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美생산성 34년만에 첫 마이너스…연준 최대 골칫거리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In-depth Plus / 美 '금리인상 스케줄'에 변수 ◆

매일경제

지난 수십 년간 혁신과 성장을 이끌었던 미국의 노동생산성이 역성장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연출될 기로에 놓였다. 똑같은 노동력을 투입해도 산출량이 전보다 줄어드는 마이너스 생산성이 현실화하면서 근로자 임금 상승이 정체되고 이로 인해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2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 콘퍼런스보드는 노동생산성 지표인 미국의 근로시간당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올해 0.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근로시간당 GDP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건 1982년 이후 34년 만이다.

미국의 근로시간당 GDP 증가율은 최근 3년 새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2014년 0.5%에서 지난해 0.3%로 하락한 데 이어 올해에는 -0.2%라는 충격적인 마이너스 성장 위기에 처했다. 컴퓨터 등 첨단산업 붐을 등에 업은 미국 신경제 효과로 미국 노동생산성은 1999~2006년 연평균 2.4% 성장했다는 점과 비교하면 노동생산성이 곤두박질치는 셈이다.

미국 노동생산성 급락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채택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일본보다도 심각하다. 올해 유로존과 일본의 근로시간당 GDP 증가율은 각각 0.3%, 0.4%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콘퍼런스보드 분석대로 미국 노동생산성이 올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유럽이 2년 연속(2015~2016년) 미국을 생산성 면에서 앞지르게 된다고 FT는 전했다. 5%의 낮은 실업률 등 노동시장의 호조로 기준금리 인상의 고삐를 당긴 미국이지만 생산성은 열세에 놓인 셈이다.

바트 반 아크 콘퍼런스보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이 지난해 생산성 위기에 돌입한 것으로 판단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정말 그렇다"며 "기업들이 정말 심각하게 혁신에 투자해야 생산성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최근 수년간 생산성 둔화에 시달리고 있는 배경으로 몇 가지를 꼽는다.

우선 미국 경제 성장의 주축이었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1965년에 출생한 이들은 숙련된 노동력을 바탕으로 미국 경제를 견인한 신주도계층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경제 일선에서 속속 은퇴한 뒤로 많은 기업이 이들의 빈자리를 미숙련 임시직으로 채우는 사례가 늘면서 전반적인 노동의 질이 후퇴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다른 요인은 미국 기업들의 투자 위축이다. 지속적인 투자와 혁신 활동을 통해 생산성을 개선해왔던 미국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생존이 우선이라는 판단에 설비·연구개발 투자를 늦추고 현금을 쌓아두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미국 기업들의 보유현금(현금성 자산 포함)은 1조6800억달러(약 2000조원)에 달했다. 기업과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한 규제장벽이 한층 높아진 점도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기업가정신' 퇴보로 미국 특유의 생산성 선순환 궤도가 흔들릴 위험에 처한 것이다.

콘퍼런스보드는 미국 디지털 경제의 과실을 측정하기가 어려운 점도 이유로 들었다. 예를 들어 공개 소프트웨어의 사용이나 무료 온라인 미디어의 확산 등은 GDP 산출량에 단순 합산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산출량 계산에 누락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콘퍼런스보드는 미국 경제 체제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더욱 전환되는 과정에 따른 여파도 있다고 분석했다. 대개 서비스업은 제조업보다 요소 투입 대비 산출량 증가가 천천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생산성 부진이 미국 근로자 임금 증가세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점이다. 생산성이 위축되면 기업 매출·수익에 악영향을 미쳐 임금 상승에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임금 상승이 둔화되면 미국 물가상승률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목표치인 2%를 향해 올라가는 게 만만치 않게 된다.

실제로 미국 실업률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5%로 떨어졌는데도 임금 상승폭이 예상보다 크지 않자 연준은 미국 내 저생산성 문제를 심각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적정 수준의 물가 상승 궤도에 올라야 연준이 통화정책을 정상화(금리 인상)하는 데 부담이 없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같은 생산성 둔화가 연준의 금리 인상 계획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생산성 저하는 미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원유 등 원자재 생산국인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비롯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 온 중국도 생산성과 산출량 둔화 염려에 시달리고 있다. 전 세계적인 1인당 GDP 증가율은 지난해 1.2%에 불과했다. 2014년 1.9%에서 크게 떨어진 것이다. 세계 경제가 동반 저성장의 늪에 빠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지는 이유다.

또 FT는 저생산성 문제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노년층 부양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