 따라 책정된 것이라서 어쩔 수 없다. 더 원하면 가해자에게 직접 연락해서 받아내든지 하라”며 빠졌다.

길을 가다가 느닷없이 웬 불량배에게 맞았다고 치자. 전치 1주 정도의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면, 대체로 전치 1주당 50만원 안팎 정도인 현 위자료로 분이 풀릴까. 거꾸로 ‘치료비 외에 50만원어치만 지불하면 무고한 사람을 패도 된다’는 뜻인가. 누군가 고의나 과실에 따른 사고로 얼굴을 다쳐 흉터가 크게 남았다면 정신적 피해에 대해 얼마를 배상받아야 알맞을까.

근래 옥시로 대표되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등을 계기로 위자료 책정의 적정성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재산 손해가 아닌 비재산 손해, 그 중에서도 정신·감정이나 인격 손해를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로 평가할지의 문제다. 불법적 가습기 살균제로 자녀가 시름시름 앓다가 숨지거나 장애를 가졌다면 정신적 충격이나 여생을 즐기지 못한 데 대해 얼마를 배상받아야 할까.

국내에서 ‘위자료’는 마치 직접 피해에 대한 배상과는 별개로 정신적 피해에 대해 덤으로 주는 듯한 뉘앙스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위자료는 직접 피해에 대한 배상 중 하나이며, 당연히 받아야 할 대가라는 게 다수 법률 전문가들의 평가다. 신체적·재산적 피해를 원상회복시키는 조치는 당연한 수순이다. 피해에 대한 정신적 충격이나 억울함을 배상받는 게 더 본질적 배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난 20여년 동안 국내 위자료가 상당히 올랐지만 아직 미국, 유럽 등 주요 국가에 비해 낮다는 평가가 여전하다. 불법행위 등으로 사망한 경우 위자료는 8000만원이었다가 2015년 3월 이후 1억원으로 오른 판결이 나왔다. 사지마비의 경우도 1억원으로 올랐다. 다만 항공기 추락사고의 경우 1억5000만원까지 위자료를 준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외국인 탑승객 사망자의 특수성을 감안한 것이었다.

사망 위자료가 8000만원일 때로 보면, 사지마비도 8000만원, 하반신 마비 등은 6000만원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성폭행 피해의 경우 위자료가 2000만~5000만원 정도인 데 비해 하반신 마비 상해 위자료는 약간 높은 5000만~6000만원으로 통용됐다. 명예훼손의 경우 일반인이냐 유명인이냐, 진실이냐 허위냐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대체로 3000만원 안팎이며, 많게는 5000만원까지도 인정된다.

명예훼손에 따른 정신적 피해 위자료와 하반신 마비 위자료가 비슷하다는 건 논란거리가 된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격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가 높은 게 아니라 인신손해 위자료가 낮게 책정된 것”이라고 평했다. 이 교수의 2013년 ‘위자료 산정의 적정성에 관한 사법정책연구’를 보면, 한국의 위자료는 주요 국가보다 절대적으로 낮다. 2009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에 대비한 국내 사지마비 위자료보다 프랑스는 1.7배, 영국은 3배, 독일은 4.7배, 미국은 37배 높다고 위 연구는 밝혔다. 국내 사지마비 위자료가 8000만원인 때 프랑스는 3억원, 영국은 5억원, 독일은 8억원, 이탈리아는 15억원이며, 미국은 70억원이다.

특히 인신손해 위자료와 기타 인격권 침해 위자료 차이가 작다. 프랑스, 영국, 스위스 등 대부분은 명예훼손 위자료가 사지마비 위자료의 10% 수준이고, 독일은 6%인 데 비해 한국은 약 40%로 높다. 명예훼손 위자료는 국내가 3000만원이라면 프랑스·오스트리아도 3000만원이고 독일, 영국은 5000만원으로 비슷하거나 차이가 작다. 이 교수는 “한국 사회가 명예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는 데 비해 사람 목숨 값은 상대적으로 낮게 매기는 측면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그동안 인신손해에 대해 배상액을 계산할 때 노동력 상실 위주로 평가해온 탓이다. 사망과 사지마비가 위자료 1억원으로 동일한 것이 일례다. 다수 국가에서는 사고로 그 자리에서 숨진 경우 사망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고 보고 본인의 위자료를 아예 안 준다. 다만 수초~수분 동안 천천히 고통이나 공포감을 겪었다면 위자료가 인정되기도 한다. 영국에서는 피해자 의식이 없는 경우에 위자료가 예컨대 10만 파운드라면, 의식이 있다면 70만 파운드로 뛰곤 한다.

