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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기형화된 실손보험, 보험사 손해율만 낮춘다고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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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0만명 가입한 제2건강보험… 과잉진료 논란도 갈수록 심화

경향신문

병원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추의 염좌 및 긴장 진단을 받은 환자가 병원에서 도수치료를 받았다. 38일 동안 19차례였다. 실손보험에 가입했던 그는 보험사에 의료비를 청구해 실손의료비 99만7000원을 지급받았다. 연이어 그는 같은 증상으로 77일 동안 22차례의 도수치료를 받았다. 그는 재차 보험사에 실손의료비를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이번에는 실손의료비 지급 불가를 통보했다. 환자는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위원회는 환자의 실손의료비 청구를 기각했다. 위원회가 쟁점으로 삼은 것은 환자가 추가로 시행받은 도수치료가 보험약관에서 정하고 있는 ‘질병으로 인하여 병원에 통원하여 치료를 받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위원회는 환자가 추가로 받은 22차례의 도수치료는 질병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치료로 보기가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그 근거로 병원 진료기록에 경추통 등에 대한 환자의 증상 및 통증 호소에 대해서만 기록되어 있을 뿐 그 진단의 기초가 되는 객관적 검사 결과가 부족하다는 것을 들었다. 또한 환자의 통증 호전을 목적으로 장기간 도수치료를 시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질병에 대한 상태의 호조 등 치료효과에 대한 평가가 없는 점도 기각 사유로 밝혔다.

실손보험은 현재 3400만명이 가입했다. 국민의 70%가 가입한 셈이다. 그러나 실손보험을 둘러싼 과잉진료와 도덕적 해이 논란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면 실손보험을 들었느냐는 것을 먼저 물어본다는 이야기는 이제 흔하다. 일부 정형외과에서는 실손보험 가입자들에게 불필요한 도수치료를 권한 후 1시간 치료 시간 중에 10분은 도수치료를, 50분은 피부 레이저 시술을 받게 해준다는 소문도 돈다.

보험사들은 공급자인 의사와 수요자인 환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과잉진료로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감당하기 어렵게 높아지고 있다며 개선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얼마 전 금융위원회는 실손보험 개정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모든 입원·통원 치료를 보장하는 ‘표준형’을 ‘기본형’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6월 13일 임종륭 금융위원장은 “거의 모든 의료서비스를 보장하는 획일적인 표준화 구조를 탈피해 소비자가 보장 내역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기본형과 추가되는 다양한 특약의 방식으로 상품구조를 개편하겠다”고 말했다. ‘표준형’에서 보장을 줄이고 보험료를 최대 40%까지 낮춰 기본형을 설계한 후 소비자들의 상황에 따라 도수치료, 고주파 열치료술, 수액주사 등의 다양한 특약들을 더할 수 있도록 상품 구조를 바꾼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원회의 개선안이 얽히고설킨 실손보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회의적으로 본다. 상품 구조를 바꾼다는 것은 바로 보험료를 올리기는 어려우니 간접적으로 보험료를 올리려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의료팀장의 말이다. “기본형으로 바꾼다는 것은 한마디로 보험료를 올린다는 것이다. 지금 판매되는 표준형인 실손의료보험은 그렇게 되면 고가의 고급형이 될 것이다. 지금 손실이 크니까 보험료를 올리는 건데, 직접 올린다고 하면 부담스러우니까 상품을 개편하겠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실장은 실손보험의 수요자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일정 부분 효과는 있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현재 얽혀 있는 실손보험의 문제를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개정안의 방향은 소비자들이 의료서비스를 과도하게 이용하는 것을 줄여보겠다는 관리 차원인 셈인데, 일정 부분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외 다른 요인들, 즉 의료 공급자와 보험사에 대한 대책은 없다. 보험사들의 경우 손해율이 높아졌다며 그저 손 놓고 있다가 보험료를 올려버리는데, 이런 보험사의 문제도 고려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보험사들은 과잉진료와 도덕적 해이를 거론하며 손해율의 문제를 소비자 쪽으로 돌리지만, 이러한 보험사들의 하소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보험사들이 주장하는 실손보험 손해율은 120%를 넘어섰다. 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80%,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96.6%를 손해율로 계산한다. 계산하는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검증장치가 없어 나타나는 문제다. 숫자는 제각각 달라도 실손보험이 다른 보험에 비해 손해율이 높다는 것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손해율이 높더라도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의 손해율만 부각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윤용찬 보험약관 전문가의 말이다. “실손보험이 다른 보험보다 손해율이 높기는 할 텐데, 문제는 그래서 보험료를 올리는 것이라면 손해율이 낮은 다른 보험에서 보험료를 깎아주느냐는 것이다. 손해보는 데서는 이익을 보장받으려고 하는데, 이익을 보는 데에서는 왜 소비자들에게 돌려주지 않나. 말할 자격이 없다.” 김종명 팀장의 말이다. “대개의 실손보험 보험료는 7만~10만원, 적으면 5만원이다. 가입자는 실손보험이라고 생각하고 들지만, 사실 실손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실손보험료는 상품 구성에서 2만~3만원이 안 된다. 나머지는 온갖 특약 비용이다.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에서 손해율이 100%를 넘어갔다고 하는데, 같이 구성된 다른 특약보험료에서는 굉장히 많이 남기고 있다. 실손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보험상품의 전체 이익구조를 따져봐야 한다. 가입자는 통합된 보험상품을 구입한다. 남는 것은 그냥 두고 손해보는 것만 문제 삼아서 이를 올리겠다고 하는 논리가 과연 합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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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들이 손해율만 앞세울 뿐 이익을 얻는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비슷한 문제제기가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있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로 비급여 영역이 줄면서 민간보험사가 상대적인 이익을 얻지 않았느냐는 지적이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용익 의원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따른 실손의료보험의 반사이익 금액을 추계한 결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건강보험에 투입되는 12조7960억원 중 민간보험회사가 얻는 반사이익은 총 2조5379억원에 달했다.

