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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특파원칼럼]힐러리와 ‘올드보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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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최근 발표한 외교정책 구상은 철저한 고립주의 노선으로 1970년대 이전의 전통적인 미국 우파 외교정책으로 회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트럼프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주자 버니 샌더스, 현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정책에서도 관찰된다. 최근 만난 샌더스 캠프의 한 보좌관은 트럼프의 외교기조는 큰 틀에서 샌더스나 오바마의 생각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현재 민주, 공화 유력 주자 중 미국 외교가 개입주의 노선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유일한 후보는 오바마 밑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클린턴이다. 그는 오바마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이란과의 핵협상에 소극적이었으며 존 케리 당시 상원의원을 밀사로 활용하는 것도 못마땅해했다. 힐러리는 이란이 핵합의를 깨면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2011년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군사개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힐러리는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시리아 내전에 대해서는 공화당의 대표적 매파 상원의원 존 매케인, 린지 그레이엄과 함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자고 주장했다. 오바마 정부의 두 가지 외교 업적인 쿠바 관계개선과 이란 핵합의가 모두 힐러리가 물러난 뒤에 이뤄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를 싫어하는 공화당의 네오콘 성향 인사들이 차라리 힐러리를 찍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화당원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네오콘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 로버트 케이건은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되면 힐러리를 지지하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네오콘 성향의 잡지인 위클리스탠더드의 편집장 빌 크리스톨은 트럼프가 후보가 되면 11월에 투표장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강경한 개입주의자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공화당) 밑에서 일했던 한 보좌관은 아예 짐을 싸서 힐러리 캠프로 옮겼다.

힐러리는 어떻게 해서 자타가 공인하는 매파가 되었을까. 군사개입에 대한 그의 관점은 남편이 대통령이던 시절 보스니아, 르완다 내전 인종학살을 막기 위한 개입이 늦어져 재앙을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보면서 형성됐다는 설명이 있다.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자서전 <길 위의 내 삶(My Life on the Road)>에서 힐러리 지지를 선언하며 밝힌 일화다. 백악관을 떠난 뒤인 2002년 힐러리는 보스니아 내전 때 인종청소로 고통을 받은 여성들의 증언에 기초한 이브 엔슬러의 연극 <필요한 목표물(Necessary Targets)>을 관람하고 패널 토론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여성들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말하기 전에 빌 클린턴 행정부가 군사개입을 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는 반성을 해야만 했다.

힐러리가 미국 정치권의 주류 중 주류로서 유대인 자본과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반영하도록 길러진 워싱턴의 모범생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1993년부터 대통령 부인, 상원의원, 국무장관 생활을 하면서 워싱턴 주류의 문법을 가장 잘 배운 학생이다. 공화당 경선에서 밀려난 다른 모범생인 마르코 루비오 등이 살아남았다면 힐러리는 ‘가장 강경한 매파’라는 꼬리표를 달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힐러리와 달리 유대인 로비단체에 잘 보이기 위한 연설을 거부하고, 처음부터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자기 판단이 옳았음을 강조하는 민주당 경쟁자 샌더스의 존재가 힐러리의 그런 입장을 더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여성평화운동 단체 코드핑크의 메데아 벤저민의 말이다. “힐러리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에 마지막 남은 유리천장을 깨는 사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수십년간 항구적인 전쟁상태로 몰아넣었던 ‘올드보이’들의 군산복합체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워싱턴|손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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