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구조조정 청사진 발표 한달①]미래비전 없는 구조조정…또 다른 STX조선의 씨앗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 지난해 12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채권단 회의를 열고 STX조선해양에 4500억원의 추자 자금 지원을 결의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실사결과를 토대로 STX조선해양의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를 상회한 만큼, 채권단 손실 최소화와 조선업 구조조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위해 자율협약을 유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말 회사의 생존 여부를 다시 따지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시중은행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수조원의 자금 지원에도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회사에 더 이상의 자금 지원은 그야말로 ‘밑빠진 독에 물 붙기’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ㆍKEB하나ㆍ신한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고 채권단에서 탈퇴했다. 그리고 불과 5개월 여가 지난 현재, STX는 운영자금 고갈로 부도 위기에 처해 있다. 올해 말 생존 여부를 따지겠다던 채권단은 자율협약 종료 기간을 반년 앞당겨 법정관리행으로 의견을 모았다.

헤럴드경제

헤럴드DB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법정관리행이 확정된 STX조선은 현재 이뤄지고 있는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다. 

조선업 전반에 대한 철학과 청사진이 부재한 상태에서 부족한 자금을 메워 주는 땜질직 자금 수혈의 구조조정은 더욱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STX조선 구조조정에서 드러났다.

밑빠진 독에 물붙기로 실패한 STX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대우조선 등 향후 조선ㆍ해운 구조조정에서는 시장논리에 입각한 신속ㆍ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무능한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강성 노조 ▷눈치만 본 국책은행 ▷정치권 ‘표퓰리즘’ ▷업황에 대한 비전없이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방치하거나 정치권의 입김에 끌려다닌 정부 등 이른바 구조조정 5대 패악의 고리를 이번 기회에 끊어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앞서 정부가 지난달 26일 브리핑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개한 구조조정의 큰 틀은 3개의 트랙(track)을 통한 동시다발적 구조조정이었다. 

조선과 철강, 화학, 건설, 석유화학 등 5개 취약업종 가운데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조선과 해운에 집중하고(Track1), 대기업 등에 대해선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신용위험 평가 후,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과 워크아웃, 회생절차 등 을 통해 상시적 구조조정을 추진(Track2)한다는 것이었다. 

또 철강과 화학 등은 기업활력제고법이 시행되면 공급과잉으로 판단되는 기업 스스로 선제적 구조조정(Track3)을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같은 구조조정의 청사진을 공개한 지 한달이 지난 현재,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런 큰 그림은 실종된 채 여전히 인력감축과 자산매각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구조조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구조조정의 시작은 자산매각과 인력감축으로 이뤄지지만, 업황에 대한 비전과 전망이 부재한 구조조정은 STX조선에서 드러나듯 이른바 ‘구조조정을 위한 구조조정’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

헤럴드DB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5일 한은 본관에서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 참석한 산업계 학계 등의 대표적인 경제 전문가들도 같은 지적을 쏟아냈다. 

이들은 “최근 조선 해운산업 구조조정은 무엇보다도 장기적 관점에서 구조조정의 밑그림을 그린 후 이를 토대로 정부와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손실을 분담하고 논의에 동참하면서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산업계에서는 자산 매각과 비용 절감, 인력 감축 등 이른바 ‘경영정상화’ 조치라는 이름의 구조조정은 이미 실패한 모델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조선업이 불황으로 접어든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십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있음에도 계속되는 구조조정 속에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STX조선해양을 관리했던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 방식도 이번에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율협약 방식의 구조조정은 채권단의 책임회피 경향으로 구조조정의 지연을 가져오고, 아울러 채권단의 전문성 부족으로 구조조정 대상 기업 경영진에 오히려 끌려다니는 폐해를 낳았다. 

특히 법정관리처럼 강제성이 없다 보니 선거 등 대형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정치권의 압력에 절대적으로 취약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STX조선 구조조정은 무능한 경영진, 정치권의 압력, 채권단의 땜질식 처방 등 자율협약의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파국을 낳은 대표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구조조정은 단순히 금융의 시각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닌, 산업 구조의 개편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