올해 4월 1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4대 중증질환과 3대 비급여 개선 등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2013~2017년 사이 민간보험사가 총 1조5244억원의 반사이익을 얻는 것으로 추산됐다. 신현웅 실장은 “공공보험에서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민간보험회사로 돈이 들어가게 된다. 민간보험이 가입자들에게 주는 걸 공공보험이 지불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입자는 기존 민간보험에서 받던 것을 공공보험에서 받아서 차이가 없는데도 민간보험에서는 보험사에서 주는 걸 공공보험에서 주니까 앉아서 돈을 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 실장은 이러한 이익에 대해서 민간보험사들이 사회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공적인 기여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반사이익에 대해서 보험사들은 실질적인 이익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 또한 실손보험 문제의 해법을 찾는 방향을 소비자의 권익보다는 민간보험사의 손해율을 낮춰 이익을 보전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올해 1월 1일 개정된 금감원의 실손보험 표준약관도 결국 민간보험사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간 것 아니냐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윤용찬 보험약관 전문가에 따르면 새로 개정된 표준약관은 보험사에는 유리하지만 “소비자에게는 재앙 수준”이다. 개정 표준약관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유(제3조)가 새로 추가돼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통원치료가 가능하다고 인정함에도 피보험자 본인이 자의적으로 발생한 입원의료비는 실손입원의료비를 보상해주지 않는다.” 윤 전문가는 이 조항이 보험사들에게는 왜 이익이며 가입자들에게는 왜 손해가 되는지 설명했다. “암환자나 큰 사고를 당해 장애가 있는 환자들은 요양병원 같은 곳에 오래 있어야 한다. 일반 대형병원에서는 환자들을 일찍 내쫓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들어가는 입원·치료비는 실손의료비에서 보상을 해줬다. 그런데 요양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대부분 보호자와 함께 통원치료가 가능하다. 완전히 누워서 지내야 하는 분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통원치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보호자가 가정의 생계를 이어가려면 보호자가 환자만 돌볼 수 없으니 환자가 통원치료를 받기보다 요양병원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개정된 약관으로 ‘가족을 동원하면 통원치료할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지면 치료비의 지급은 끊긴다. 이 부분에 대해 그간 보험사들의 지출 비중이 상당했을 것이다.”

