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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미제사건, 시그널을 찾아라](31)충남 서천 카센터 방화 살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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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김상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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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2008년까지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7명이 연쇄적으로 납치·살해된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 이 사건의 범인 강호순은 2009년 1월27일 검거됐다. 며칠 뒤 이 사건으로 또 다른 사건 하나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2004년 5월 발생한 ‘충남 서천 카센터 방화 살인 사건’이다. 서천의 한 카센터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쌍둥이 남매와 이웃집 주민이 함께 숨지고 며칠 뒤 쌍둥이 어머니마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었다.

서천 카센터 방화 살인 사건이 주목 받았던 이유는 강호순의 고향집 주소지가 카센터 근처였기 때문이다. 카센터 방화 살인 사건 발생 시기가 포함되는 2004년 2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해당 사건 발생지에서 4㎞ 정도 떨어진 곳에 강호순 어머니의 주소지가 있었다. 경찰은 강호순이 연관됐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서천 카센터 방화 살인 사건이 벌어진 기간 강호순은 다른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2년이 지난 현재 경찰의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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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2일 발생한 화재로 충남 서천군의 한 카센터가 붕괴돼 있다. |충남지방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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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센터 화재로 숨진 쌍둥이 남매와 이웃 주민

2004년 5월2일 오전 1시52분 서천군의 한 자동차오디오 판매점. 자동차오디오 가게 주인은 같은 건물 바로 옆에 붙어있는 카센터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누군가 벽을 긁는 것 같은 소리였다. 이상한 소리의 정체는 카센터 내부가 불에 타는 소리였다.

밖으로 나간 자동차오디오가게 주인은 카센터에 불이 난 것을 보고 카센터 후문을 열려고 했지만 치솟는 불길에 접근조차 못했다. 이때 여자의 비명소리를 들은 자동차오디오 가게 주인은 카센터 정문으로 뛰어가 문을 열려고 했지만 잠겨있었다.

오전 1시56분. 카센터에서 시작된 불은 상점 전체로 번졌다. 건물 소재가 화재에 취약했던 데다 5곳의 상점이 일렬로 붙어 있는 조립식 단층 건물이어서 전소가 불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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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현장 구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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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센터 안에서는 카센터 주인집 쌍둥이 남매(당시 8세)와 신원을 알 수 없는 40대 여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40대 여인은 카센터 주인의 아내(당시 43세)로 추정됐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식 결과 카센터 옆 농기계수리점 주인의 아내(당시 40세)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과수 감식 전 농기계수리점 아들은 경찰에서 “어머니가 화재 발생 1시간 전인 12시54분쯤에 카센터 아주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카센터 아주머니가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해 (카센터로) 가 봐야겠다’며 나간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진술했다.

카센터 주인은 사건 당일 동네 주민과 전북 익산에서 낚시를 했으나 교통사고는 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카센터 주인은 이날 오전 3시쯤 “가게에 불이 나 아이들이 숨졌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 아내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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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센터 내부 구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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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센터 여주인도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

경찰은 행적이 묘연한 카센터 여주인이 화재의 원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을 것으로 보고 소재 파악에 주력했다. 하지만 카센터 여주인의 행적은 묘연했다.

5월2일 오후 1시40분. 카센터에서 10㎞ 가량 떨어진 마산면의 한 저수지 주변에서 카센터 여주인의 상의가 마을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옷의 일부분이 흉기에 찢긴 상태였고 피도 묻어 있었다. 경찰은 일대를 계속 수색했지만 카센터 여주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옷에서 DNA를 채취해 국과수에서 분석했지만 카센터 여주인 외에 다른 DNA는 시료 부족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8일 뒤인 10일 오전 8시35분. 카센터 여주인은 카센터에서 4㎞ 떨어진 서초면의 한 대형 수로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카센터 화재 원인 “방화로 추정”

국과수는 방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카센터 화재가 방화로 추정된 것은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 모두 대피하려했던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통상 화재가 발생해 탈출하려다 보면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였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또 방바닥과 쌍둥이 남매의 옷에서는 등유 성분이 확인됐다. 경찰은 이들의 의식을 잃게 만든 누군가가 불을 질렀을 가능성도 열어 놨다.

