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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전북 심판 매수 ①] '여론과 엇박자' 축구연맹, 왜 강력한 처벌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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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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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한국 프로축구계에 또 대형 악재가 터졌다. 지난해 말 경남FC에 이어 이번엔 K리그 클래식의 대표구단이자 2연패에 빛나는 전북 현대가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부산지검 외사부(부장검사 김도형)는 지난 23일 전북 관계자로부터 유리한 판정을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전 K리그 소속 심판 A와 B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둘은 지난 2013년 K리그 심판으로 활동하며 각각 2~3차례에 걸쳐 전북 스카우트 C씨(불구속 기소)에게서 경기당 100만원씩을 받은 혐의다. 전북은 공식 보도 자료를 통해 스카우트 개인의 일탈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징계를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징계 수위다. 잊힐 만하면 터지는 승부조작, 심판매수 등으로 인해 축구 팬들의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 여론 또한 굉장히 좋지 않다. 이 참에 최고 수위의 징계로 본때를 보여줘야 건전한 프로 스포츠를 좀먹는 이 같은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한국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공식 입장은 사실관계가 확인이 되면 상벌위원회 개최한다는 것"이라며 "언론 보도만 가지고 상벌위를 할 수는 없고 구단으로부터 소명 자료를 받아보고 그걸 근거로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연맹 측은 이번 사건이 2013년도에 벌어진 일임을 강조했다. 이 경우 불소급의 원칙(법은 그 시행 이후에 성립하는 사실에 대해서만 효력을 발하고 과거의 사실은 소급 적용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징계 수위는 솜방망이 처분 논란에 휩싸였던 경남FC의 전철을 밟을 것이 유력시된다. 경남FC는 올 시즌 승점 감점 10과 제재금 7,0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연맹 관계자는 "연루된 심판들은 작년 경남FC 사건으로 퇴출된 자들"이라면서 "결국 원인은 성적 지상주의가 낳은 폐단이 아니겠나. 성적을 내기 위해 이런 수단을 쓴 것이다. 구단 징계는 경남FC와 같은 일반 사례이기 때문에 무조건 여론에 따라서 할 순 없고 강력한 처벌이라는 것도 정해진 징계 규정에 입각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벌위가 열리면 규정에 맞춰서 징벌이 내려지겠다. 그런 의지가 규정에 녹아 든 거고 어쨌든 당시 규정으로 해야 되는 건데 제명부터 강등, 승점 감점, 벌금 등이 있다. 강력하게 처벌할 의지는 있다. 그렇지만 규정에 없는 처벌을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연맹은 앞서 지난해 12월 클린축구위원회를 발족시켜 반스포츠적 비위행위의 척결과 함께 K리그 재도약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수립했다. 팬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축구계 정화의 일환으로 비리와 관련된 선수나 감독, 에이전트, 구단 관계자들을 축구계로부터 영구히 추방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등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엄중한 내용들을 담았다.

또 다시 불거진 K리그 챔피언 전북의 심판매수 의혹으로 클린축구위원회의 발족 취지가 무색해졌다. 물론 그 전에 벌어진 사건이라지만 위원회의 첫째 취지가 스스로의 강도 높은 자정 노력을 통한 팬들의 신뢰 회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진두 지휘해야 할 연맹 측의 책임이 막중하다. 자꾸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여론과 동떨어진 징계 수위는 역효과만 낳을 뿐이다. 규정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규정이 정한 범위 내에서 팬들이 납득할 만한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6년 이탈리아프로축구 세리에A가 좋은 본보기다. 그해 이른바 '칼치오폴리'는 다수의 클럽들이 심판을 매수한 사건으로 연루된 구단들은 중징계를 면치 못했다. 유벤투스는 두 시즌 우승이 취소된 뒤 세리에B로 강등됐고 승점 9가 삭감된 상태에서 다음 시즌을 맞았다. 기타 AC 밀란, 라치오, 피오렌티나, 레지나 칼초 등도 승점 3에서 15점까지 깎이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스포츠는 정직과 공정이 생명이다. 어떤 식으로든 조작된 스포츠는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축구계는 지금 가장 중요한 민심을 잃어가고 있다.

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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