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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인간 존엄" vs "인과응보" 다시 폐기 앞둔 사형폐지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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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스포츠나 취업 전선에만 '오뚝이 정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법안에도 '7전8기'가 있습니다. 매번 폐기되지만 새 국회가 열리면 다시 발의되는 '7전8기법안'들의 의미와 사연을 the300이 들여다 봅니다.

[[the300][7전8기법안 열전①-사형폐지특별법안](1)15대 때부터 5번 발의와 폐기 반복…20대 국회선 '여소야대' 지형 변수]

'테러방지법' 처리를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지난 3월2일 밤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 선 유인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형폐지 법안 얘기를 꺼냈다. 20대 총선 공천에서 경선배재돼 이날이 사실상의 마지막 본회의 발언이었다. 그는 "172명이 낸 법안이 상임위에 계류된 채 그대로 폐기를 맞는다는 거 문제 있지 않느냐. 총선이 끝나고 나서 4월이라도 법사위에서, 전원위에 모여서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을 호소했다. 유 의원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형수였고, 17대 때와 19대 국회에서 두 번이나 사형 제도 폐지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던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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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의원의 호소에도 사형제도 폐지법안은 한달이 채 남지 않은 19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다시 폐기의 길을 걸을 전망이다. 15대 국회 때 처음 발의된 이래 5번째 발의와 폐기가 반복되는 셈이다. 사형폐지 논의가 국회에서 헛바퀴 돌고 있는 것은 '생명 존중'과 ''인과응보' '범죄억제'라는 찬반 논리가 팽팽한데다 국민적 민감도가 커 쉽사리 결론내기 어려운 탓이다.

◇15대 때 첫 발의, 5차례 발의-폐기 반복= 우리나라의 사형제도 폐지 법안은 15대 국회 때인 1999년 유재건 의원 등 91명이 처음 발의했다. 이후 16대 때는 정대철 의원 등 63명이, 17대 때는 유인태 의원 등 175명이 서명한 법안이 발의됐다. 18대에는 박선영 의원 등 39인, 김부겸 의원 등 53인, 주성영 의원 등 10인이 각각 서명한 3건의 폐지 법안이 나왔고, 19대 때는 유인태 의원이 자신의 두번째 사형제도 폐지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들 법안들은 모두 소관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그나마도 상임위 법안소위에서 논의가 이뤄진 것은 지난 17대와 18대 두 차례 뿐이다. 19대 국회에서는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차원에서 지난해 11월 공청회를 개최했지만 역시 후속 논의가 이어지지 못했다.

◇"인간 존엄" VS "인과응보" 팽팽한 찬반 논리 =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쪽은 이 제도가 비인도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 든다. 국가가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전제로 살인행위를 중범죄로 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국가에 의한 인간 생명의 박탈을 제도적으로 허용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사형 제도가 교화 등 형벌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며, 위하력(잠재 범죄인에 대한 위협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힘)이 미흡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적으로 남용될 우려가 있고, 결과를 돌이킬 수 없어 오판으로 인한 구제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사형 제도의 폐해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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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존치론자들은 헌법재판소가 이미 지난 1996년 합헌 판결을 내린 점을 든다. 당시 헌재는 생명권은 일반적 법률 유보의 대상이 되는 상대적 기본권이므로 그것이 비록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해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다수 의견을 채택했다. 다만 당시 7대 2 였던 합헌 비율은 2010년 헌재 결정 때는 5대4로, 위헌 의견이 재판관 9명 중 4명으로 늘어났다. 사형제도가 흉악범이 죄값을 물게 하고 그로 인해 또다른 흉악범죄를 예방하는 응보와 위화력이 있다는 점도 든다. 사형을 대체할 만한 형벌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존치론의 논거다.

논리가 팽팽한데다 양측이 논거 중에 서로 충돌하는 대목도 적지 않아 한쪽 손을 들어주기가 더 어렵다. 위헌 여부는 헌재가 두 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위헌 의견이 4대 5까지 접근해 있고, 위하력에 대해서도 효과가 있다는 쪽과 없다는 쪽의 실증 자료들이 공존하는 실정이다. 사형 제도 존치 여론이 대체로 우세한 것도 폐지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는 배경이다. 지난 2월 한국법제연구원이 발표한 '2015 국민 법의식 조사'에 따르면 사형제 폐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34.2%에 그쳤다. 반면 사형제 폐지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65.2%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여소야대' 국회 지형 변화, 변수될까= 사형 폐지 법안은 20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될 가능성이 높다. 사형제 폐지 소신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적지 않은데다 법안이 처리될 경우 역사적인 법안의 발의자라는 기록도 갖게 된다. 현재로선 20대에서 다시 발의가 되더라도 역시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국회 지형이 바뀌었다는 점은 변수다. 현재의 야당인 진보 정당 소속 의원들이 대체로 사형 제도 폐지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사형 폐지 법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법무부 등 정부의 반대도 걸림돌이었다"면서 "여소야대 국면에선 이전과는 다른 논의 양상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진상현 기자 jis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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