노동력 상실에 대한 배상은 일을 못하기 때문에 잃게 되는 수입(일실수입) 개념만 적용해 이뤄진다. 소득수준이 올라왔는데도 일실소득 산정이 낮은 것도 위자료를 낮게 책정한 이유다. 특히 미성년자나 노년층이 그렇다. 무엇보다 성범죄, 명예훼손 등에 비해 인신손해에 대한 위자료 판결이 세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일종의 ‘지체현상’을 보여 격차가 커졌다.

위자료 산정 때 비재산상 손해를 더 크게 평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창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자료에 관한 연구>(경인문화사·2011)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전성을 가진 존재라는 측면에서 위자료 문제를 봐야 한다”며 위자료 현실화 문제를 지적했다. 대인관계에서의 어려움이나, 가족이나 친구와 교제 기회 상실, 생활을 풍요롭게 영위하지 못하는 데 따른 상실감 등을 위자료 책정에 계산하자는 얘기다.

얼굴 등에 흉터가 생겨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현재 위자료는 1200만원 안팎에 그친다. 또 사고로 성기능 장애가 생겨도 위자료는 8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사생활 침해에 대한 위자료가 성기능 장애 위자료와 비슷하거나 약간 더 높게 인정돼온 게 우리 현실이다. 프랑스의 경우 성기능 완전상실 시 5만 유로(약 6500만원)까지 책정된다.

이동진 교수는 “외국은 인신손해 위자료 책정 때 노동력 상실률만 고려하지 않고 취미, 성생활, 외모는 물론 영구적 상해는 연령, 일시적 상해는 치료기간까지 고려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미국 미주리주 연방법원이 올해 5월 초 존슨앤존슨의 파우더를 썼다가 암에 걸려 난소 적출 수술을 받은 한 62세 여성에게 실피해배상금만 500만 달러 지급을 명령했다. 위자료만 수십억원으로 추정된다. 한국이었다면 임신 가능성이 없고, 노동능력도 인정 못 받는 60대 여성의 위자료는 약 2000만~3000만원을 넘기기 어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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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는 위자료의 성격에 ‘징벌’ ‘제재’의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 해석하는 데에 논란이 있다. 그러나 위자료는 그 자체로 실제 손해에 대한 배상의 의미로 보는 게 더 맞다는 견해가 많다. 일실수입, 치료비, 장례비 등을 배상하는 것은 당연히 받아내야 할 비용이다. 이런 것들만 ‘전보배상(실제 피해 배상)’이라고 한다면 정신적·심리적 피해 배상은 덤으로 준다는 뜻밖에 안 된다. 이 때문에 재산 손해(일실수입, 치료비, 장례비)는 물론 비재산 손해(정신피해 등 위자료)까지 포함한 것을 전보배상으로 보는 게 일반적 평가다. 상식적으로 일컫는 ‘배상’은 위자료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머지는 원래 물어야 할 재산 손해를 갚는 것일 뿐이다.

이창현 교수는 “최근 논의의 핵심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처럼 고의나 중대과실이 있는 경우에 위자료를 대폭 올릴 것인지 여부”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최재홍 환경보건위원장은 “실피해 구제방법으로서 위자료부터 올릴 필요가 있다”며 “위자료를 포함해 전보배상을 현실화한 뒤에 그 몇 배로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정할지 논의하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법원의 위자료 산정은 민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보험사별로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사망 시 위자료는 나이가 19세 이상~60세 미만이면 4500만원이고, 그밖의 나이대라면 4000만원이다.

위자료를 지급할 때 피해자 본인 위자료와 가족이 받을 위자료를 어떻게 정할지도 고려 대상이 된다. 보험의 경우 대체로 배우자는 500만원, 부모는 300만원, 자녀는 200만원, 형제자매 100만원, 시부모·장인장모는 100만원이 위자료로 지급된다. 다만 총액을 정해놓고 사망자와 유족이 나눠가지는 식은 위자료의 본질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1억 위자료의 경우 상속인이 한 명이면 2000만원, 피해자는 8000만원이다가 상속인이 두 명이면 각 2000만원에, 피해자는 6000만원으로 줄어드는 식이다.

