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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독] 무개념 불법공문에 학교장들 버젓이 '불법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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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이 용역노동자 직접 관리하도록 안내… 전형적 '불법 파견'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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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산하 학교장들에게 버젓이 '불법 파견'을 하도록 안내하는 공문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최근 전국 대부분의 초중등학교는 과거 이른바 '소사'로 불렸던 시설관리노동자 대신 용역업체에 외주를 맡겨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역시 2007년 민간위탁을 시작해 현재 서울 220여개 학교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이 전등을 고치고, 우편물이나 서류를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CBS가 단독 입수한 2016년도 학교시설 민간위탁관리 안내 공문을 살펴보면 곳곳이 불법투성이 지침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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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산하 교육시설관리사업소가 보낸 이 공문에서는 학교장을 용역업체 측 팀장과 나란히 용역직원을 지휘할 '감독관'으로 적시하고 있다.

또 학교장이 행정실에 출근부를 두고 용역노동자의 출퇴근과 휴무일, 연휴 등을 직접 정하고 관리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심지어 학교장이 직접 용역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업무 수행과 강도, 노동 시간까지 직접 지시하도록 했다.

이처럼 사용주가 직접 용역노동자에게 구체적인 업무를 지시하거나 노무를 관리하면서도 간접고용을 유지하는 것은 전형적인 불법 파견이다.

지난 2007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을 놓고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내려진 뒤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사용주의 직접 지시가 불법이라는 사실은 상식처럼 자리잡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손쉽게 불법파견을 저지를 수 있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학교장들이 관리하기 까다로운 직접고용 노동자를 해고하고 용역업체에 일을 맡긴다는 점이다.

2014년 8월부터 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에 직접고용됐던 정모(48)씨가 바로 이같은 손쉬운 불법파견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경우다.

지난 2월, 정씨는 별다른 이유없이 계약 연장이 거부됐고, 정씨가 맡았던 일은 함께 일하던 용역업체 직원들의 몫으로 넘어갔다.

정씨는 "6개월만 더 일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데, 별다른 설명도 없이 계약연장이 거부됐다"며 "남은 용역직원들도 학교장의 한마디에 갑자기 갑절은 일이 늘어난 셈 아니냐"고 답답해했다.

하지만 정작 공문을 직접 보낸 교육청 산하 시설관리사업소는 해당 공문의 내용이 불법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사업소 관계자는 "그런 조항이 불법인지 몰라 법률 자문을 받아봐야겠다"면서 "예전부터 전임자가 보냈던 공문을 참고해서 안내하다 실수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어 "거점학교에 머무르며 여러 학교를 관리하는 시설관리팀장이 일일이 업무를 지시할 수 없어 각 학교의 교장이 직접 지시하도록 절차를 간소화한 것 뿐"이라며 "업무 범위 자체는 용역업체와의 근로계약서에 나와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교육청 담당자마저도 "공문 내용대로라면 불법 파견이 맞다"고 인정하면서 "공문 내용은 전적으로 사업소 측에서 작성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다"고 책임을 넘겼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용주의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행위"라며 "명백하고 전형적인 불법파견"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송예진 노무사는 "원청인 학교장이 관리하는 사업장인 학교에서 하청 노동자를 직접 관리하는 것이 바로 불법 파견"이라며 "사용주가 구체적인 업무 지휘, 노무관리를 하려면 직접고용하라는 것이 법의 취지"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교육청이 발표한 상시 지속 업무 25개 직종에서 시설관리직이 제외됐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라며 "아무런 문제의식도, 불편도 없이 불법파견을 저지른 바람에 수많은 직접고용직이 해고되고, 용역업체가 이를 대체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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