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르포] 밤길 더 무서워진 여성들…“믿을 곳이 없다”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밤 10시~새벽 1시,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 동행 르포순찰해보니…

-스카우트 팀장 “강남, 묻지 마 살인사건 전후로 밤길 분위기 확실히 달라졌다”

-귀갓길 여성들 “시내 한복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일주일 째 충격… 이젠 번화가도 안전하지 않네요”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이상한 사람이 제 뒤를 계속 쫓아오고 있어요. 빨리 와주실 수 있으세요?”

수화기를 통해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 취한 40대 남자가 치근대며 자기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전화였다. 지하철역 근처 편의점에 피신해있던 여성은 재빨리 달려온 스카우트를 만난 후에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를 처음 신청해 본다는 간호사 천수정(27ㆍ여) 씨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해서 이사 온 게 강남이었는데 얼마 전 살인사건 이후엔 어디든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아까 같은 상황도 일주일 전이었다면 ‘그래도 강남 번화가인데 설마’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겠지만 이제 그러기엔 두려운 마음이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

늦은 밤 학생 귀가길을 돕고 있는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 강남 3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4일 밤 9시 50분 서울 강남구 대치4동. 밤 여성의 귀갓길을 돕는 강남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 3팀과 동행하며 ‘강남 묻지 마’ 살인 사건 1주일 후의 강남구 분위기를 살펴봤다. 시내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은 번화가에 사는 여성에게도 여전히 충격을 남기고 있었다.

강남 여성 안심 스카우트 3팀장인 김명미(57ㆍ여) 씨는 “사건 후에 1주일 동안은 순찰중 여성에게 ‘동행해드릴까요?’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고맙다며 같이 가달라고 한다”라며 “늦은 밤에도 워낙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예전엔 혼자 갈 수 있다며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하며 빨간색 경광봉 스위치를 켰다. 순찰이 시작됐다.

이때 ‘안심 스카우트’ 동행을 요청하는 여성의 전화가 울렸다. 2호선 선릉역 1번 출구에 있다는 여성은 “지금 한티역 근처에 있어서 지점에 도착하려면 15~20분이 걸리는데 기다려 주실래요?”라는 스카우트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함께 순찰하는 하순자(67ㆍ여) 씨는 “예전엔 15~20분 정도 걸린다고 하면 ‘그러면 괜찮다, 혼자 가겠다’고 할 때가 많았는데 살인 사건후엔 시간이 걸려도 다들 기다리겠다고 한다”고 알려줬다.

밤 11시 30분. 한시간이 넘는 순찰을 끝내고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다시 스카우트를 찾는 전화가 울렸다. 아파트로 가는 길이 좁아 함께 가달라는 요청이었다. 스카우트 3팀은 “강남 쪽 자체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동네다보니 요청 전화도 적었는데 최근 1.5배 정도는 늘어난 것 같다”란 말을 주고받으며 다시 분당선 한티역으로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역 앞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40ㆍ여) 씨의 목적지는 대치1동에 있는 아파트 단지였다. 이 씨 또한 스카우트 제도를 처음 이용한다며 신청 이유에 대해 “강남역 살인사건 같은 경우도 도심 중심지에서 일어난 게 아니냐”며 “더 늦은 시간에도 종종 가던 길이지만 이젠 언제 어디든 안심할 수가 없게 됐다”고 털어놨다.

스카우트 3팀의 대치4동 순찰은 밤 12시를 넘어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혼자 걷는 여성들은 스카우트의 동행 제안을 거절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한편 2016년 서울 강남구는 3월부터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 7명을 세 팀으로 나눠 평일 운영 중이다. 밤 10시부터 새벽 1시(금요일은 밤 12시)까지 스카우트는 구역 내 여성의 120 등 ‘동행 요청’ 전화가 걸려오면 요청 장소로 이동, 여성의 집까지 안전한 귀가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들은 전화가 없을 땐 구획을 나눠 일대를 순찰하며 혼자 걷는 여성을 확인하면 먼저 다가가 돕기도 한다.

yul@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