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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중섭, 그는 곧 '소'… 소는 곧 민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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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백년의 신화' 展] [미리 만나는 작품] 上

조선일보

‘발 치료해 주다’, 1941. 종이에 펜, 채색.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이중섭의 시 '소의 말' 중).

1951년 원산을 떠나 서귀포로 피란 간 이중섭(1916~1956년)은 작은 방 벽면에 이런 시(詩)를 붙여놨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네 식구 누우면 몸 돌릴 틈조차 없는 손바닥만 한 방에서도 분신과도 같은 '소'를 노래하며 삶의 의지를 지폈다.

우리 국민에게 이중섭은 곧 소요, 소는 곧 이중섭이다. 오산고보 시절 미국 유학파 화가였던 은사 임용련의 영향으로 향토색 짙은 소를 그리기 시작한 걸로 알려진 그는 시인 구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림에 순도(殉道)할 때까지" 소를 놓지 않았다.

이중섭의 소를 한자리에서 보며 안복(眼福)을 누릴 절호의 기회가 왔다. 오는 6월 3일부터 네 달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이다. 총 200여 점의 작품 중 '흰 소'(1955년), '황소'(1953년경), '싸우는 소'(1955년) 등 유화로 그린 이중섭의 소 그림 10점이 전시된다. '소'를 시작으로 전시 개막에 앞서 독자들에게 주요 출품작을 지면(紙面)을 통해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조선일보

이중섭의 소 그림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1955년 작 ‘흰 소’(홍익대박물관 소장, 가로 41㎝×세로 29㎝). 추사체 같은 역동적인 붓질로 기운생동하는 소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이중섭에게 소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우리 민족이자, 자신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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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로 일필휘지 그린 듯한 검고 굵은 선의 소를 통해 이중섭은 일제 강점기와 6·25의 혼란 속에서 우리 민족이 소처럼 꿋꿋이 버텨내기를 소망했다. 홍익대박물관이 소장한 '흰 소'(1955년)는 이중섭의 바람을 가장 극적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회색 조의 바탕에 강하고 속도감 있는 필선으로 그려낸 흰 소는 격정적인 몸짓으로 민족의 저항정신을 고취시킨다. 서울미술관이 소장한 '황소'(1953년경) 작품 속 거칠면서도 우수에 찬 소의 눈빛에선 일본으로 떠난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황소 머리 부분만 집중해서 그린 '황소'(1953~1954년) 두 점은 배경에 쓰인 붉은색의 채도와 소의 표정만 다를 뿐 거의 구도가 비슷한 '닮은꼴'이다. 이 중 배경이 조금 어두운 황소 작품은 처음으로 전시에 출품됐다. '회색 소'(1955~1956년경)와 '가족과 비둘기'(1950년대)는 드물게 종이 앞뒤에 그린 양면화(兩面畵). '가족과 비둘기'를 먼저 그리고 서울에 올라와 정신분열을 앓던 시절 뒷면에 '회색 소'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다. 희미하게 그려진 선과 초점 잃은 소의 눈빛은 말년의 이중섭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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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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