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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뉴스브리핑] 가습기 살균제가 남긴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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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4일)은 권미애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족, 임성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함께합니다.

Q. 오늘 이 자리에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서 삶이 어그러진 피해자 가족이 나오셨습니다. 그야말로 어려운 발걸음 하셨는데요.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Q. 안녕하십니까, 우리 임성준군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임성준군이 숨쉬기도 좀 어려워하는 것 같은데 지금 가지고 나오신 게 산소통인가요?

네.

Q. 항상 그러면 하루 종일 이 산소통은 성준군 옆에 같이 있어야 되는 겁니까?

네. 성준이 그림자라고 보시면 돼요.

Q. 성준군 숨소리 들어보니까 저도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일단 힘드실 테니까 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Q. 네. 지금 영상을 봤습니다. 그야말로 피해자 가족들의 절규 그야말로 왜 이제 와서 우리한테 사과하지 않고 엉뚱한데다가 사과하느냐. 라고 하는 피해자들의 분노가 잘 읽혀집니다. 성준군 어머니 권미애씨.

네.

Q. 이렇게 성준군이 한 걸음 움직이는 것도 힘든 것 같은데요. 어쨌든 간에 이렇게 어려운 발걸음 하기로 결정하신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거야 당연히 우리 성준이랑 그런 억울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싶기 때문에 온 거예요.

Q. 사실 저도 기자이지만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서 얼핏 얼핏 이런 피해자들의 모습을 봤습니다만 실상 성준군이 어쨌든 자라나는 학생이고 아직 한참 감수성도 예민할 나이인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과연 저희도 옳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작가들과 어머니도 같이 논의하시면서 결국은 우리 성준군도 직접 나와서 얘기를 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셔서 저희가 어렵게 모셨다는 말씀 드리고요. 먼저 이 얘기부터 여쭤볼게요. 조금 전 화면에도 여러 차례 나왔는데 옥시에서 5년 만에 사과를 했고요. 사실상 살균제를 만들어 낸지 11년 만에 뭐 10여 년만의 사과였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 사과 어떻게 받아들이셨습니까?

어떤 사과를 한다한들 저희가 그게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희도 그 날 그 분들 만났고 기자님들 가시고 저희 피해자들끼리 따로 또 다시 면담을 했는데 저희는 그 분들한테 얘기를 했어요. 저희는 용서하는 게 아니라고. 용서가 아니라 이제 와서라도 이렇게 한다고 하니까 앞으로 더 지켜보겠다. 그 분들이 무슨 충분한 피해보상이며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 하시는데 저희는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이렇게 피해를 입으신 분들 개개인 집에 찾아가서 무릎 꿇고 빌어도 용서가 되겠어요? 자식이 떠났는데. 그렇게 하라고 저희는 얘기를 했거든요. 성준이한테 가서 성준아 너 이렇게 만든 사람 네 인생을 이렇게 망친 사람 너희 엄마 아빠가 아니야 내가 그랬어.

Q. 그런 사과만 했더라도 오히려 마음이 좀 위로가 됐을 텐데 그런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화가 났다?

저는 그 날도 가지회견을 대국민에게 사과를 한다고 기사가 나왔어요. 그 기사를 보고서 몰랐어요. 그 전에는. 어떻게 피해자한테 연락을 해서 저희가 사과할 테니 와주세요, 이러셔야 되는데 그걸 기사를 봤으면 기자님들한테는 연락을 하셨다는 거잖아요. 급하게 밤에 알고선 최대한 정말 저희 피해자 분들 오실 수 있는 분들 최대한 오시라고 제가 아는 분들한테는 연락을 다 했어요. 밤에. 밤 11시에 다 돌렸는데 그거를 기자회견 하는 것도 모르시는 분들이 나중에 연락이 왔어요.

성준이 엄마 거기 나가셨던데요? 하면서 연락이 오셨어요. 다음 날.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가 TV를 켰는데 거기에 옥시에서 나와서 사과를 하고 있더래요. 그렇게 모든 전국에서 방방곳곳에서 지금 그렇게 원통해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피해자한테 사과를 하기 위해서 자리를 만들어야지 참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하셨어요. 그 분들이 정말.

Q. 그렇다면 우리 성준군 얘기를 해봐야 될 것 같은데요. 임성준이 올해 몇 살이죠?

14살이요.

Q. 14살? 어머니. 그럼 성준군이 언제부터 가습기 살균제를 쓰신 거예요?

태어나서.

Q. 태어나자마자 바로요?

네.

Q. 그게 성준군한테 좋다고 생각해서 하신 거겠죠? 물론.

그렇죠. 당연히.

