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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청년이 미래다] 도전과 모험? 실패하면 나락… 재기 힘든 '청년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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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사라져가는 기업가 정신 / 취업난에 떠밀리듯 창업… 사회안전망 없어 실패 걱정부터

“제가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창업한다고 했을 때 외국인 친구들은 ‘드디어 성공했구나’, ‘미혼인데 뭐가 걱정이니’, ‘넌 잘 해낼 거다’라고 축하하고 격려해 주더군요. 하지만 부모님을 비롯해 한국 지인들은 대부분이 ‘너 결혼은 안 할 생각이냐’며 걱정을 하다 보니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죠.” 스타트업의 창업과 해외진출을 도와주는 엑셀러레이터 기업 N15의 허제 대표는 4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사회의 기업가 정신이나 벤처 정신을 이야기하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벤처 정신이나 기업가 정신을 키울 시스템과 문화가 미흡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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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취업난 속에 등 떠밀리듯 창업에서 대안을 찾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국내 벤처기업 수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취업에 실패한 청년이나 노후 대비를 위한 중장년층의 생계형 창업이다. 창업벤처는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창조경제의 핵심이자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이지만, 도전과 모험을 통해 새 기회를 찾으려는 고유의 기업가 정신이나 벤처 정신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GEDI)가 발표한 ‘2016 글로벌 기업가정신 지수(GEI)’에서 한국은 27위에 머물렀다. 2015년보다 한 단계 올라섰지만 칠레(16위), 이스라엘(21위) 등에도 밀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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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저성장, 저소비로 대표되는 ‘뉴노멀 시대’ 성장 한계에 봉착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래 성장동력을 키워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선 도전정신에 입각한 벤처정신의 본질을 살리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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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하기 힘들어 창업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해 12월 한·중·일 3국 대학(원)생 5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창업환경 및 창업인식 조사에서 향후 진로로 ‘창업’을 선호하는 한국의 대학(원)생은 6.1%에 불과했다. 78.8%는 ‘취업’을 원했다. 중국 대학생들이 취업(38.5%)보다 창업(40.8%)을 더 선호하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한국 대학생들이 창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취업의 어려움’(30.2%)이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서’(30.2%)와 함께 가장 많았다. 취업난으로 인해 등 떠밀리듯 창업에 나서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아울러 실패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 사회 분위기나 관련 제도 미흡도 문제다. 창업을 꺼리는 이유로 한국 학생들은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38%)을 가장 많이 꼽았다. 여기에 창업했다가 실패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것도 벤처정신이 배양되기 힘든 현실을 낳는다.

N15의 허 대표는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청년들이 창업 후 실패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실패하면 패배자, 낙오자로 낙인찍히고 받아주는 곳도,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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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의 벽에 무너지는 벤처정신

정부는 창조경제를 기치로 벤처 창업 지원을 위해 해마다 수천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제 벤처자금 조성에 있어 정부 지원은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허 대표는 “정부가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벤처 육성에 금전적 지원을 많이 하는 것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굳이 창업을 안 해도 되는 사람까지 너도나도 뛰어들다 보니 실패율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창업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은 돈이 아니라 규제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에서 드론 산업 육성책을 한창 만들던 지난해 여름 드론 개발 막바지 단계에 이른 건국대 대학생팀은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는 항공법상 드론을 하늘에 띄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반면 영국 정부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그들에게 워킹비자를 내주고 연구할 사무실과 드론 시운전을 할 수 있는 소규모 비행장까지 빌려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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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일 착한텔레콤 대표는 “과거에는 삐삐나 집전화를 만드는 회사가 여러 곳이었는데 이제는 전파법 등의 규제로 사실상 기존 사업자만 휴대전화를 만들 수 있다”며 “반면 중국은 스마트폰 개발회사만 몇 백개가 있고 그 치열한 경쟁에서 샤오미 같은 회사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신규사업자는 진입조차 하기 힘들어 이 좁은 내수시장에서조차 제대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데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우리나라는 법과 규제는 명시적으로 허용돼 있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네거티브 방식이어서 과거에 없던 상품이나 서비스 모델을 만들었을 때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탓할 게 아니라 창의성 죽이는 교육, 도전 막는 규제에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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