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사라져가는 기업가 정신 / 취업난에 떠밀리듯 창업… 사회안전망 없어 실패 걱정부터
사상 최악의 취업난 속에 등 떠밀리듯 창업에서 대안을 찾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국내 벤처기업 수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취업에 실패한 청년이나 노후 대비를 위한 중장년층의 생계형 창업이다. 창업벤처는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의 핵심이자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이지만, 도전과 모험을 통해 새 기회를 찾으려는 고유의 기업가 정신이나 벤처 정신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GEDI)가 발표한 ‘2016 글로벌 기업가정신 지수(GEI)’에서 한국은 27위에 머물렀다. 2015년보다 한 단계 올라섰지만 칠레(16위), 이스라엘(21위) 등에도 밀릴 정도다.
전문가들은 저성장, 저소비로 대표되는 ‘뉴노멀 시대’ 성장 한계에 봉착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래 성장동력을 키워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선 도전정신에 입각한 벤처정신의 본질을 살리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취업하기 힘들어 창업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해 12월 한·중·일 3국 대학(원)생 5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창업환경 및 창업인식 조사에서 향후 진로로 ‘창업’을 선호하는 한국의 대학(원)생은 6.1%에 불과했다. 78.8%는 ‘취업’을 원했다. 중국 대학생들이 취업(38.5%)보다 창업(40.8%)을 더 선호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한국 대학생들이 창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취업의 어려움’(30.2%)이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서’(30.2%)와 함께 가장 많았다. 취업난으로 인해 등 떠밀리듯 창업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아울러 실패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사회 분위기나 관련 제도 미흡도 문제다. 창업을 꺼리는 이유로 한국 학생들은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38%)을 가장 많이 꼽았다. 여기에 창업했다가 실패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것도 벤처정신이 배양되기 힘든 현실을 낳는다.
N15의 허 대표는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청년들이 창업 후 실패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실패하면 패배자, 낙오자로 낙인찍히고 받아주는 곳도,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규제의 벽에 무너지는 벤처정신
정부는 창조경제를 기치로 벤처 창업 지원을 위해 해마다 수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제 벤처자금 조성에 있어 정부 지원은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허 대표는 “정부가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벤처 육성에 금전적 지원을 많이 하는 것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굳이 창업을 안 해도 되는 사람까지 너도나도 뛰어들다 보니 실패율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창업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돈이 아니라 규제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에서 드론 산업 육성책을 한창 만들던 지난해 여름 드론 개발 막바지 단계에 이른 건국대 대학생팀은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는 항공법상 드론을 하늘에 띄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반면 영국 정부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그들에게 워킹비자를 내주고 연구할 사무실과 드론 시운전을 할 수 있는 소규모 비행장까지 빌려줬다고 한다.
박종일 착한텔레콤 대표는 “과거에는 삐삐나 집전화를 만드는 회사가 여러 곳이었는데 이제는 전파법 등의 규제로 사실상 기존 사업자만 휴대전화를 만들 수 있다”며 “반면 중국은 스마트폰 개발회사만 몇 백개가 있고 그 치열한 경쟁에서 샤오미 같은 회사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신규사업자는 진입조차 하기 힘들어 이 좁은 내수시장에서조차 제대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데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우리나라는 법과 규제는 명시적으로 허용돼 있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네거티브 방식이어서 과거에 없던 상품이나 서비스 모델을 만들었을 때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탓할 게 아니라 창의성 죽이는 교육, 도전 막는 규제에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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