Q. 습도 조절도 해야 되고?

성준이가 1월생이었거든요. 겨울에 태어나서 집안이 건조하다고. 처음에는 물을 주전자에 끓여서 식혀서 사용을 했었어요. 항상 통 안을 깨끗하게 닦아 쓰고 했는데 마트를 갔는데 마침 파니까 수돗물을 끓여서 식히고 그걸 가습기통에 넣어서 사용을 하고 하다가 이거를 보니 얼마나 저는 좋아요. 그것도 다른 기업도 아닌 큰 회사의 제품이고 그래서 사용하게 됐습니다.

Q. 근데 좀 뭔가 이상하다 이거 뭔가 잘못 됐다, 라고 느끼신 건 언제쯤이세요? 그러면.

전혀 없었어요.

Q. 전혀 모르셨어요? 그러면 성준군이 이렇게 숨을 잘 못 쉰다든가 이런 증상은 언제쯤 발현이 된 거죠?

14개월 첫돌 지나고.

Q. 1년 동안 전혀 모르고 계속 썼는데 모르시고 첫돌이 지나서 뭔가 숨 쉬는 게 이상하다?

숨 쉬는 것보다 먹으면 자꾸 토를 하고 처음에는 동네병원을 다니면서 감기인가보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증상이어 가지고 건강한 애였으니까. 감기인가보다 동네병원을 다녔었고 동네병원을 한 달 가량 다녔는데 나아지지가 않고.

Q. 지금 성준군 본인 모습인가요? 이게 어린 시절에?

저거는 중환자실 11개월 생활을 하고 겨우겨우 살아서 집에 왔을 때의 모습이에요.

Q. 이미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호흡곤란 이런 증상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투병생활을?

11개월을 지냈어요.

Q. 성준군 자기 모습 바라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성준군 저때 기억나요?

안 나요. 조금 나요.

Q. 잘 안 나고 조금 난다? 그때 많이 힘들었던 기억, 너무 어렸을 때라서 기억은 잘 나지 않을 것 같아요.

네.

Q. 어머님은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요?

제일 마음 아픈 거는 내 폐를 떼어서라도 주고 싶은데 제가 할 수 있는 거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때 정말. 오로지 제발 살려달라고 깨어만 날 수 있게 할 수 있는 기도 외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Q. 이런 고비를 거치고 나서 성준군이 어쨌든 간에 이런 저런 치료를 많이 받았을 텐데 심리치료도 받았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네. 우울증도 있었고

Q. 몇 살인데 벌써 우울증이?

지금이 아니고 중환자실을 11개월을 지내다가 나오니까 아무래도 어른도 아닌 아기가 엄마 품도 아닌 낯선 곳에서 11개월 지내봐요. 그때 나왔을 때 자해 아닌 자해라든지 그러니까 머리를 땅에 자꾸 박기도 하고 낯선 사람을 보기 싫어하고.

Q. 이 그림이 아마 성준군이 그 당시에 그린?

아니, 요즘이에요. 화가가 되고 싶다고 그림을 그리는데 사진을 보면 목이 없어요.

Q. 그러면 우리 성준군. 성준군이 그림을 그렸는데 그럼에 왜 사람 목을 안 그렸어요?

목을 그리려고.

성준이가 저한테 얘기를 안 했었는데 미술치료하는 선생님이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성준이 목에 지금 상처가 있어요. 여기가 지금 이렇게 보면 상처가 있어서 항상 이렇게 가리고 다녔었는데 가린 거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Q. 목에 치료 때문에 받은 상처가 있어서 이걸 가린 모습이다. 저게 아마 호흡이 곤란했을 때 이렇게,

네. 재작년까지 목에다 산소를 하고 있었어요. 앞전에 보셨던 사진. 네.

Q. 성준군 몸에도 마음에도 깊은 상처가 남겨진 것 같아서 저도 참 가슴이 아픈데요. 어쨌든 성준군이 아팠던 게 2004년?

네.

Q. 2004년이면 상당히 오래 전이죠. 그때 이미 이런 저런 증상들이 나타났는데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2011년에 어쨌든 간에 공식적으로 사망자가 발생을 했고요. 그리고 14년에 고소를 하셨죠? 고발을 하셨죠?

네.

Q. 피해자 가족 단체에서. 그러면 5년 전에도 검찰 수사가 시작될 수 있었고 2년 전에도 검찰 수사가 시작될 수 있었는데 왜 이제 와서 검찰 수사가 뒤늦게 시작이 됐을까? 그런 안타까움, 아쉬움, 분노 같은 게 있으실 것 같습니다.

네. 저는 처음에 질병관리본부가 이 발표를 하고 나서 그 해에 다 모든 게 해결이 될 줄 알았어요. 근데 이게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전혀 그런 것도 없고 점점 저희 이런 아픈 상처가 점점 작아지는 게 보여서 속상하고 답답하고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올해 들어서 뒤늦게라도 이렇게 올해라도 마무리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실은.

