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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IF] 수줍은 놈… 까칠한 놈… 살아남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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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에게 個性이란?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박새 , 먹이 찾는 기술도 빠르게 전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다툼 많고 부상도 잦은 편

활동량 적은 내성적인 박새, 포식자 눈에 덜 포착돼 생존에 오히려 유리할 수도

個性 달라지면 種 분화 가능성… 환경 따라 집단개성 형성되기도

온순한 거미는 새끼 돌보고 집안일… 외향적 거미는 먹이 잡고 침입자 쫓는 역할

조선일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박새들. 최근 동물의 개성 연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이다. 개체 수가 늘어나면 성격이 내성적인 박새가 외향적인 박새보다 오히려 생존에 유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 사이언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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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는 될까, 노란 몸통에 흰 뺨이 귀여운 새가 가지에 앉았다. 아시아와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인 박새다. 같은 참새목(目)이지만 참새보다 색이 더 예쁘다. 한눈에 봐도 두 마리 박새는 하는 짓이 딴판이다. 한쪽은 쉴 새 없이 이 가지 저 가지를 오가는데, 다른 쪽은 주눅이 들었는지 고개를 아래로 내리고 자리만 지키고 있다. "성격이 완전 딴판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개나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동물도 각자 개성(個性)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과학의 영역에서는 어디까지나 개성(personality)은 영어 단어에 사람(person)이 들어 있듯 인간의 고유 영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7~8년 전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관측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거미에서 물고기, 도마뱀, 새, 침팬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동물에서 개체마다 다른 개성을 가졌다는 연구 결과가 한 해 수백 편씩 쏟아지고 있다. 과연 동물 세계에서 개성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생존경쟁 치열하면 수줍은 새가 유리

자연에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진다. 동료끼리도 먹이를 두고 치열하게 다툰다. 언뜻 생각하면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살벌한 야생에서는 늘 외향적인 동물이 생존에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수줍은 동물이 더 잘 사는 경우도 많다. 독일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 연구진은 지난 2월 국제학술지 '에콜로지 레터스'에 군집의 밀도에 따라 적합한 개성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4년간 박새 541마리를 추적했다. 개체 수가 늘어나면 생존경쟁이 심해진다. 이럴 때 외향적인 새는 다른 새와 다투는 일이 잦았다. 자연 다치는 일도 많아 유순한 박새에 비해 자손이 적었다. 수줍음 많은 박새가 생존경쟁이 치열할수록 잘 산다는 말이다. 나대는 새는 개체 수가 줄어들어야 비로소 수줍은 새보다 생존에 유리했다. 미국 UC데이비스 연구진도 호기심이 많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외향적인 도롱뇽이 천적인 물고기에게 더 많이 잡아먹히는 것을 확인했다. 동물 세계에서도 '모난 돌이 정 맞는' 셈이다.

물론 외향적인 성격이 유리할 때도 많다. 특히 생존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정보를 배울 때가 그렇다.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지난해 국제학술지 '동물 행동'에 외향적인 성격의 박새가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더 전파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대학 주변 숲에 사는 박새들에게 마이크로칩을 달았다. 칩 신호를 추적하면 누구와 만나는지, 어디로 이동하는지 알 수 있다. 박새에게는 '먹이통 퍼즐'을 제시했다. 새집처럼 생긴 먹이통에는 미닫이문이 있다. 이 문을 옆으로 열면 구멍이 나타난다. 그 안에는 박새가 좋아하는 애벌레들이 가득하다. 한 새가 퍼즐을 풀면 다른 새들이 지켜봤다.

칩 신호를 분석했더니 처음 문을 연 외향적인 박새로부터 먹이통을 여는 기술이 빠르게 퍼져 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료와 떨어져 지내는 내성적인 박새가 먹이통을 열어도 그쪽에서는 기술이 퍼져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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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달라지면 종(種) 분화 가능성도

과학자들은 동물의 개성이 극명하게 달라지면 종(種)의 분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처음엔 어느 한쪽 개성이 생존에 유리하지만, 나중에는 각자 개성에 맞는 환경을 찾아 갈라서기 때문이다.

