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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재활용산업 먹이사슬의 끝에서 살아가는 ‘폐지 줍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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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에서 차들이 달려왔다. 김진성씨(가명·77)는 3차선 도로 가장자리로 리어카를 바짝 붙이고 달렸다. 맞은편의 차들이 김씨 옆을 가까이 스쳐 지나갔다. 김씨가 달리는 속력과 걷는 속력은 실상 별 차이가 없었다. 펴지지 않는 굽은 허리, 떨리는 팔과 다리는 조급한 마음만큼 속력을 내지 못했다. 마주오는 차들에 대한 두려움에 지친 몸을 억지로 끌 뿐이었다. 800m의 차도를 뛰어 김씨가 도착한 곳은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한 고물상. 이제야 한숨 돌리려나 싶은데 지친 얼굴에 다시 낭패감이 역력하다. 커다란 덤프트럭이 고물상에 들어가려는 김씨를 막아서며 들어오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으로 김씨가 서 있자 고물상 직원이 나왔다. 직원은 트럭을 후진시키고 김씨의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으로 들어갔다. 건강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폐지를 수거하러 다니는 김씨에게 이 도시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은 두려운 장벽이고 힘겨운 고비다. 겨우 긴장을 푼 김씨는 고물상 한편의 의자에 앉아 직원이 상자들의 무게를 재는 것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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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머니가 폐지를 리어카에 싣고 운반 중이다. / 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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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빈 리어카를 이끌고 고물상을 나온 시간은 오후 4시20분. 아침 7시부터 시작된 하루의 고된 노동이 그제야 끝났다. 폐지를 수거하기 위해 김씨는 하루에 버스 네다섯 정거장 되는 거리를 두세 번씩 리어카를 끌고 왔다갔다 한다. 그렇게 해서 김씨가 손에 쥐는 돈은 대략 5000원. 폐지 1㎏당 50원 정도다. 한 달에 20만원 정도 번다. 아내는 근처 식당에서 청소일을 도와주면서 한 달 30만~40만원의 돈을 번다. 70대 노부부는 낡은 몸을 부려가며 월 50만~60만원의 돈으로 겨우겨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는 김씨만의 일이 아니다. 김씨가 고물상에 폐지를 가져다 준 시각 전후로 네다섯 명의 노인이 깡통이 가득 든 자루와 폐지가 담긴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을 찾았다. 고물상 주인에 따르면, 하루 두세 번씩 폐지를 팔러오는 김씨 같은 노인을 포함해 하루 100명 정도의 노인이 폐지나 재활용품을 들고 찾아온다. 그나마 인근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동네를 떠난 노인들이 많아 줄어든 숫자다. 재개발이 되기 전에는 하루 150명에서 200명의 노인들이 폐지나 재활용품을 내다 팔았다.

지난 4월 20일 서울연구원은 <폐지수집 여성노인의 일과 삶>(소준철, 서종건)이라는 제목의 ‘작은 연구, 좋은 서울’ 보고서를 발간했다. (‘작은 연구, 좋은 서울’은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서울시의 정책과는 다를 수 있다) 보고서는 노인들의 폐지 수거를 노동과 직업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노인들의 폐지 수거는 “정책과 제도의 빈틈이 만들어낸 일종의 변종 직업”이라고 말한다. “단독주택이나 다세대·다가구 주택이 밀집한 공간은 폐지수집 노인들의 작업공간이자 일터다. 도시가 비대해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다세대·다가구 주택과 좁은 골목들은 공공영역이 침투하는 데 한계가 발생한다. 다시 말해, 그(녀)들은 정책과 제도가 미처 닿지 못한 문 앞과 골목까지 찾아와 방치된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수거한다.” 폐지 수거 노인을 바라보는 일반 주민의 시선에도 이들의 일을 미화원과 같은 ‘직업’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었다. 보고서에서 인용한 한 지역 주민의 말이다. “할머니들이 있기 때문에 동네가 깨끗해져요. 사실 할머니들이 힘들게 일하는 건 맞지만, 널브러진 쓰레기가 없는 건 그분들 덕이지요. 그래서 고시원에서 발생하는 쓰레기 가운데 재활용 가능한 것들은 모두 고시원 옆의 골목에다 내놓습니다. 유리병 같은 경우는 바로 앞 슈퍼에다 같이 내놓습니다.” 소준철 연구원은 “(지역주민의) 배출자로서의 의무를 폐지수집 노인들이 대신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 연구원은 “폐지수집 노인들은 ‘자원순환 정책’ 혹은 ‘재활용품 산업’으로도 불리는 산업의 끄트머리 어딘가에 위치한다”고 말하며, 그런 만큼 “폐지수집 노인을 제도권으로 포섭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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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고물상에서 모아온 폐지의 무게를 재고 있다. / 정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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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폐지를 수거해 고물상에 내다 파는 모습은 이제는 어느 동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남기철 동덕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많은 노인들이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는데, 노인 복지정책은 미비하고 노인 일자리마저 턱없이 부족한 상황 등이 맞물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폐지 수거 노인이 동네에 등장하고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중반이다. 지난 20년 동안 보편적인 현상이 돼버린 ‘폐지 수거 노인’에 대해서 한국 사회는 어떤 대책을 마련해 왔을까. 안타까운 사회현상으로만 주목됐을 뿐, 정부나 지자체에서 이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나 정책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15년 발표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만 65세 노인 1만27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현재 일을 하고 있다는 노인은 28.9%였다. 이 조사에서 일이란 조사시점으로부터 일주일 기간 중에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 일한 경우를 의미한다. 이 가운데 폐지 수거일을 하고 있다는 노인은 전체 일하는 노인 인구의 4.4%로 집계됐다.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이지만, 폐지 수거 노인들에 대한 국가적 혹은 지자체의 실태조사는 아직 없다. 2011년 이봉화 전 관악정책연구소‘오늘’ 소장이 쓴 ‘관악구 재활용품 수거 어르신들의 생활실태와 개선방안’이 유일하다. 