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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아파트는 싫다는데"…불안한 시골 어머니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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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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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뉴시스】이병찬 기자 = "방범에 취약한 농가 주택을 정리하고 시내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자고 말씀드리고 있는데 도무지 고집을 꺾을 수가 없네요."

충북 청주에 사는 직장인 박모(49)씨는 최근 증평 80대 할머니 살인사건을 접한 뒤 시골 농가 주택에 혼자 사는 70대 어머니에게 아파트 입주를 권유했으나 "쓸데없는 소리 말라"는 타박만 들었다.

평생을 살아온 시골 마을을 떠나 아는 사람도 없는 도심 아파트에 입주하기 꺼리는 어머니의 심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흉흉해지는 세상에 늙고 힘없는 노인을 '무방비' 농가 주택에 계속 살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박씨는 "청주시 등 지자체와 관련 단체에 독거노인 보호 관련 서비스가 있는지 문의했지만 귀에 쏙 들어오는 시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농지와 주택 등 재산 때문에 저소득층으로 분류되지 못한 데다 치매와 중풍 등을 앓는 환자도 아니어서 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범위는 더 좁았다.

박씨는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벌이고 있는 독거노인 집안 센서 설치 사업과 9988행복지키미 노인 돌봄 서비스에 눈길이 갔다.

9988행복지키미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의미의 충북도가 개발한 노인복지 프로그램이다. 전국적으로 성공한 노인복지시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각 지역 복지관 등 사업 수행기관에 소속된 행복지키미는 담당 독거노인의 집을 매일 방문하면서 건강과 생활불편, 안전관리 상태 등을 확인하고 있다. 올해 1월 현재 도내 11개 시군에는 6890명의 행복지킴이가 활동 중이다.

그러나 노(老)-노(老)케어(Care)라는 사업의 근간 때문에 실효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 각 지역 65세 이상의 비교적 건강한 노인이 그렇지 못한 노인을 돌보는 방식의 노인 일자리 사업이기 때문이다. 보수도 월 2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같은 마을 남성에게 살해된 뒤 엿새나 지나 발견된 증평 80대 할머니도 노노케어 사업 수혜자였으나 담당 행복지킴이들은 대문이 잠겨 있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 최악의 사례를 제외하면 환자 구조 구급과 안부 확인, 말벗, 집안 안전관리 실태 확인 등 고령의 독거노인들을 돌볼 수 있는, 사회적 안전 장치임은 분명해 보였으나 일면식도 없는 행복지킴이들의 책임감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제도라는 점에서 미덥지는 않았다.

노인돌봄기본서비스, 노인돌봄종합서비스 등 제도적 장치가 있지만 관리자 수가 도내 통틀어 수백명에 불과하거나 수혜 대상자도 매우 제한적이다.

박씨가 관심을 가진 또다른 독거노인 관리 시책은 집 안에 센서를 달아 노인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시스템 구축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세대당 25만~30만원인 설치 비용 전액을 나눠 부담하기 때문에 돈이 들지 않는다.

지난해까지 도내 독거노인 4000여가구에 이 시스템을 설치했다. 노인의 몸 움직임을 감지해 위험 여부를 알려준다. 올해도 500개를 더 설치할 예정이다.

그러나 프라이버시 침해를 우려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도 관계자는 "도내 시군에서 신청을 받아 센서 설치 대상을 파악하고 있으나 신청자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증평 살인사건 피해자 가족처럼 독거노인의 집안을 수시로 볼 수 있는 CCTV를 설치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거부하는 노인이 적지 않다는 시군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독거노인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화면을 통해 자식이나 담당 기관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은 '불편한 진실'일 수밖에 없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각 지역 봉사단체의 독거노인 돌봄 사업도 활발하다. 단양군 매포읍사무소에서 시작한 독거노인 가정 야쿠르트 배달 사업은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 조성한 기금으로 야쿠르트를 구입, 독거노인들에게 배달하면서 '밤새 안녕'을 확인하자는 취지의 사업이다. 그러나 독거노인이 집에 없거나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더는 상황을 확인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힘없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를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증평 노인 살인사건의 범인은 수년전에도 같은 방식으로 한 마을에 사는 할머니를 살해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살인과 강도, 성폭력 등 흉악범죄뿐만 아니라 보이스피싱, 물품 강매 사기 등 젊은층에 비해 분별력이 떨어 노인들은 온갖 범죄의 표적이 되면서 노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서울 강남역 여성 묻지마 살인사건, 증평 할머니 살인사건 등과 관련한 여성 대상 강력범죄 대책을 내달 1일 발표하기로 했다. 여성 아동 노인 등 취약 계층 안전망 강화 대책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2014년 말 현재 충북 지역 독거노인 수는 5만297명에 달한다. 할머니가 3만7305명으로 할아버지 1만2992명보다 월등히 많다.

청주시가 1만6459명으로 가장 많고 제천시 6677명, 충주시 5278명, 음성군 4426명, 영동군 4046명 순이었다.

응급안전돌봄서비스 등 제도적인 보호 장치가 집중돼 있는 저소득층 독거노인은 1만5744명이었고, 사실상 '나홀로' 살고 있는 일반 독거노인 수는 할머니 2만5537명, 할아버지 9005명 등 3만4542명이다.

bcle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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