도롱뇽의 경우 외향적인 개체는 작은 규모의 연못에 적합했다. 이런 곳에는 천적인 물고기가 적다. 외향적인 도롱뇽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벌레를 잡고 더 빨리 자랐다. 작은 연못은 쉽게 말라버린다. 도롱뇽으로선 물이 있을 때 빨리 자라야 살 수 있다. 이에 비해 물고기가 득실거리는 큰 연못에서는 조심성 많은 도롱뇽이 유리했다. 내성적인 도롱뇽은 물고기의 눈에 잘 띄지 않게 몸집도 천천히 자랐다. 연못이 금방 말라버릴 걱정이 없기 때문에 성장이 더뎌도 상관없었다.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물고기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개성 연구가 시작됐다. 이미 20여년 전에 애완용 구피에서 성격이 다른 개체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포식자가 나타나면 구피들은 일제히 숨는다. 그러다가 몇몇이 먼저 고개를 내밀고 사태를 파악한다는 것. 과학자들은 개성이 완전히 다른 물고기들은 아예 집단에서 서로 갈라져 새로운 종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진은 올 1월 미국 박물학회에서 큰가시고기에서 개성에 따른 분리 현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수조에 천적 모형을 넣자 물고기들은 일제히 몸을 피했다. 나중에 외향적인 물고기는 다른 물고기보다 빨리 은신처에서 나와 주변을 살폈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으로 큰가시고기 400마리의 성격을 파악해 일일이 다른 표시를 했다. 강에 물고기들을 풀어주고 2주 뒤에 보니 외향적인 물고기들은 서로 모여 있고, 내성적인 물고기들은 홀로 떨어져 살고 있었다. 홀로 사는 물고기들은 먹이경쟁에서 밀려 숫자가 감소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숨죽여 살다 보니 포식자에게 눈에 띄는 일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애리조나대 르네 덕워스 교수는 "분리가 오래되면 번식도 따로 하게 된다"며 "개성은 한 집단을 다른 군집으로 나눠 새로운 종으로 진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구온난화도 개성에 따른 종 분화를 촉진할 수 있다. 호주에 사는 푸른혀도마뱀은 외향적인 개체가 유리했다. 프랑스 툴루즈대 연구진은 도마뱀의 성격에 따라 온난화로 늘어난 진드기에 감염되는 비율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온순한 도마뱀들은 싸움을 피해 한구석에 모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한 마리가 진드기에 옮으면 금방 모두가 감염됐다.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집단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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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개성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 하다 보면 한 집단이 특정한 개성을 갖는 경우도 생긴다. 미국 UC샌타바버라 연구진은 2014년 '네이처'지에 잎무늬꼬마거미의 '집단 개성'을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거미는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자동차만 한 거대한 거미집을 짓는다. 곤충뿐 아니라 새나 작은 포유류도 거미줄에 걸린다.

연구진은 테네시주의 댐에서 잎무늬꼬마거미 군락을 연구했다. 공격적인 거미들은 상자에 넣으면 반대편으로 가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러다가 포식자의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몸을 풀었다. 내성적인 거미는 몸을 푸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연구진은 거미집에서 외향적인 거미는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잡거나 침입자를 물리치고, 온순한 거미는 새끼를 돌보고 거미집을 수선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을 확인했다.

흥미롭게도 사는 곳에 따라 거미 집단 안에서 개성들의 비율이 달랐다. 댐 하류 지역은 먹이가 풍부하지만 그만큼 침입자도 많았다. 이런 곳에서는 싸움이 잦다 보니 집단의 60%가 공격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반대로 댐 상류 지역은 먹이가 부족하지만 침입자도 그만큼 적었다. 이곳에서는 적은 먹이를 공평하게 나누는 평화주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집단 개성이 서식 환경에 최적화된 것이다. 만약 공격성이 강한 거미들을 모아 먹이가 부족한 댐 상류에 집을 짓게 하면 곧 거미집이 엉망이 됐다. 반대로 침입자가 많은 댐 하류에 온순한 거미들을 보내면 역시 집이 망가졌다.

동물 보호에 도움, 지나친 해석 경계도

개성 연구는 동물의 환경에 대한 적응과 종 분화에 대해 풍부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동물을 왜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도 답을 준다.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각자 개성이 다른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 다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동물 역시 개성이 밝혀지면서 지위가 향상되는 순기능이 있다"고 말했다. 또 개성 연구는 애완동물의 심리치료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부에서는 물론 연구 붐을 타고 함량 미달인 논문들이 마구 쏟아진다는 비판도 있다. 개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한 종의 특성이 무엇인지 애매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개성만으로 보면 같은 종보다는 다른 종과 더 공통점이 많은 개체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연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수단으로서 개성 연구는 더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제인 구달 박사가 관찰하던 침팬지에 이름을 붙여주자 과학계는 연구의 객관성을 해치는 행위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연구자의 감정이 들어가면 관찰이 주관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당시 구달 박사는 "이 지적인 동물을 관찰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감정이입 덕분"이라고 반박했다. 이는 조선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이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한 말과 같은 맥락이다. 모두 똑같아 보이던 동물도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면 각자 다른 개성들이 드러난다. 과학도 차가운 머리와 함께 뜨거운 가슴이 있어야 발전하는 법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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