현장에서는 이런 추정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남성용 허리띠 버클도 나왔다. 무궁화 문양 안에 태극기가 새겨진 버클이었다. 카센터 주인은 “가족의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범행을 저지른 누군가 흘린 버클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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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2일 발생한 화재로 충남 서천군의 한 카센터가 붕괴돼 있다. |충남지방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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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지지 않은 카센터 여주인의 행적

벌어진 상황을 토대로 화재 전후의 정황을 재구성해 보면 카센터 여주인은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거짓말로 농기계수리점 여주인을 불러내 아이들을 맡기고 집을 나선다. 이후 카센터 여주인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뒤 서초면의 한 공사현장 수로에 버려졌다. 카센터 여주인이 집을 나가고 1시간 정도가 지나 카센터에는 불이 났다.

‘농기계수리점 여주인을 불러낸 카센터 여주인은 그 시간 어디에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화재가 나기 전 “카센터 앞에는 3∼4명의 낯선 사람이 모여 있었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온다. 자동차오디오 가게 주인은 경찰에서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카센터 안에서 여주인과 어떤 남자들이 얘기하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농기계수리점 아들도 “카센터에 간다는 어머니를 배웅하러 나갔을 때 카센터 앞에 있던 낯선 사람들을 봤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 카센터를 찾아온 낯선 방문객들도 용의선상에 올렸다. 하지만 당시 수사에서 이들에 대한 행적은 확인된 바가 없다. 카센터 주변에는 폐쇄회로(CC)TV도 없어 이들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경찰은 “화재 1시간 전쯤 카센터 앞에 낯선 사람을 봤다”고 진술한 농기계수리점 아들과 자동차오디오 가게 주인 등의 진술을 토대로 이들의 몽타주를 만들었다. 하지만 몽타주 속 인물들은 인근 가게 주인과 비슷해 보였다. 경찰 관계자는 “목격자 등에 대해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실시했지만 모두 진실 반응이 나왔다”며 “이들의 기억이 정확한 게 아니어서 당시 현장에서 목격된 낯선이들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은 범인이 서천지역 지리를 잘 아는 인물일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카센터 여주인의 옷이 발견된 장소 등이 서천지역 지리를 잘 알지 못하면 찾아가기 힘든 장소였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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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10일, 수신인이 충남 서천경찰서 형사과장으로 돼 있는 의문의 편지. |충남지방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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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와 언론사 앞으로 작성된 의문의 편지

카센터 여주인이 발견된 날인 10일 오전 우체통에서 편지를 수거하던 한 집배원은 우표가 붙여지지 않은 편지를 발견한다. 서천경찰서와 한 지역언론사 앞으로 쓰인 편지였다. 편지에는 ‘카센터 여주인의 시신은 개천에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었다. ‘내가 불을 낸 것은 아니다. 나는 카센터 여주인의 시신을 날라준 죄밖에 없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경찰은 의문의 편지가 “장난스럽게 쓴 내용은 아니다”라며 “전체적인 내용으로 봤을 때 범인과의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 집배원이 편지를 발견한 시각 개천에서 카센터 여주인의 시신이 발견됐다.

하지만 누가 작성한 편지인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편지에서는 3점의 지문이 나왔다. 1점은 편지를 발견한 집배원의 것이었고, 2점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쪽지문이었다. 현재 경찰은 주기적으로 국과수에 해당 쪽지문에 대한 조회를 의뢰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쪽지문과 일치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현재 용의자를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중 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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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지방경찰청 전경. |충남지방경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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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지방경찰청 미제수사전담팀은 수사 원점으로 돌아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살피고 있다.

김기현 미제수사전담팀장은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 목격자들의 기억도 흐려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사소한 이야기 하나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최근까지 목격자 진술 등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제보가 있으면 수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충남 서천 방화 살해 사건 제보는 충남지방경찰청 강력계 미제수사전담팀(041―336―2672·ds3ecu@police.go.kr)으로 하면 된다.

다음 미제사건은 ‘전남 나주병원 간호사 피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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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재 기자 sj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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