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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라운드업]'폐기 위기' 일본 평화헌법을 지켜라...일본 개헌 논란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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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헌법’으로 일컬어지는 일본의 헌법이 시행된지 3일로 69주년을 맞았다.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헌법기념일’을 맞아 일본에서는 개헌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펼쳐지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7월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 이후 본격적인 개헌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개헌은 아베 총리의 ‘꿈’=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의 교전권을 포기하고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현행 평화헌법의 핵심 조문인 9조를 개정, 정식 군대를 보유한 ‘보통국가 일본’을 만드는 것은 아베 총리의 오랜 꿈이다. 이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용의자 출신으로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전 총리의 염원이기도 하다. 수많은 일본 우익 역시 오랜 세월 같은 꿈을 꿔왔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총리 등 다수의 개헌파들은 현행 헌법이 연합군최고사령부(GHQ)의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이 ‘패전국’이라는 약자 입장에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이라고 이들은 강변한다. 이들은 개헌을 통해 ‘자주헌법’을 만들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일본이 이른바 ‘전후체제(2차대전의 패전국으로서 받아들인 평화헌법 체제)’에서 탈피하는 길이라고 보고 있다.

경향신문

아베 신조 일본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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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헌법 9조’의 개정=아베 총리가 추구하고 있는 개헌의 최종 목표점은 헌법 9조를 바꾸는 것이다. 헌법 9조의 내용은 ‘전쟁 포기’가 그 핵심이다. 여기에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9조 2항에는 “육해공군,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헌법 9조의 내용때문에 일본 헌법은 ‘평화헌법’으로 일컬어진다.

일본은 그러나 이런 헌법 조항에도 불구하고 사실상의 군대인 ‘자위대’를 갖고 있다. 상당수의 헌법학자들은 자위대의 존재 자체가 위헌이라고 지적한다. 자위대의 위헌성에 대해서는 개헌추진파들도 인정한다. 그들은 이 위헌소지를 개헌추진의 이유로 돌리기도 한다. 아베 총리도 “헌법학자의 70%가 위헌이라고 하는 상황을 그대로 둬도 되느냐”면서 ‘위헌 가능성을 없애는 것’을 개헌 추진의 이유로 제기한 바 있다.

■먼저 긴급사태 조항부터=아베 정권의 최종 목표는 ‘평화헌법’을 폐기하는 것이지만, 당장 헌법9조의 개정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평화헌법을 버리는 것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저항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7월 참의원 선거 이후 우선 ‘긴급사태 조항’ 등을 헌법에 추가하는 식의 ‘약식 개헌’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들의 저항이 크지 않는 부분부터 개헌을 추진함으로써 국민들의 개헌에 대한 저항감을 줄여나가겠다는 것이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제기되기 시작한 긴급사태조항 추가 주장은 이번 구마모토(熊本)지진 이후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정권은 긴급사태 조항 등을 추가하는 ‘맛보기 개헌’에 성공하고 나면 교전권을 부정하는 헌법 9조를 바꾸는 ‘본격 개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정권이 추진하고자 하는 개헌안의 모습은 자민당이 야당 시절이던 2012년 내놓은 개헌안초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자민당의 ‘일본국헌법개정초안’을 보면 군대를 당당하게 만들어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자민당의 헌법개정초안 9조는 ‘우리나라(일본)의 평화와 독립, 그리고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국방군을 보유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육해공군 등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갖지 않는다’는 현행헌법 9조의 내용은 삭제됐다.

■아베 정권, 개헌 추진 가능한가=아베 정권이 헌법 개정에 나서기 위해서는 개헌안 발의요건인 중의원 및 참의원 소속 의원 3분의 2 확보가 필요하다. 아베 정권은 중의원에서는 자민·공명 등 연립정권을 통해 이미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참의원에서는 전체의석(242석)의 3분의 2(162석)에 훨씬 못미치는 134석만 확보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공명 등 연립여당과 그 이외의 개헌 추진 세력을 모아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의석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베 총리는 “여당만으로 참의원에서 3분의2 의석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다”며 “개헌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미래를 향해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과 3분의 2를 구성해 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어 “자민당·공명당 이외에도 오사카유신회 등 개헌에 적극적인 정당이 있다”면서 향후 개헌세력으로 끌어들일 1차 상대가 오사카유신회임을 숨기지 않았다.

아베 총리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3분의 2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 중의원을 해산한 뒤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의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카드도 꺼낼 수 있다. 양원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거대선거판’을 만들어 야당들이 후보조차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침몰하는 상황을 연출, 중·참의원에서 동시에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야당, 개헌만은 막겠다=민진·공산·사민당 등 야당은 아베 정권이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발의 요건을 갖추는 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겠다고 벼르고 있다.

경향신문

오카다 가쓰야 일본 민진당 대표


안보법 폐기를 위해 공동보조를 취해온 야권은 이번 선거에서 야권 후보의 단일화 등을 통해 힘을 모은다면 아베 정권이 3분의 2 의석을 가져가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1야당인 민진당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대표는 지난달 28일 한국 언론의 도쿄특파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에서 3분의 2 의식을 획득하는 것을 막는 것을 목표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진보 진영과 야당들은 기본적으로 아베 총리의 헌법관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일본 헌법이 GHQ의 영향 하에서 만들어진 헌법임에는 틀림없지만 일본의 의사가 배제된 채 강요당한 것은 아니며, 특히 헌법 9조는 전후 70여년간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때문에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도쿄|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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