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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부산항 역사 중심에 영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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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권의 부산 속살 투어(5)-영도 남항동

한국일보

도개교인 영도다리의 다리가 올라가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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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시장과 영도대교, 남항대교가 둥그렇게 둘러싼 부산 남항은 바로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해전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다. 물론 이곳을 통해 들어온 왜군은 부산진성을 함락시켰으며 조선에게 첫 패전을 안긴 장소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승전지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거주지역으로 바뀐 셈이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해전에서 승리를 거듭해 한산도와 안골포해전을 통해 제해권을 장악한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일본군의 근거지 부산을 공격해서 일본군의 본국과의 연락을 두절시키기 위해 8월 24일 부산포로 향했다. 부산포해전은 1592년 9월 1일, 부산포와 절영도 앞바다에서 정박한 일본군 함대를 기습하여 대파한 전투이다. 이 승리로 조선군은 남해상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고, 일본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때가 1592년 10월 5일이다. ‘시민의 날’이 제정된 이유다.

개항 후 일 어민 어로 본거지

어묵ㆍ왜간장 여기서 퍼져나가

한국 근대 조선의 발상지이기도

영도다리는 이산가족 만남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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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영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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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봉래산에서 내려다 본 부산 남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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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은 부산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고 그 중심에 영도가 있다. 영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낸 단어가 ‘영도다리’다. 영도대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제의 수탈과 6ㆍ25전쟁 등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겪어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수난이다. 영도다리는 결정적으로 한국전쟁을 통해 이산가족의 ‘만남의 장소’로 회자되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가장 뚜렷한 이미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전쟁 당시 영도는 전국에서 모여든 피란민들의 애절한 사연이 얽히는 무대가 되었고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대중가요가 부산시민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영도경찰서 뒤편의 선창에 들어서면 선창가에선 평소 맡을 수 없는 기름내가 확 풍긴다. 파닥거리는 자갈치시장의 비린내와도 또 다르다. 맑은 비린내가 아니라 기름내 나는 비린내다. 이 주위로 기름때 절은 작업복 입고 열심히 손에 기름을 묻혀가며 기름밥 먹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동대교맨션’ 자리는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바닷가였다. 이곳 호안으로 자연만의 형태여서 바다에 바람이 일어 파도가 높을 때면 어선들이 풍랑을 피해 스며들기에 알맞은 포구였기에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포구’라고 ‘대풍포(待風浦)’라 불렀다. 대풍포는 정박지로 삼아 많은 일본 어선들이 운집하였다. 1916년부터 1926년 6월까지의 기간에는 이곳 해안지대가 매립되고 호안공사가 이루어져 항만의 면모를 갖추게 됨에 따라 일본 어민들의 어로 본거지가 되었다. 어묵과 왜간장이 여기서 퍼져나갔고, 중소 조선소와 선박 수리업체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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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최초의 목선 조선소 다나까 조선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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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영도 왜관터. 지금의 부산남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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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가 즐비한 이곳 해변은 철 냄새가 난다. 거기에다 전기, 냉동, 엔진, 스크류, 페인트 상가들이 골목을 잇고 있다. 모두 조선과 연관된 부속품들이다. 여기저기 공장에서 용접불꽃이 파랗게 일며 길바닥은 쇠똥이 씻기지 않아 불그레하다. 이곳이 한국 근대 조선의 발상지다. 1887년 세워진 ‘다나까조선’ 공장은 우리나라에 진출한 일본인 조선업체 중 가장 먼저 설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목선 조선소다. 비록 일제침략기에 타율적 개항으로 근대화가 이뤄지긴 했으나, 지금의 한국을 이루는 이정표가 영도에 세워진 건 사실이다. 그게 근대 조선으로 이어졌고, 영도가 조선수리의 메카가 된 배경이다.

대평동은 유난히 골목길이 많은 동네다. 그 골목길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골목안의 집들, 미로처럼 얽혀있거나 겨우 한 사람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들. 골목길 안에 있는 주택들과는 달리 길가의 주택들은 거의 이주하고 공장이나 선박부품을 파는 상점들로 바뀌었다. 조선소는 골목을 나서면 지척이다. 이 조선소길을 계속 따라가면 STX조선. STX조선을 지나면 천혜의 피항지 역할을 하고 있는 남항에 들어서게 된다. 바로 ‘사츠마보리’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사츠마(가고시마의 옛 지명) 수군들이 군선을 숨기기 위해 해안을 준설해 포구로 만들었던 곳으로 역시 일제강점기에 매립되었다. 화해와 교류의 상징인 절영도왜관이 있던 곳도 바로 이곳이다.

홍성권 작가ㆍ부산관광공사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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