위자료의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판결하면 편하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징역, 벌금 같은 경우 법정 상한선이나 하한선을 감안한 ‘양형 기준’도 마련돼 있다. 그러나 위자료는 법적 근거가 없어 전적으로 판사의 재량으로 정할 뿐이다. 통일된 ‘위자료 기준’을 만들기 어려운 근본 이유다. 대법원은 위자료 산정 때 ‘참고’할 만한 예시를 만들지 검토해 왔다. 대법원은 7월 15일 대전지방법원에서 ‘2016 전국 민사법관 포럼’을 열어 ‘불법행위 유형에 따른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모임을 거쳐 판사들이 어느만큼의 재량을 보일지 주목된다. 서울지방법원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위자료 수준이 우리 법 감정에 안 맞는 게 사실”이라며 “사건 원인과 경위에 따라서 판사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수억원짜리 위자료 판결을 내려도 되는데 걱정들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판사 출신인 이동진 교수도 “판결할 때 보험사 영향 등 사회적 파장을 지나치게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판사들이 사회의 짐을 다 지겠다는 투로 너무 많은 걸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간통제 폐지로 위자료 올리자고? 사라질 수도 있다



위자료의 한 축을 이루는 이혼 위자료도 근래에 더 관심을 끌고 있다. 간통제가 위헌이라며 2015년 2월 헌법재판소에서 62년 만에 폐지 결정이 내려져서다. 기존 형법 241조는 간통한 자는 2년 이하 징역에 처하게 규정했다. 간통의 죗값이 징역이었다. 그러나 간통제가 폐지되자 죗값은 결국 돈으로 치러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불륜으로 배신당한 배우자를 보호하려면 그나마 위자료라도 더 챙겨줘야 하는 게 정의에 맞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국내 법체계는 이혼에 대해 ‘유책주의’를 기본으로 취한다. 즉 바람 피운 자는 그렇지 않은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하지 못하는 게 원칙이다. 반면 미국, 유럽 등 절대다수 국가는 ‘파탄주의’를 택한다. 사실상 혼인관계가 깨졌다면 누가 청구해도 이혼을 허락한다.

그런데 간통죄를 폐지하면서 헌재는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 간통죄가 더 이상 혼인생활 유지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파탄주의 성격이 상당 부분 가미된 셈이다. 반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년 9월 유책주의를 고수했다. 다만 대법관 13명 중 6명이 파탄주의를 제시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대법관이 바뀔 경우 국내 이혼도 파탄주의로 선회할 개연성이 있다.

법학자 등 전문가 다수는 이혼도 파탄주의로 바뀔 가능성을 높게 본다. 우선 세계 흐름에 맞아서다. 서울가정법원 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는 “불륜을 당하는 상대 배우자 입장에선 안타깝지만 시대 흐름은 파탄주의가 대세이며, 우리도 장기적으로는 거스르기 힘들다”며 “부부 사이 애정을 법으로 강제하는 건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위자료다. 불륜을 당한 배우자는 위자료라도 많이 받고 싶겠지만 이 또한 장담하기 어렵다. 오히려 해외 사례를 보면 반대다. 파탄주의를 택한 대다수 국가는 엄밀히 ‘이혼 위자료’는 없는 편이다. 대신 재산분할이나 자녀 양육비를 부담할 뿐이다. 이는 불륜의 죗값이 아니다. 불륜이 불법이 아니게 됐다면 위자료를 논하기가 애매해진다. 국내 민법을 제정할 당시는 해외에도 이혼 위자료를 채택한 나라가 많았으나 그 사이에 거의 다 사라졌다.

이는 “유부녀라고 해도 불륜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여성의 경제·사회 지위가 올라가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게 법조인들의 일반적 해석이다. 자녀를 봐서라도 이혼을 막겠다는 배우자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만, 위자료로 가정을 지키기는 점차 어려워지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오직 믿을 건 애정뿐인 시대? 한편으로는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으론 안타까운 현실이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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