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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취재파일] 범인 잡는 '몽타주,' '장기 실종아동'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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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때, 엄마와 시장에 나갔다가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 장난을 치며 돌아다니다 순간 엄마를 놓치고 말았다. 덜컥 겁이 났고, 울면서 골목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요즘처럼 휴대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올망졸망 모여있는 집들은 다 똑같아 보였다. 정말 절망적이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시장 바닥을 헤매고 다니던 중, 식당 아주머니가 나를 불렀다. "아가, 너 이렇게 돌아다니면 엄마 못 찾는다. 들어와서 앉아 있거라. 엄마가 곧 올테니, 아줌마가 잘보고 있다가 너 여기 있다고 알려줄게."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물을 한 잔 먹여 주셨다. 아니나 다를까 10분쯤 뒤, 나를 찾으며 울부짖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식당 아주머니는 "그 봐, 엄마 왔지?"라며 엄마를 불러주었다.

어렸을 적 집을 잃고 헤맸던 기억은 누구나 다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지금은 '경험', '추억'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일 것이다. 길을 잃었다가 수십 년 째 집에 돌아오지 않은 '장기 실종 아동' 가족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슬픔'이고 '고통'이다.

대전시 대덕구 대전IC 근처에서 살았던 김 호군이 사라진 건 지난 1986년 11월 4일이었다. 동네 친구집에 놀러 간다고 나간 뒤 밤이 늦었는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부모는 놀러간다던 친구네 집을 쫓아갔다. "밥 먹는다고 나갔는데…."

인적이 드문 동네, 부모는 밤이 새도록 마을과 고속도로를 샅샅이 뒤졌다. 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누구의 연락도 없었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당시만 해도 '아이가 없어졌다'고 하면 경찰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금방 들어오겠죠." 하지만, 아이는 돌아오지 않고 30년이 흘렀다.

아버지는 안가본 데가 없고, 안해본 게 없다. 차 트렁크 안에 전단지를 싣고 다니면서 어디를 가든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아파트촌으로 변해버린 옛집 근처에는 플래카드는 물론, 입간판까지 만들어 세웠다. 산 수색 중에 봉긋 올라온 땅이 있으면 손으로 파보기도 하고, 대한민국에 있다는 염전도 다 가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아들 호 군을 발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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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찍은 사진도 달랑 석 장,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텐데…. 어디선가 잘 살고 있더라도 모습이 변했다면 못 찾을 수 있겠다 싶어, 수소문 끝에 어렸을 때 사진만 있으면 나이 들었을 때 추정 모습 사진으로 변환해준다는 미국 사설 업체를 찾아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의 현재 모습 사진을 받아들기는 했는데, 예상했던 모습과는 좀 달랐다. 아무래도 미국 업체이다 보니, 아들의 얼굴형이 약간 길쭉하게 서양식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 사진은 아버지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다. 혹시라도 주변에 이 사진이랑 닮은 30대 초반 남성이 있다면 누구라도 연락이라도 해주었으면 할 뿐이다.

비단 김 호씨 가족 뿐만이 아니다. 나는 내 딸 내 아들이니 알아볼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지금 어떻게 변했을 지 알 수만 있다면 내 아이를 하루라도 더 빨리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장기 실종 아동 부모의 마음이다. 그래서 경찰이 나섰다. 장기 실종 아동 찾기에 몽타주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몽타주는 보통 범인을 잡을 때 쓰인다. CCTV나 별다른 증거가 없을 때 피해자와 목격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범인의 얼굴을 예상해 그린 그림이다.

경찰은 지난해 말, 나이 변환과 이미지 변환 기능이 있는 몽타주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예전 모습만 있더라도 나이 변환 기능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예측해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남녀 성별에 따라 각각 1,500개씩의 얼굴형, 눈, 코, 입, 귀, 머리 이미지가 들어있어 이를 조합해 몽타주를 그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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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실종 아동의 경우 실종 당시 사진이 바탕이 된다. 당시 모습으로 기본이 되는 밑그림을 그린 뒤 나이 변환 기능을 적용한다. 다음 포토샵을 활용해 '디테일'을 살린다. 예를 들어, 가족 중 가장 닮았다고 하는 구성원이 있다면, 그 사람이 실종 아동과 비슷한 연령대에 찍은 사진을 보며 미세 조정을 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꼬박 3주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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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정확할 수 있을까. 나의 어렸을 때 사진으로 현재 모습의 몽타주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원래는 3주가 걸리는 작업이지만, 일단 대략적인 유사성을 보고자 2시간 안에 작업을 해보았다. 현재 경찰청에서 몽타주 작성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숙 행정관은 컴퓨터 프로그램 안에 저장된 이미지들로 5살 나의 얼굴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유사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담당자는 모니터에 거의 빠저 들어갈 듯이 이미지를 검색해 찾아야만 한다.

얼굴 조합이 완성되면 나이를 설정해 변환을 한다. 다음에는 가족들의 진술과 가족의 사진을 참고하며 포토샵으로 마무리까지 해야 완성이다. 시간의 제약 때문에 정교한 작업을 거치지는 못했지만, 완성본을 보니 현재의 나와 언뜻 비슷한 모습이다. 부모님과 동료들에게 보여줬더니, 완전 똑같지는 않지만 분위기는 비슷하다는 반응이다. 3주 동안 작업했다면, 아마 더 흡사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경찰은 올 4월 실종 기간이 긴 아동 12명을 선정해 먼저 몽타주 작성 작업에 들어갔다. 실종된 지 이미 20~40년이 되어 44살이 된 아동(지금은 중년)도 있다. 지난 5월 25일, 실종아동의 날에 경찰은 아이들의 몽타주를 부모에게 전달했다.

부모들은 아이의 몽타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몽타주 그림이 아니라 실제 내 자식이었으면 더 좋으련만, 그래도 부모들은 지금 모습을 이렇게나마 알게 됐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이가 나타날 것 같은 기분도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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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2명에 끼지 못한 부모들은 다시 한 번 마음이 미어진다. 일 분 일 초가 아까운데 왜 내 아이의 몽타주는 없는걸까. 전국의 경찰청 가운데 이 몽타주 프로그램이 도입된 곳은 4곳 뿐이다. 담당자도 딱 4명에 불과하다. 올 6월 말까지 2대를 추가 보급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6대, 6명 뿐이다.

게다가 장기 실종 아동 업무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서 실종 아동의 몽타주를 작성하다가도 다른 사건이 생기면 그것부터 해결해야 할 때가 많다. 국내 장기 실종 아동은 모두 2천여 명, 이들의 몽타주는 언제 다 작성될 수 있을까.

과학이 발전하고 수사 기법도 발전하면서 장기 실종 아동 찾기에도 새로운 첨단 기법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지난 2005년 시작한 DNA 대조법은 지난 10년 동안 340건이 넘는 상봉 사례를 냈다. 올해 들어서만도 11명의 아이가 DNA기법으로 부모를 만났다.

이번에 처음 도입된 몽타주는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단 하루도 아이를 잊지 못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부모들의 마음에 한 줄기 단비가 될 수 있을까. 조만간 몽타주를 통해 아이를 찾았다는 부모의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30년 전 잃은 아이, '현재 모습' 몽타주로 찾는다

[권란 기자 jii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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