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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한국형 양적완화 논란①]한국은행, 왜 '국민적 합의' 내세워 제동 걸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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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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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발권력 동원도 결국 국민부담, 특정산업 지원 타당한가"

"발권력 무분별 사용하면 가혹한 대가, 특정산업 지원 나쁜 선례도"

【서울=뉴시스】조현아 기자 = 부실기업 구조조정 위한 재원 마련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거센 '한국형 양적완화' 요구에 한국은행이 '원칙론'으로 맞수를 뒀기 때문이다. 한은이 '국민적 합의'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며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정부·여당에 이어 청와대의 전방위적 공세로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방안이 국책은행 재원확충의 유력한 수단으로 거론됐지만, 한은의 '반기'로 반전을 맞게 된 모습이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한은이 공식적으로 부정적 의사를 밝힌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먼저 특정 산업에 돈을 몰아주는 데에 국민의 세금을 부담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발권력을 동원하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정당성 논리와 절차적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형 양적완화(QE)는 유럽과 일본 등 디플레이션 위기에 놓인 국가에서 실시하는 일반적인 양적완화와 목적과 방식부터 다르다.

한국형 양적완화는 경기부양 목적을 위해 시중에 돈을 푸는 것이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특정 부분에만 돈을 메워주자는 논리다. 한은의 발권력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한 출자나 채권 매입 등을 통해 국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손실을 대비할 수 있게 재원을 확충해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국책은행 역시 부실기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중앙은행이 먼저 나서 뒷처리를 해주는 게 옳은 일이냐는 점이다. 국책은행의 자회사 매각 등 재원 확충을 위한 노력들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발권력 동원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떻게 보면 실패한 기업에 돈을 지원하는 것인데 그에 상응하는 원인 진단과 자구 노력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상 세금으로만 메우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무자비하게 쓰면 나중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화량 조절로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한은이 국민적 동의를 구하지 않고 돈을 풀어 특정 분야를 지원하는 것은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발권력 동원은 한은의 고유 권한이지만 국민의 세금 부담이 뒤따르는 점에서 철저한 원칙 하에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돈이 풀리면 화폐가치가 떨어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저물가 상황인 만큼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질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훗날 구조조정에 실패했을 경우 국민 세금을 쓰게 했다는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는 점에서 한은으로서는 발권력 동원이 마뜩잖은 일이 될 수 밖에 없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만약 산은 채권 등을 매입했다가 문제가 생기게 되면 세금으로 메우게 될텐데 그렇게 되면 그때는 정부가 아닌 한은이 '왜 산은을 도와줬느냐'는 국민적 시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부실기업 지원을 위해 돈을 쓰려면 국회의 동의를 바탕으로 하는 정부 재정으로 하는게 맞고,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하더라도 국민적 합의를 거쳐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한은의 논리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가 지난달 29일 "아무리 시급해도 정당한 절차를 거치는게 중앙은행의 원칙"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은이 나설 만큼 경제 상황이 위기인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한은은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부실채권정리기금 채권 등을 사들여 구조조정을 뒷받침한 적이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와 금융시장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만큼 긴박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주열 총재도 지난달 19일 통화정책방향 기자설명회에서 "현재 금융시장의 상황을 보면 구조조정의 재원을 조달하는 데에 큰 애로가 없는 상황"이라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원이 필요하다면 현재 한은이 갖고 있는 정책으로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정부가 발권력을 좌우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것도 한은 입장에선 속이 편할 리가 없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뒤흔드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도 불만이 새어나온다. 한은 노동조합은 "국책은행 부실은 정부 책임인데 비난을 피하기 위해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저열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면 앞으로도 기업이 생겨나고, 망하는 반복적인 상황이 계속될 텐데 그 때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특정 산업을 지원해달라는 요구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hach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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