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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국사의 안뜰] 〈1〉세종대왕의 한글창제에 깃든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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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중국 중심의 질서 속에서 ‘우리 것의 소중함’ 일깨워

세종대왕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총민하고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아, 비록 몹시 춥고 더운 날씨라도 밤을 새워 글을 읽었다’고 한다. 왕위에 오른 뒤에도 세종은 호학군주(好學君主)로서 문학, 사학, 철학을 두루 공부하였는데, 특히 사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경연(經筵)에서도 중국 사마광의 ‘자치통감’과 주자의 ‘자치통감강목’을 깊이 연구하는 한편, ‘자치통감’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사학에 남다른 태도를 보였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이제 안정 단계로 들어선 조선 사회가 과연 어떠한 비전을 가지고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세종의 진정한 고민의 산물이다. 세종은 즉위할 때부터 ‘고려사’ 편찬에도 상당한 관심을 표했다. 찬란하게 건국한 고려가 왜 몽고에게 외침을 당하고, 모순에 빠져 쇠락해갔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역사 정리를 시도하였다. 세종은 역사를 반추하여 얻는 교훈과 지혜를 통하여 새로운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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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제시한 비전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는 민족의 자긍심을 키워주는 민족문화 정립이다. 당시 동아시아의 중심이 중국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종의 민족문화 정립이 내포하는 의미와 가치는 클 수밖에 없다.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고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움으로써 조선의 독창성과 자주성을 발전시키려는 세종의 의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선진문화는 받아들이되, 조선의 정체성과 자주성은 지키는 시대를 연 것이다.

세종은 음운, 음악, 의학, 천문, 농법 등 다방면에서 조선만의 고유함과 독자성을 부각시켰다. 우선 세종은 중국과 우리의 말이 다름에도 같은 문자를 쓴다는 모순을 해결하고자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이는 말과 글이 다른 모순의 극복과 더불어 중국에 대한 자주성과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한 세종의 노력이었다. 이를 위해 세종은 항상 앞장서서 연구하고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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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세종의 명으로 1445년 편찬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한글 창제 이후 간행된 최초의 한글 문헌으로 한글 사용의 가장 오래된 용례를 보여준다.


세종은 두 번째 비전으로 문화 민족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문흥(文興) 정책을 수립하였다. 문화가 살면 민족이 산다고 할 정도로 문화는 우리 인간이 가져야 할 참된 가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문화가 일어나면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에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말이 있다. 즉 우리가 문화를 알게 되면 함부로 남을 모함하고 남의 것을 탐하거나 증오하지 않는 올바른 심성의 가치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세종의 생각이었다.

즉위하자 집현전을 궁궐에 설치하고 문화의 시대를 열어 인간으로서나 지도자로서 해야 할 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한 엄격한 도덕적 규범을 세움으로써 절제와 자정 능력을 스스로 키워나가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럼으로써 조선 왕조 초기,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의 비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이어받아야 할 유산과 과감하게 변화해야 할 과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전통과 미래를 슬기롭게 조화시켜 나라의 기반을 굳건하게 다져나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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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19세기 편찬된 ‘동의보감 내경편 언해’(東醫寶鑑內景篇諺解)는 장서각 유일본으로, 동의보감을 일반 백성들에게 보급하기 위한 한글 언해편이다.


이에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을 동원해서 정치, 경제, 과학, 교육, 음악 등 다방면에 걸친 연구를 통해 새롭게 우리 문화를 꽃피웠다. 문화 진흥의 기반은 교육에 있다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고, 일읍일교(一邑一校) 정책을 수립하여 한 읍당 한 개의 학교를 만드는 작업도 함께 해나갔다. 교육과 문화를 진작시키면서 세종 시대는 탄탄한 문화부흥의 초석을 다졌으며, 세종은 이를 통해 국가 운영에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도 있었다.

