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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카드뉴스] "그 여름 이후, 난 평생 고개를 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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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 한국인 원폭 피해자/ “그 여름 이후, 난 평생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1

저는 6살 때,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갔습니다.

15살이 되던 해, 평소대로 정미소로 출근해 사무실 문을 여는데

‘깜빡’하는 불빛이 보이더니 건물이 무너져 내렸어요

아버지는 나를 찾다가 나쁜 공기를 너무 많이 마셔 하혈을 하셨어요

가망이 없다며 본인을 일본에 두고 가라고 하셨죠. 갓난 동생도 죽었어요.

이후로 난 평생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얼굴에 난 큰 흉터 때문에.

- 원폭 피해자 안월선 할머니의 증언

사진설명: 히로시마 원폭구름

#2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70여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습니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진설명: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원폭돔 내부

#3

전체 피폭자의 10%인 7만 명은 한국인

일본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폭 당한 나라, 한국

사진설명: 2003년 8월 5일,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을 위해 헌화 하는 재일동포들[AFP=연합]

#4

당시 많은 한국인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혹은

일제의 극심한 수탈을 이기지 못해 일본 히로시마로 이주했습니다.

사진설명: 일제 시대 징용

#5

그들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빛의 상처’가 남았지만,

누구도 그들의 상처를 책임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설명: 경남 합천 원폭 피해자 복지회관의 피해자들

#6

해방 후 고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치료는 커녕 피폭 사실을 숨겨야 했고

“화상 입고 거지꼴로 구걸을 하니 사람들이 우리를 ‘귀환동포’가 아니라 ‘우환동포’라고 불렀다”

- 김도식(원폭피해자복지회관 거주민)

사진설명: 2016년 5월 24일, 24일 합천 원폭 피해자 복지회관에서 피해 1세대 할머니

#7

일본 정부는 1957년 ‘원폭 피해자 지원법’ 제정했지만, 한국인 피해자는 적용대상에서 제외

원폭 피해자들은 ‘당연한 권리’를 위해 30여년간* 일본과 싸워야 했습니다

(*1972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 투쟁 시작)

사진설명: 1973년 9월 6일, 6회 원폭피해자 추도식

#8

“한국 정부는 늙고 힘없는 피해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 성락구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

정부 지원 없이 사비로 소송을 하다 2002년 힘겹게 얻어낸 첫 승리*

(*일본인 피폭자와 달리 한국인에게는 1년에 30만 엔(300만 원)의 상한선을 두는 배상 판결)

사진설명: 일본 정부가 피폭자임을 확인해 발행한 건강수첩

#9

“해외 거주를 이유로 의료비를 전액 지급하지 않는 건 부당하다” -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

피폭 생존자들은 2015년에 이르러서야 ‘의료비 전액 지급’을 약속 받았습니다

사진설명: 일본 최고재판소

#10

하지만 원폭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폭 피해자 2세 사망자 중 10세 미만은 52%, 사망자의 61%는 원인 불명*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사진설명: 1945년 8월 히로시마 [SIPA PRESS]

#11

“삶은 계속돼야 한다”

원폭 피해가 대물림 된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건 2002년,

사회적 편견에도 자신이 ‘원폭 2세 환우’임을 밝힌 故 김형률(1970-2005)씨 덕분이었습니다.

사진설명: 기자회견 중인 김형률

#12

김형률씨는 피폭 당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지 20일 만에 쌍둥이 동생을 잃었고,

35년의 짧은 삶 동안 세균 감염에 취약한 희귀병을 앓았습니다

사진설명: 김형률 생전 모습[합천평화의집]

#13

그의 노력으로 원폭 2세의 존재*는 알려졌지만 그 중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전쟁이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한정순 한국 원폭 2세 환우회 명예회장

(*2016년 기준 7600여명으로 추정)

사진설명: 1973년 11월 19일, 한국인 원폭 피해자 추모탑

#14

19대 국회에서 통과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에도

원폭 피해 2세에 대한 실태조사나 지원 방안은 빠져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사진설명: 2016년 19대 국회 본회의장

#15

하지만 우리 정부가 지난 70년간 “일본 정부의 연구 결과를 보고 대책을 세우겠다” 며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진일보한 성과

#16

“우리는 국적도 없다고 할 정도로 소외된 국민이다” - 심진태 합천 지부장

우리가 외면한 71년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1세대 피해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이제 생존자는 2400여명

사진설명: 원폭 피해자 박규묵 할아버지의 상처(초상권 주의)

#17

“한국에 이래 원폭 피해자들이 많다는 걸 누가 알끼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기다.” - 안월선 할머니

이들에게 1945년 히로시마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진설명: X (이 분이 안월선 할머니세요!)

취재.구성 이근아/ 디자인 주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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