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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황금연휴에 뭐하세요 ③]돈 나갈데 많고, 시간 내기도 어렵고…‘가정의 달’이 괴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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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1. 자녀를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 양모(33ㆍ여)씨는 지난달 말에 학부모 면담 일정을 잡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스승의 날’이 끼어있는 5월 초에 학부모를 보겠다는 얘기가 무슨 뜻이겠냐”는 주변의 훈수 때문이었다. 빈 손으로 가야 하나 고민을 거듭하던 양씨는 입학 전 롤케이크를 사들고 오리엔테이션에 갔다 거절당했던 일을 떠올리고 결국 ‘그냥’ 갔다. 면담은 순조롭게 끝났지만, 면담 내내 안절부절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 동네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조무사 전모씨는 ‘황금연휴’라며 떠들썩한 최근 분위기가 달갑지 않다. 전씨가 근무하는 병원은 5월에는 오전진료, 6일은 정상진료, 7일도 정상 진료(오후 3시까지)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쉴 수 있는 날은 오는 8일 하루 뿐이다. 같이 자취하는 친구가 황금연휴에 동남아시아에 놀러가 입을 것이라며 주문한 수영복 택배를 보고는 더욱 속상했다. 근무하는 곳이 병원이라 이해하려 해도, 상대적인 박탈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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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감사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가정의 달’이 오히려 괴로운 달이 되고 있다. 가정의 달이 괴로운 달이 된 주 요인은 여러 기념일을 챙기다 보면 구멍이 나기 마련인 지갑 사정에 있다.

지난달 말 취업포탈 잡코리아가 직장인 및 대학생 2981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70.3%, 대학생 57.0%가 ‘가정의 달 기념일 중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기념일이 있다’고 답했다.

가장 부담스러운 기념일은 어버이날(78.3%)이었다. 스승의 날(11.0%)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부담스러움에 묻히는 것은 아니었다. 응답자 중 83.1%는 어버이날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념일이라고 답했다. 다만 선물과 용돈 등 경제적인 지출이 커서(60.8%) 다소 힘에 부친다는게 직장인들의 의견이었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 여행이나 식사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점(9.3%)도 기념일을 부담스럽게 느끼게 했다. 전씨의 사례처럼, 휴일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게 아니다.

가정의 달에 예상하는 지출 규모에 대해 직장인들은 평균 39만1000원, 대학생들은 평균 16만6000원을 들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5월에 ‘기념일이 너무 많아 부담스럽다’는 응답도 20.2%나 나왔다.

정부는 내수 증진을 위해 6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8월 휴일 사이에 낀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한 덕분에 1조3000억원의 내수 진작효과를 봤다는 선례를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통업체나 여행업체들은 각종 프로모션에 나서며 고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오히려 더 불편하다는 지적도 있다. 주부 김모(60ㆍ여)씨는 “정작 돈 나올 구석은 없는데, 무슨 돈으로 선물 사고 밥 사먹으라고 부추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인당 가계가처분소득은 1만5524달러로, 전년보다 2.5%나 줄었다. 가계의 연간 소비성향은 71.9%로, 2003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저치였다. 올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저유가와 저금리로 인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난 효과가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서민들의 실제 주머니 사정은 다르다. 저유가로 인한 경제침체를 우려한지 몇 달이 지났어도, 체감 장바구니 물가는 별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직장인 이모(34)씨는 “고유가일 때에는 원자재값 인상됐다며 즉각 올라갔던 물가가 왜 저유가에는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내수 증진을 위한 황금연휴 지정 등의 움직임이 지난해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정부는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2조원의 내수 진작 효과가 있을 것이라 전망했지만 실제 효과는 1조3000억원에 그쳤다. 이를 두고 임시공휴일을 준비할 시간을 줘야 내수 진작 효과가 제대로 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올해도 임시공휴일은 지난달 28일에나 확정됐다. 8일만에 휴일 계획을 세우기에는 무리라는게 관련 업계의 지적이다.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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