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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사형폐지 7번째 무산 ①] 또다시 원점 ‘사형제’…존재 이유를 재차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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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야 법사위, 사형폐지 법안 처리 안하고 회기 종료할 듯

- 내년은 마지막 사형집행 이후 20년 되는 해…“소모적 논란 끝내야”



[헤럴드경제=양대근 기자] “처음 2분 동안은 가족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와 반성으로 또 2분이 지납니다. 마지막 1분 동안은 ‘살고 싶다’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스물여덟 살에 사형 선고를 받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형이 집행되기 직전 5분 동안 가졌던 솔직한 심경이다. 극적으로 유배형이 확정돼 형장의 이슬을 면한 그는 남은 평생을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사형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로 꼽힌다. 하지만 인권 침해와 오판 가능성 등을 이유로 20세기 이후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공식적인 폐지가 이뤄져왔다. 한국 역시 사형제도 자체는 존재하지만 지난 1997년 이후 집행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아, 국제엠네스티는 한국을 ‘실질적 사형폐지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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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존폐 논란이 여전이 뜨겁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뭔가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야 할때도 됐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사진은 교도소 이미지.국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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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에 대한 존폐 논란이 여전히 뜨거운 가운데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사형 폐지 법안’이 사실상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정치권에서 20년 가까이 이어진 작업이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3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유인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172명의 국회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한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은 오는 29일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999년 첫 발의 이후 일곱 번째 폐기가 되는 것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당 관계자는 “사형제는 워낙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건드리기가 힘들 것 같다”며 “이번 회기에서는 사실상 힘들다고 본다”고 밝혔다. 야당 관계자 역시 “여야가 무쟁점 법안 중심으로 처리를 하자고 합의한 상황이다. 노력은 해 보겠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야당 관계자도 “법사위 전체회의가 이제 한 차례 남았는데 (사형제를) 처리하자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특별한 변수가 없는 이상 이번 회기 통과는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에서 사형제 찬반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찬성론자들은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인권보다는 무고한 피해자들의 생명권 보호가 우선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에 사형제가 존재해야 흉악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유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폐지론자들은 인간의 생명을 어떤 이유로든 국가가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국가에 살인권을 부여할 정당성이 없고, 법원을 비롯한 사법기관의 오판을 시정할 기회를 영원히 없앤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헌법재판소는 사형제와 관련된 두 차례 심리에서 모두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1999년 11월에는 재판관 7대 2로, 2010년 2월에는 5대 4로 합헌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헌재는 합헌 여부에 관계없이 사형제도의 존폐는 입법부가 결정할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민 여론은 사형제 존치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이 발표한 ‘2015 국민 법의식 조사’에서 사형제 폐지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65.2%에 달했다. 변호사들 역시 아직은 사형제 존치 의견이 우세하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변호사 1426명을 대상으로 사형제 존폐를 설문한 결과 53%인 752명이 사형제도 유지에 찬성했다.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47%(671명)로 집계됐다.

특히 내년은 한국에서 마지막 사형이 집행된 이후 20년 되는 해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이제는 소모적인 논란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형 대신 ‘감형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자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이원경 숭실대 외래교수(법학 박사)는 “형벌의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면 사형제도의 존폐와 관계없이 절대적 종신형의 도입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이 경우에도 현재 사형을 선고하는 것 이상으로 부득이하고 불가피한 경우에 극히 예외적으로 선고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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