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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딱 지금입니다, 푸른 섬진강 別味가 제맛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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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道 봄맛 여행] ⑤·끝 광양

조선일보

어부들이 섬진강 모래펄에서 제철 맞은 재첩을 캐고 있다. 요즘 재첩은 깊은 펄이 아니라 얕은 모래에 있어서 흙내가 덜 난다. /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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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南道)의 봄맛을 찾아 떠나는 마지막 여행, 이번 주에는 섬진강을 끼고 있는 전남 광양으로 갔습니다. 올해는 봄이 얼마 머물지 못하고 더위에 쫓겨 물러가고 있으니, 남도의 봄을 맛보려면 서두르셔야겠습니다.

재첩국

조선일보

(좌측 사진) 매콤·새콤달콤하게 무친 재첩회. 밥 비벼 먹으면 꿀맛이다. (우측 사진) 맑고도 진한 감칠맛의 모순적인 맛, 재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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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물안개가 푸르스름하게 낀 섬진강 가운데 어부들이 서 있었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방수복을 입고 '거랭이'라고 하는 손틀망(도수망)으로 강바닥을 훑으며 재첩을 잡고 있었다. 지금 섬진강은 재첩이 한창이다. 산란을 앞두고 몸에 영양분을 비축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재첩은 한반도 대부분의 강 하구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 모래펄에서 서식하는 조개류였다. 하지만 웬만한 큰 강에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어획량이 급감했다. 새벽이면 부산을 누비고 다니며 "재칫국(재첩국) 사이소~"라고 외치던 '재칫국 아지매'들이 사라진 게 얼마 되지 않았다. 1987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한 해에 평균 1만t 정도를 잡았으나 낙동강 하굿둑 공사가 시작되면서 급감했다.

전국에서 재첩이 사라질 때 명맥을 유지하며 유명해진 게 섬진강 재첩이다. 잡히는 양이 줄었다지만 지금도 평균 700~800t을 유지하고 있다. 매년 7월이면 재첩 축제도 열린다.

섬진강 광양 쪽에 있는 '청룡식당' 주인은 "재첩은 사시사철 먹을 수 있지만 요즘, 그러니까 늦봄부터 여름 넘어가는 시기가 가장 맛이 좋다"고 했다. "겨울에도 재첩이 잡히지만 그때는 깊이 펄 속에 있어요. 하지만 봄이 되면 재첩을 모래사장에서 캐니까 더 맛있어요."

재첩국과 재첩회를 주문했다. 실은 이 식당엔 메뉴가 이렇게 단 두 가지밖에 없다. 재첩국과 재첩회가 반찬 네댓 가지와 함께 담겨 상째 자리로 들려 나왔다. 맹물에 오로지 재첩만 넣고 끓여 소금으로만 간하고 잘게 썬 부추만 뿌린 재첩국은 투명하면서 푸르스름한 빛이 살며시 돌았다.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찬란하고 풋풋한 봄 햇살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 온몸으로 퍼졌다. 첫맛은 맑고 심심한 듯했지만 진한 감칠맛이 입안에 오래 여운으로 남았다. '이 국물의 진가를 알려면 과음과 숙취에 찌든 몸을 만들어 와야 했나' 아쉬웠을 정도로 속이 펑 뚫리듯 시원하고 개운했다.

고추장과 각종 채소를 넣어 매콤새콤달콤하게 무친 재첩회는 맛있지만, 아쉽게도 강한 양념이 재첩 자체의 섬세한 감칠맛을 가렸다. 재첩의 맛을 만끽하려면 국만 시켜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식사용으론 아주 좋다. 재첩회를 따로 주문해야 하는 공깃밥과 함께 스테인리스 대접에 쓱쓱 비벼 먹으면 속이 든든하고 개운하다.

청룡식당: 재첩국 7000원, 재첩회 1만5000·2만·3만원, 공깃밥 1000원. 광양시 진월면 섬진강매화로 160-1, (061)772-2400

참게가리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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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게와 쌀·밀·들깨·검은콩 등 각종 곡물과 견과류를 곱게 갈아 끓인 참게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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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이 봄에 인간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로 참게가 있다. 참게장이나 참게탕 말고 좀 색다른 음식을 맛보러 광양에서 다리를 건너 하동으로 갔다. 하동 '섬진강횟집'은 '참게가리장국'을 처음 개발했다고 알려진 식당이다. 참게를 껍데기째 갈아 들깨, 밀가루, 쌀가루, 검은콩가루 등 곡물·견과류 가루와 함께 끓인 보양탕이라고 들어서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죽처럼 걸쭉하고 황갈색인 국물은 그냥 봐서는 참게가 들어갔는지 알기 어려웠지만, 참게 특유의 구수한 향이 났다. 경남 지역에서 추어탕 따위에 즐겨 넣는 방아 잎을 넣는데, 특유의 박하 비슷한 상쾌한 향이 도드라진다.

섬진강횟집: 참게가리장국 3만·4만원, 참게탕 3만·4만원, 참게장정식 1만5000원. 하동군 하동읍 섬진강대로 2539-8, (055)883-5527

광양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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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즉시 양념에 무쳐 싱싱한 고기 맛이 살아 있는 광양 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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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봄에만 먹는 별미는 아니나 광양을 대표하는 맛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불고기일 것이다. 광양 불고기는 1960년대 말 시작됐다. 칼로 다지고 얇게 저민 등심을 굽기 직전 양념장을 바르는 것이 특징이다. 고기를 양념에 미리 재워두지 않고 구울 때 바르는 건 전통 방식의 평양식 불고기와 비슷하다. 고기를 구워 타래(양념장)에 찍어 먹는 일본 야키니쿠도 평양식 불고기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니, 이북의 고기 문화가 얼마나 발달했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광양 불고기 맛을 만끽하려면 고기를 석쇠에 얹고 "3초가량 째려본 다음" 바로 집어 먹으란 우스개가 있다. 오래 익히지 말고 슬쩍 구워야 야들야들 부드러운 고기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소리다. 광양읍 칠성리에 '광양불고기촌'이 있다. 한우 불고기 2만2000원, 호주산 불고기 1만5000원으로 가격은 같거나 비슷하다.

삼대광양불고기집 (061)763-9250, 시내식당 (061)763-0360, 한국식당 (061)761-9292, 금목서 (061)761-3300

[광양=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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