Q. 그리고 제가 오늘 두 분 모시기 전에 얘기를 들었는데 어머님이 집안 사진을 찍었는데 무슨 가습기 살균제를 예전에 쓰셨던 사진인가요? 그게 사진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저렇게 저게 다른 조금 전에?

저게 소송을 준비하는데 영수증도 있어야 되고 증거 가습기 통이 있냐고 저한테 물어보시더라고요. 7년이 지났는데 누가 주방세제 쓰면서 그 통 모아두시는 분 없잖아요. 영수증을 누가 모아놔요, 영수증도 몇 개월 지나면 다 글씨가 날라 가는데. 증거를 찾아야 된다기에 혹시 해서 성준이 앨범을 뒤지다가 저 사진을 보고서 처음에는 증거 찾았다 다행이다, 이 생각이 들었는데 그 안에서 웃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 저 상황에서 내 자식을 내 손으로 서서히 망가트려 놓고 있었으면서 저렇게 웃고 있었네, 그걸 보고 나니까 더 마음이 아팠어요.

Q. 저 사진이 몇 년도 사진입니까?

2003년 12월 24일이요.

Q.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성준군이 이런 호흡곤란 증세나 이런 고통은 없었을 때?

없었어요.

Q. 만약에 저때라도 알아서 저 제품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면 지금 성준군이 이 산소호흡기가 없어도 됐을 거라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렇죠. 네.

Q. 어쨌든 간에 아까도 제가 들어오시기 전에 잠깐 보도를 드렸습니다만 이제 피해자 유족과 환경단체가 옥시 영국 본사를 살인 등의 혐의로 영국 검찰에 고발하겠다, 이렇게 밝혔습니다. 오늘 출국했는데요. 이런 내용들은 다 알고 계셨습니까? 서로.

저희는 피해자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저희 피해자 분들하고 몇 분이서 영국 가려고 준비를 워낙에 하고 있었어요. 이 기자회견을 하기 전부터. 저희는 다 떠나서 정말 다른 거 필요 없이 정말 우리 아기들 영정사진 가지고 우리 성준이 사진 가지고 영국 가서 그 앞에서 저희가 저희 정말 이 억울한 것, 이 아픈 사연들 알리고 싶어서 가려고 했었어요. 갈 거고요.

Q. 그렇다고 한다면 이렇게 질문을 한 번 드려볼게요. 그쪽 움직임은 또 움직임대로 지금 있는 것이고 어머니께서 생각하시는 우리 검찰 수사 어떻게 진행 됐으면 좋겠는지 그리고 정부는 우리 피해자 가족들 또 이미 사망한 피해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정부는 어떻게 해줘야 우리 피해자 가족들이 그 조치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런 부분을 한 번 말씀을 해주십죠. 어렵게 결심하셨으니까 그걸 분명하게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지금 5년 넘게 정말 잘 될 거라고 생각하고 국회에도 많이 참여하고 많이들 도와주시는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솔직히 저희는 너무 힘이 없어요. 저희끼리는 할 수가 없더라고요. 해보니까. 근데 그 해에 잘 될 줄 알았는데 너무 점점 이게 잊혀지고 잊혀지고 하고 있어서 걱정도 많이 되고 답답한 마음도 많았는데 어떤 분들은 지금도 검사님 믿지마 믿어서 뭐해? 또 뻔 하지 않겠어?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도 있어요.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근데 저는 검사님을 어제도 뵙고 왔어요. 저희 부장검사님 뵙고 왔는데 제가 가서 성준이 얘기를 하면서 우리 피해자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너무 억울한 얘기들을 하고 있으면 같이 우세요. 검사님이. 그래서 저희가 그랬어요. 너무 감사하다고. 정말 늦었지만 늦게나마 저희들 위해서 이렇게 해주시는 거 너무 감사하고 저희 얘기 들어주시는 분이 계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어요. 저희가. 그리고 한 번 더 저희가 기대해보겠다고 얘기를 했어요. 검사님 믿어보겠다고 했어요.

Q. 검사님 성함이?

저희 부장검사님이요? 이철희 검사님.

Q. 이철희 부장검사님. 언론에도 보도가 된 기사 저도 봤고

네. 어제 갔다 왔는데 가면 저희가 그렇게 하소연을 하는 거지만 같이 울고 계시면 오히려 저희가 울지 마세요, 할 정도로 그렇게 너무 감사해요. 저희는 솔직히.