세 번째, 세종에게는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따뜻한 가슴이 있었다.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신분의 노비들에게도 마음의 손길을 내밀었다. 세종은 조선이 신분제 사회라 해도 노비도 인간이라는 박애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즉위 8년(1426)에 여종이 출산 후 바로 노동에 종사하는 것을 금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산후 100일의 휴가를 내렸다. 그로부터 4년 후인 세종 12년(1430)에는 관비가 만삭인 채로 밭에서 일하다 갑자기 산기가 일어나 출산을 하게 되면 태아나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 산전(産前) 휴가로 한 달을 주도록 명하였다. 이어 세종 16년(1434)에는 남편에게까지 아이 양육을 도울 수 있도록 산후 휴가 한 달을 주게 하였다. 관비에 대하여 부부 합산 산전, 산후 총 160일의 휴가를 준 것이다. 이는 동서고금에도 유례가 없는 시대를 뛰어넘는 복지정책으로, 어떤 이론에 근거한 정책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세종의 인간에 대한 사랑,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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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참의 황여일 처 숙부인 이씨 소지’는 1651년(효종2) 숙부인 완산이씨가 억울함을 관가에 호소한 민원문서이다.


세종의 한글 창제도 백성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의사소통을 하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한글은 양반이나 지배층을 위한 글이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베풀고 세제를 감면해주고 농기구를 만들어도 한문을 모르는 농민들과 소통하기는 어려웠던 현실에서 그 길을 열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통로로 삼았던 것이 한글 창제였다. 이는 백성들의 삶을 챙기고 마음을 헤아리는 역지사지의 소통과 배려 그리고 포용의 소산이었다. 만일 세종의 한글 창제가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운 민족이 되었겠는가. 이러한 점에서 10월 9일 한글날은 우리가 대대로 기려야 할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이다. 스승의 날을 5월 15일로 정한 것도 이날이 바로 한글을 창제하여 지식의 나눔을 통해 우리 민족에게 광명을 찾아준 영원한 스승이신 세종의 탄신일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 570돌이 되는 해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는 이를 기념하고, 우리 한글의 위상을 폭넓게 조망하기 위해 한글 특별전을 마련하였다. 한글은 우리 민족의 독창성과 문화적 자긍심이 깃든 문자이자 자랑스러운 민족의 유산이다. 8000개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최고의 과학적, 창의적 문자라는 위대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한글 창제에 깃든 민본정신이 더욱 숭고한 것이다.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인 훈민정음은 조선시대의 모든 계층이 공유한 문자가 됨으로써 창의적인 전통문화를 꽃피웠고, 지금 이 시대가 누리는 문화의 풍요로움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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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1882년(고종 19년)의 ‘간택단자’(揀擇單子)는 후일 순종이 되는 세자 척(?)의 혼례 시 작성된 세자빈 후보자 명단이다.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이번 특별전은 우리 한글을 “소통과 배려의 문자”라는 주제로 조명하고자 했다. 한글은 글을 몰라 어두운 세상을 살았던 백성들에게 소통을 통한 밝음의 길을 열어주었고, 억울한 일이 생겨도 글을 쓸 줄 몰라 호소할 길이 없었던 서민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 배려와 희망의 문자이기도 했다. 소통과 배려는 이 시대에 더욱 중요한 가치로 부상되고 있는데 세종대왕은 600여년 전 한글 창제를 통해 이를 실현하였다.

세종은 합리적인 국가운영, 공정한 인재등용,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을 통해 한글 창제라는 찬란한 업적과 문예부흥의 초석을 놓았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지식 강국, 교육 강국의 시대를 열었고, 오늘날 첨단 정보화시대와 문화한류를 이끌어가고 확산하는 데에도 든든한 기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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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장서각이 보유한 한글 자료는 특정 계층에 한정되지 않고 왕실과 상류층으로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전 계층이 사용한 문자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공식적인 문자는 주로 한자였지만, 한글은 어느 시기에도 단절되지 않고 우리의 고유한 감성을 간직한 문자로 사용되었다. 임금이 딸에게 보낸 애틋한 서한, 시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에게 보낸 편지, 여성이 당당하게 자신과 가문을 지키려고 남긴 유서, 억울함을 관가에 고발한 소지, 어머니가 딸에게 보낸 편지 등 아름답고 따뜻한 내용들이 한글에서 피어났다. 이러한 한글문화의 저력과 궤적을 이번 특별전에 선보이는 왕실과 민간의 한글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만날 수 있다고 했듯이 한글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미래를 여는 문화자산이자 전통문화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 어느 나라가 임금이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들어준 예가 있을까? 바로 한글날 기념절 노래에도 새겨 있듯이 한글은 문화의 터전이고, 민주의 근본이고, 생활의 무기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앞으로도 한글 창제 정신의 기반 위에서 새로운 문화융성의 시대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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