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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불안한 경제, ‘파시즘 망령’을 불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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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신드롬’ 비롯…전 세계 파장

이주민·난민·빈민 등 사회약자를 경제난의 희생양 삼는 국가 늘어

경향신문

“트럼프, 당신을 보면 나치가 생각나”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27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트럼프 얼굴 옆에 나치 문양을 그린 포스터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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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는 지난 24일 밤(현지시간) 미국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방화에 투석전까지 벌어진 가두시위가 일어났다. 이날 이 지역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에 반발하며 항의하러 나온 군중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성난 시위대는 ‘트럼프는 히틀러다’ ‘트럼프를 찍는 것은 히틀러에게 표를 주는 것’ ‘파시스트 도널드 트럼프’ 등 트럼프를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는 팻말들을 들고 나왔다.

그동안에도 트럼프를 파시스트에 빗대 비판한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설마했던 트럼프가 결국 미 공화당 대선 후보직까지 거머쥐면서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도 본격적으로 파시즘의 재부상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파시즘 부활의 전조는 미국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초의 극우파 대통령 탄생 직전까지 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등 독재에 가까운 권위주의 통치도 활개를 친다. 법을 넘어 공권력을 남용, ‘징벌자’라는 별명이 붙은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아시아에서도 유사 파시즘이 발호할 징후가 보인다.

파시즘의 재부상 위기 앞에 놓인 세계는 지금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을 불러온 1920~30년대 대공황 시기와 경제적으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속화된 경제 양극화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지금은 어느 나라 가릴 것 없이 성장이 위축되고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것을 계기로 ‘세계 곳곳에서 글로벌 파시즘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고 28일 보도했다. 신문은 특히 경기침체라는 경제적 배경, 여기서 비롯된 사회적 차별과 약자·소수자를 배제하려는 양상이 과거 유럽의 파시즘과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각국이 겪고 있는 경제난의 양상은 다를지 몰라도 희생양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듯 미국은 히스패닉 등 이민자를, 유럽은 몰려드는 난민을, 필리핀은 가난한 계층과 범죄자를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다. 정치인은 이 같은 특정 집단을 향한 증오 감정을 활용해 세를 불린다. 파시즘 연구의 대가인 미국 컬럼비아대 로버트 팩스턴 석좌교수는 “경제적 정체와 난민 유입이 많은 민주 국가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멕시코에서 오는 이주자를 막기 위해 국경에 거대한 벽을 세우자는 트럼프의 반이민정책 공약은 1938년 독일 나치의 ‘수정의 밤’에 비유되기도 했다. ‘수정의 밤’은 나치 대원들이 그해 11월 독일 전역에서 유대인 가게를 급습하면서 깨진 유리 파편이 밤거리에 쏟아져 반짝인 것을 일컫는 말이다. 윌리엄 웰드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트럼프가 그만큼 파시스트에 가까운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한 비유다.

유럽에서는 난민이 표적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난민 유입을 통제하지 않는 내각을 해산시키겠다고 공언한 극우정당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가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한 뒤 결선투표에서 0.6%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무소속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전 녹색당 당수의 당선은 본격적인 파시즘을 막았다는 의미가 있지만 기존의 중도우파와 좌파 중심의 양당 체제는 이미 무너졌음을 보여줬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중도에 있는 인물보다 극단에 서 있는 이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세계적 현상도 파시즘 우려를 키우고 있다. 프랑스 극우파 민족전선(FN)과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약진한 것도 심상찮다.

중국에서도 인터넷 검열 등 사상 통제 강화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우상화 조짐에 ‘제2의 문화혁명’이 우려된다. 나치 홀로코스트를 건국의 정당성으로 홍보해온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을 사실상 점령해 파시스트적 통치를 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연정을 통해 이스라엘인을 공격한 팔레스타인인에 한해 사형제를 다시 도입하자고 주장해온 극우 정치인 아비그도르 리베르만을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하레츠 등 현지 언론들조차 이스라엘이 파시즘으로 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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