Q.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같이 울어준 이철희 부장검사님을 믿고 싶고 그래서 검찰이 이번에 제대로 꼭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주기를

해주신다고 하셨어요. 믿으라고 하셨어요. 자기가 늦게나마 핑계일지 모르겠지만 늦게나마 이렇게 하게 돼서 죄송하지만 올해는 저를 믿어봐 주세요, 하셨어요. 저희한테.

Q. 그리고 저도 사실 언론에서 기자로 오랫동안 일했습니다만 사실 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관련해서 언론에도 조금 아니 많이 서운하실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그거는 말 안 하고 싶어요.

Q. 하여튼 저희 언론도 검찰도 이제 뒤늦게 수사가 시작이 됐고 또 이제 관련해서 정부의 조치 또 저희 기자들도 이제 옥시 뿐만 아니라 다른 제품을 쓴 피해자도 있다, 이게 옥시만 수사가 끝나선 안 된다.

당연하죠. 제가 옥시 피해자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옥시 피해자라서 옥시를 위해서만 제가 투쟁하는 거 아니에요. 다 같이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피해자인데 그걸 왜 나눠요? 나누면 안 되죠.

Q. 그러니까 단 한 명의 피해자도 소외받지 않고 정부의 엄정한 수사 또 정부의 적절한 조치 이런 것들로부터 단 한 명의 피해자 가족도 소외 받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런 말씀?

저희가 억울해서 울지 않고 그나마 이게 어떤 저희한테 충분한 보상일지 어떤 뭐든 간에 한다한들 그 가족을 보낸 사람들이 상처가 아물진 못해요. 성준이가 그 전에 건강한 애로 돌아가지 않는 한 저도 상처가 이게 아물지 못해요. 하지만 그나마 그래도 좀 편하게 웃을 수 있을 만큼의 그런 자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Q. 네. 검찰도 정부도 저희 언론도 피해자 가족들이 원하시는 만큼 되도록 더 열심히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성준군이 제가 궁금한 거는 정말 평생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건가요? 아니면 나중에 좀 호전될 가능성이 있는 건가요?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지금도 선생님이 성준이를 3개월씩 봐주시지만 나빠지지 않게. 장기들도 지금 성준이가 폐로 인해서 심장약을 먹고 있어요. 폐동맥 고혈압이 있어서. 이렇게 폐로 인해서 다른 장기들이 나빠지는 것을 나빠지지 않게 유지시켜주는 것 외에는 폐는 스스로 좋아지지 않는 한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Q. 성준군이 사실 제가 보기에는 오늘이 평일이고 이래서 학교에 원래는 갔어야 될 시간이 아닌가, 몸 상태 이래도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는 얘기 들었는데 어떻게?

그거는 작년부터 학교를 매일 가게 됐는데 오늘이 워낙 학교 체육대회 하는 날이었거든요. 성준이가 가서 요즘에 또 성준이가 제일 하고 싶은 게 피구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하고 같이 뛰어 놀고 싶은데 못하고.

Q. 성준군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좀 많이 아쉬웠겠어요? 학교에 가서 체육대회에서 피구도 하고 싶었는데 성준군은 할 수가 없는? 아침에 그래서 엄마한테 뭐라고 말했어요?

아무 말 안 했어요.

Q. 아무 말 안 했어요?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에 아예 포기를 해요. 떼 써봤자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에 산소 때문에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에 아휴 나도 하고 싶은데 에이~ 이러고 말고 나는 오늘 뭐하지?

Q. 성준군은 학교에서 제일 재미있는 시간이 어떤 시간이에요?

없어요.

Q. 특별히 재미있는 시간은 없고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뭐가 되고 싶다는 우리 성준군의 꿈이 있을까요?

꿈이요?

Q. 어떤 꿈을 갖고 있어요?

화가요.

Q. 화가? 아까 그림도 그렸는데 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뭐예요?

그건 모르겠어요.

Q. 잘은 모르겠는데 화가가 되고 싶다. 그래서 좋은 그림 잘 그려서 보면 기분도 좋고 그랬으면 좋겠다 이거죠? 우리 성준군이 화가가 꿈이라는 건 어머니는 알고 계셨어요? 알고 계시겠죠. 당연히.

그게 성준이가 일반 애들처럼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제한이 많이 되니까 요즘에 미술치료를 다니고 있으니까 그림 그리는 시간이 많으니까 재미있고 화가 돼야지, 그렇게 된 거예요.

Q. 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우리 임성준군 그리고 어머니 권미애씨 모시고 얘기 나누어 봤습니다. 성준군 오늘 힘든 발걸음 이렇게 무서운 산소통 들고 SBS까지 와주셔서 고맙고 지금 밝게 웃어주니까 제 마음도 조금은 나아지는데 앞으로도 건강하게 화가의 꿈도 꼭 이룰 수 있도록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길 바라고요. 어머님 정말 오늘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Q. 고마워요.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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