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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감독이 믿어주니 김현수 불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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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칭머신과 씨름하며 강속구 공략

타율 0.339 팀내 최고, 2번 타자로

감독 “현수가 팀에 있는 건 행운”

현지 언론도 “한국의 이치로”

지난달 1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캠든 야즈.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홈 경기에 출전한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28)가 4-3으로 앞선 6회 말 안타를 치고 나간 뒤 후속 타자의 적시타로 홈을 밟았다. 화이트삭스의 추격을 뿌리치는 귀중한 득점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더그아웃에 들어온 김현수는 벤치에 앉아 시원한 이온음료를 들이켰다. 그런데 TV 중계화면에 잡힌 김현수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이온음료를 마시는 틈틈이 더그아웃에 있는 동료들과 코칭 스태프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고스란히 잡혔다.

이날 김현수는 MLB 데뷔 첫 장타를 포함해 4타수 3안타를 때렸지만 활짝 웃지 못했다. 한국 팬들은 “얼마나 눈칫밥을 먹었으면 음료수조차 마음 편히 못 마시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말 2년 총액 700만 달러(약 82억원)에 볼티모어와 계약할 당시만 해도 김현수는 ‘한국에서 온 타격기계’로 주목받았다. 김현수는 “실패한 선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출사표와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MLB 생활은 김현수가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장밋빛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들이 모인 험난한 정글을 헤쳐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는 빠른 볼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시범경기에서 타율 0.178(45타수 8안타)에 그쳤다.

구단은 김현수에게 마이너리그행을 권유하는 한편 계약 해지 가능성까지 언론에 흘려 압박했다.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행사해 MLB에 잔류한 김현수는 개막전에서 홈 팬들의 야유를 들었다.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선발은커녕 대타 기회도 잡기 어려웠다.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는 동안 김현수는 피칭머신과 싸웠다. 시속 150㎞ 이상 볼만 수천 개를 쳤다. 스콧 쿨바 볼티모어 타격코치는 “김현수는 쉬는 날도 없이 매일 피칭머신에서 나오는 강속구를 쳤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고 말했다.

설움을 견디며 남몰래 흘린 땀방울이 김현수를 일으켜 세웠다. 김현수는 경쟁자 조이 리카드(25)의 부진으로 얻은 기회를 허투루 날리지 않았다. 지난 4월 6경기에 출전해 강속구를 잘 공략하면서 타율 0.600(15타수 9안타)을 기록했다. 주당 한 경기 정도만 뛰면서도 타격감을 잘 유지한 덕분에 5월에는 출전 경기 수가 두 배(12경기)로 늘었다. 이달에는 선발 외야수 자리를 꿰찼다. 24일 현재 김현수는 타율 0.339(112타수 38안타)로 팀에서 가장 높다. 9번에서 시작한 타순도 어느새 2번까지 올라갔다.

김현수를 탐탁지 않아 하던 벅 쇼월터 볼티모어 감독의 태도도 달라졌다. 쇼월터 감독은 “김현수에게는 새 무대에서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제 준비가 됐다.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김현수가 우리 팀에 있는 건 행운”이라고 했다.

지역 언론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기 시작했다. ‘볼티모어 선’은 지난 23일 김현수를 일본 야구 전설인 ‘타격 천재’ 스즈키 이치로(43·마이애미 말린스)에 비유했다. 이 매체는 “김현수는 한국의 스즈키 이치로다. 꾸준히 안타를 생산하는 그를 이치로처럼 1번 타순에 세워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수의 출루율은 0.420이다.

김현수는 이제 더 이상 이온음료를 마시며 주위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다. 더그아웃 분위기를 주도할 정도로 붙임성도 좋아졌다. 그는 “운이 잘 따르는 것 같다. 아직 부족한 게 많다. 너클볼 같은 변화구가 어려운데 더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박소영 기자 ol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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