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이란에서 할 일, 말 일?··· ‘아라비아만’ 표기 절대 안돼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010년 5월, 이란 세관이 한국 ㄱ사의 차량에 대한 통관 절차를 갑자기 중단했다. 해당 차량은 한국에서 이란으로 정식 수출된 차량이 아니라 중동에 수출됐다가 이란으로 우회 반입되는 제품이었다. 문제가 된 것은 차량 섀시에 붙어 있던 ‘아라비아만’이라고 적힌 스티커였다. 단순히 지역명을 적은 스티커가 왜 통관 중지까지 불러왔을까?

한국과 일본이 ‘동해’ 표기방식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듯이, 이란과 아라비아 반도 7개국은 ‘페르시아만’ 표기 방식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1960년대 이전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아라비아반도와 이란 사이에 있는 이 해역을 ‘페르시아만’으로 표기했지만,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 아라비아반도 국가들이 ‘아라비아만’ 표기를 주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란은 중동에 있되, 아랍은 아니다. 아랍은 아랍어를 사용하고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를 통칭한다. 이란은 이슬람을 믿지만 사용하는 언어는 페르시아어로 아랍어와 완전히 다르다. 민족적으로도 이란인은 아랍인과 구분된다. 역사도 깊어 이란인들은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이란인들은 ‘페르시아만’ 표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란은 국제선 항공기 모니터에 ‘아라비아만’ 표기를 한 항공사의 경우에는 영공 통과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82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이란 시장이 6년 만에 열린다. 이란 정부는 올해에만 수십조원 규모의 인프라·플랜트 사업을 발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인 수요 둔화로 침체에 빠진 한국 기업에게는 재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무턱대고 뛰어들 경우 손해만 떠안을 수도 있다. 이란에서 거래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전문가에게 들어봤다.

‘페르시아 상인’의 후예답게 상술이 발달한 이란인들에게는 특유의 ‘터로프 문화’가 있다. 터로프는 체면을 중시하는 이란인의 빈말 문화를 일컫는다. 이란인들은 말하는 상황과 상대방과의 관계를 대화의 내용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또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암시적인 표현을 즐긴다. 일각에서는 이란인의 이런 대화법을 역사적인 배경과 연관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동서양이 만나는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한 이란은 아랍, 투르크, 몽골 등 외세의 침략에 자주 시달렸다. 때문에 언어 습관에도 대립적 현실을 피하고 싶은 바람이 담겼다는 것이다.

암시적 표현법은 무역이나 거래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협상 테이블에서 이란인들은 좀처럼 자신들의 제안을 먼저 꺼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막상 계약에 들어가면 자신들이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조항을 집어넣으며 계약에 강한 면모를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권형 아시아중동팀장은 “국내 기업이 투자를 할 때 양국 기업간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처리할지 계약서에 분명하게 해놓지 않으면 손해를 볼 수 있다”며 “계약은 기업 책임이지만 계약서에 꼭 집어넣어야 할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정부 차원에서 마련되거나, 분쟁 발생시 컨설팅 해줄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모호성과 계약의 까다로움 때문에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계약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 건강용품을 제조하는 ㄴ사는 2010년 이란 시장에 진출키로 하고 사장이 직접 이란을 방문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7건의 상담 끝에 이란 측 구매자를 결정했지만, 구매자 측이 무리한 요구를 해오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4개월 뒤 ㄴ사는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다른 구매자를 소개받았고, 상담 이틀만에 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경향신문

이란인들이 지난해 4월 7일 수도 테헤란의 최대 소매시장인 타즈리쉬 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국대 사회과학연구원 김중관 교수는 “에이전트를 통할 경우 상품 하자가 생길때도 에이전트가 책임지고 처리해주는 경우가 있다”며 “신뢰할 수 있는 에이전트를 선택해 현지 진출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인저이란’과 ‘야바쉬’가 있다. 인저이란은 직역하면 ‘이란 스타일’로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나라 이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란 내부의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지적할 때 쓰이기도 한다. 실제로 이란에서는 하루 아침에 통관절차가 바뀌거나, 일방통행로가 쌍방통행로로 바뀌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야바쉬는 중국의 ‘만만디’처럼 이란 특유의 여유로운 문화를 의미한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오후만 돼도 연락을 취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환경의 문제도 있다. 이란은 법인세(25%), 개인소득세(한국인의 경우 대체로 35%), 노동세(개인소득의 30%) 등이 높고,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의 국가신용도 순위도 최저 수준이다. 이란은 지난해 세계은행이 발표한 사업하기 쉬운 환경 순위에서 189개국 중 130위에 머물기도 했다. 한 발전회사 관계자는 “법제는 미비하고 세제는 복잡해 사업 의지가 있어도 선뜻 들어가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