의료계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제기됐다. 표준약관에 새로 추가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대상 수술 방법 또는 치료재료가 사용되지 않은 시술은 외모 개선 목적으로 본다’는 조항 또한 민간보험사들에게만 유리하다는 게 비판의 주내용이다. 금감원은 올해부터 혈관레이저 폐쇄술과 고주파 혈관 폐쇄술을 ‘외모 개선’, 즉 미용 목적 수술로 간주하고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토록 실손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는 금감원이 보험금 지급 대상으로 제외한 수술 중 미용 목적으로 하는 수술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전 회장은 “하지정맥류 수술이 대표적인데, 환자들 중 혈관이 튀어나와서 미용 목적으로 수술하는 사람들은 10%도 안 된다. 거의 대부분이 다리가 무겁고 아파서 수술을 받는다. 안에서 피가 거꾸로 흘러 아프기 때문에 수술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하지정맥류 때문에 보험료 지급이 많아지니까 보험회사들이 실손보험 대상에서 이를 제외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노환규 전 회장은 67세 여성의 정맥류 레이저 수술을 했었을 때의 사례를 들었다. 다리가 붓고 통증이 심해 병원을 찾은 67세 여성 환자가 정맥류 진단을 받고 레이저 수술을 받았다. 수술확인서에는 ‘미용 개선 목적이 아닌 질병치료 목적 수술임’이라고 적었다. 수술이 끝나고 몇 주가 지나자 보험회사 직원이 찾아와 “미용 개선 목적이 아니라고 했는데, 미용 개선 목적이 1% 정도는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실손보험을 둘러싼 보험사 의료계와 소비자의 복마전이 의료생태계를 기형적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노환규 전 회장은 “실손보험은 현재 완전히 비정상이다. 의사들도 과잉진료하며 양심을 버리는 의사, 양심을 지키는 의사 이렇게 양분돼 있다”고 말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실손보험은 태생적으로 시장을 교란시킬 수밖에 없다. 김종명 팀장은 “실손보험은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가격을 낮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보험의 원리다. 국민건강보험은 병원비가 비싸서 의료서비스에 접근하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실손보험도 마찬가지다. 실손보험을 통해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적은 부담으로 받으려는 목적이다. 그러나 실손보험이 공보험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실손보험은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손보험에 가입하면 패턴이 만들어진다. 예컨대 보험료를 10만원 냈다. 하나도 이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갱신할 때마다 보험료가 올라간다. 보험사는 다른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올라간다고 말한다. 보험가입자 입장에서 의료를 이용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생각해서 본전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이는 지극히 합리적인 경제행위다. 구조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기 때문에 환자나 병원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소득이 많아서 많이 낸다고 건강보험료가 아까워 의료 이용을 하지는 않는다. 실손보험은 다르다. 그래서 한 번 경험하면 계속 하게 되는 것이다.” 노환규 전 회장은 “실손보험을 악용한다는 사람들을 쫓아갈 수가 없다. 소비자와 공급자가 서로 뜻이 맞을 경우 도저히 쫓아갈 수가 없다. 이게 지금 민간보험의 실체다”라고 말했다. 신현웅 실장은 “실손보험에 가입해도 실제로 쓰는 사람은 23% 정도다. 그 사람들만 집중적으로 쓴다. ‘안 쓰면 바보다’라는 식으로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실손보험의 해법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장으로 실손보험의 영역을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윤용찬 전문가는 “실손보험을 이런 식으로 소비자들에게 불리하게 하면서 판매를 허용할 것이라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더 확대해 소비자들이 사적 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게 사회적으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김종명 팀장은 외국의 사례를 들며 치과, 안경, 일부 재활치료 등 고급 의료서비스에서 보충형으로 실손보험 시장이 형성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실손보험 영역을 건강보험이 커버하도록 해서 국민들이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기본적인 치료를 받는 데는 실손보험이 필요 없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신현웅 실장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해 비급여 부분을 줄이고 실제로 민간보험이 할 수 있는 것은 고급 의료서비스밖에 없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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