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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살균제 비극, 엄마·언니 수술받던 때 동생의 숨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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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주영이네 가족, 3명이 폐질환

5년전의 악몽

엄마와 5살·1살 딸 차례로 입원

5살 주영이는 폐와 심장을

엄마는 폐를 이식받았다

그사이 막내 장례식이 치러졌다

고통은 진행형

주영이는 신장까지 이식받고

학교 다닐수 있게 됐지만

10가지 넘는 약을 달고 살며

아직도 뛰놀수 없는 아이다


한겨레

2일 낮,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의 기자회견 도중 산소호흡기를 단 피해자 윤정혜씨가 기침을 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옥시레킷벤키저사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의 최고경영자 라케시 카푸르 등 8명의 이사진을 형사고발한다고 밝혔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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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10)양은 올해 초등학교 4학년이다. 겉으로 보기엔 또래 아이들과 별다를 게 없지만, 전양은 5살 때인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폐와 심장이식, 신장이식 등 남들이 평생 한번 받을까 말까 한 큰 수술을 잇달아 받았다. 전양의 키는 120㎝로 또래보다는 좀 작지만, 몸무게는 다른 아이들보다 좀 많이 나간다. 치료를 위해 사용한 스테로이드제의 영향이다.

전양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다. 롯데마트가 판매한 자체 브랜드(PB)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가 전양 가족 4명 중 3명이 폐 질환을 얻었다. 동생은 태어난 지 1년 만에 숨졌고, 어머니도 폐 이식 수술을 받은 뒤에야 일상을 찾았다. 동갑내기들과 함께 학교에 입학했지만, 각종 후유증 때문에 수차례 병원을 드나들던 전양은 올해 들어서야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이 정도 회복된 것만 해도 다행이고 감사해요. 하지만 2011년부터의 고통을 생각하면 억울하고 답답하죠.” 전양의 어머니 백현정(36)씨가 지난 5년을 떠올리며 말했다.

전양 가족의 폐에 이상이 생긴 건 2011년 초다. 전양의 동생 진주(당시 1살)양이 폐렴 증상을 보였고, 전양이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다가 뒤따라 입원했다. 두 아이를 돌보던 어머니 백씨도 이내 병원 신세가 됐다. 세 가족은 폐렴도, 감기도 아닌 폐섬유화 등 롯데마트 가습기 살균제 속에 들어 있던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유발한 질환을 앓고 있었다. 백씨와 전양은 산소 순환을 돕는 의료기기인 에크모를 이용해 급한 고비를 견디며 폐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막내는 끝내 숨을 거뒀다. 수술을 받고 있던 전양과 엄마는 막내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2011년 전양의 폐 이식 수술은 국내에선 처음 소개된 어린이 폐 이식 사례다. 폐 이식 뒤 전양의 상태를 살펴본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 호흡기알레르기과 유진호 교수팀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이식 수술을 한 지 3년 후에 실시한 아이(전양)의 폐 기능 검사에서 비교적 양호한 결과가 얻어졌다”며 “폐 이식 수술 후에 뒤따르기 쉬운 폐 고혈압, 폐쇄성 세기관지염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식한 폐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자리잡았지만, 전양은 여전히 후유증과 합병증을 막기 위해 10가지 넘는 약을 먹으며 버틴다. 앉는 것조차 힘들었던 상태에서 이제는 걸을 수 있는 정도가 됐지만, 달리기는 언제부터 가능할지 알 수 없다.

2013년 7월부터 2015년 4월까지 보건복지부와 환경부 등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피해자 가운데 성인 사망 비율은 27.8% 정도였던 반면 19살 이하 소아의 사망 비율은 47.5%에 달했다. 유 교수팀은 “성인과 달리 어린이의 경우 이식에 적합한 폐를 찾기 어려워 수술 성공률이 낮다. 게다가 장기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에크모와 기계적 환기장치 등에 의존해야 하는데, 장치를 장착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식 수술 뒤 ‘다(多)장기 부전’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위험도 높다”고 밝혔다. 실제로, 5일 만에 이식할 폐를 구한 백씨와 달리 전양은 몸에 맞는 폐를 찾기 위해 100일가량 에크모에 의존하면서 장기가 크게 손상됐다. 장에 호스를 꽂아 영양을 공급받아야 했고, 신장도 망가져버려 투석에 의존하다가 지난해 11월에야 새로 이식을 받아야 했다.

“5년 동안 우리 가족은 이미 많은 것을 잃었어요. 그래도 잘 버텨준 주영이를 보며 (다른) 피해가족들도 희망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백씨가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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