이 소장은 “당시 보고서를 발표하고 나서 지자체, 정치권, 관료층에서 관심을 많이 보였다. 그때 만났던 기획재정부 고위관료는 해당 인구에서 5%가 되면 정책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말했었다. 당시 관악구 내 고물상 30개를 조사해 127명의 폐지 수거 노인들을 찾았었다. 한 지역의 예로 모든 걸 볼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정책이 필요한 수준이라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관악구 재활용품 수거 어르신들의 생활실태와 개선방안’을 근거로 폐지 수거 노인들이 처해 있는 보편적인 실태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거 노인들 중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는 노인들이 46명(36.2%)이었다. 폐지가 가게나 가정에서 불규칙하게 여기저기서 배출되므로 수거구역을 하루 종일 계속 돌아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석 내용이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 명절 등을 제외하면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응답한 노인이 76명(60.8%)이었다. 노인빈곤이 심해져 폐지 수거 경쟁도 그에 따라 치열해지면서 하루라도 쉴 경우 생계에 위협이 오고 경쟁자들에게 수거 구역이나 단골가게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에 응답한 폐지 수거 노인 대다수(90.6%)의 한 달 수입은 40만원 이하였다. 가장 많은 수가 응답한 수입액은 46명(36.2%)이 응답한 10만~20만원이었다. 너무 낮은 수입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무엇보다 시급했다. 이들은 위험에도 노출돼 있었다. 교통사고 경험자만 19명(14.9%)이나 됐다.

이 전 소장의 선행연구가 발표되고 나서 지자체에서는 이 전 소장의 연구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정책으로 진척된 것은 없었다. 부서별로 제각각 문제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폐지 수거 노인의 문제는 노인일자리, 환경, 노인복지 등이 한데 얽혀 있는 문제인데도 각각의 입장에서 단순하게만 접근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이 되지 못했다. 이봉화 전 소장의 말이다. “당시 서울시에서만 세 군데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노인복지 관련부서, 쓰레기 및 환경 관련 부서, 시니어 노동과 관련된 부서에서도 따로따로 연락이 왔다. 정책 방향에 동의가 다 안 되다 보니 같이 정책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환경 관련 부서에서는 폐지 수거 노인의 문제를 비용절감 측면에서만 바라봐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노인들의 폐지 수거라는 비공식 노동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비용 절감을 노린다는 입장이었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으로 노인들에게 지금의 환경미화원의 일을 하게 하고, 환경미화원을 점차적으로 줄여 비용을 줄인다는 접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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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3년부터 실시된 재활용 정거장이다. 문 앞에서 수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지정된 수거장소에 분리배출을 하는 것이다. 재활용정거장은 사회취약계층 일자리 확충, 공동체 의식 함양 등의 취지를 내세운다. 그러나 재활용정거장이 폐지 수거 노인들의 일자리 문제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기존의 저소득층 폐지 수거 노인을 재활용 정거장을 관리하는 자원관리사로 취직을 시킨다는 것인데, 선발하는 자원관리자의 수는 턱없이 적다. 소준철 박사의 말이다. “재활용정거장에서 선발하는 관리직이 2명 정도다. 폐지 수거 노인을 위한 일자리라고 보기에는 역부족이다. 재활용정거장은 수거의 역할을 주민에게 전담시켜 오히려 관에서 수집을 편하게 하기 위한 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봉화 전 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관악구의 재활용정거장을 보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활용정거장에서 일주일에 두 번 수거하는데 사람들이 이 제도를 잘 안 따른다. 그래서 기존 쓰레기 수거 방식과 재활용정거장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폐지 수거 노인들을 제도권 내로 끌어올 수 있는 방안으로 협동조합 방식이 제시되기도 했다. 2012년 은수미 의원은 ‘재활용 협동조합과 녹색일자리 모색’이라는 국정감사 정책자료에서 ‘재활용 협동조합’을 사회적 취약계층인 폐지 수거 노인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제안한다. 하지만 현실이 간단하지는 않다. 이봉화 전 관악정책연구소 연구소장도 당시 할머니들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다. “당시 연구소에서 ‘폐지 수거 노인분들을 조사하면서 할머니들과 함께 협동조합 방식으로 고물상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극빈층, 저소득층 할머니들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 당장 정기적으로 보조금이 얼마가 늘어나느냐가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재활용 협동조합으로 성공한 사례들을 보면 저소득층 중에서 청·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또 다르다.” 협동조합의 형식은 무엇보다 자발성이 중요한데, 하루하루가 버거운 빈곤노인의 세대적·계층적 특성상 이를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소준철 박사는 이번 연구를 진행하면서 할머니들을 접촉했다. 그러나 현장 연구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새벽 4~6시에 할머니들이 일을 하러 간다. 더 이르게는 2~3시에 나서기도 한다. 경쟁이 심해서다. 위험한 시간대다. 이렇게 불안과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는 할머니들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거부하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봉화 전 소장의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특성이 간략히 언급돼 있다. “(폐지 수거의 어려움을 묻는 질문에) 어려운 점을 말하기는 하나, 대부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계셨고, 해결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바라는 점 또한 말씀하시기는 하나 크게 기대하거나 요구의 강도도 세지 않았다.” 김병국 노년유니온 부위원장은 “힘들어서인지 지역에서 만나는 폐지 수거 노인들은 말을 좀처럼 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의 특성, 관점이 다른 다수의 관계부처들, 고물상·지역주민·폐지 수거 노인 등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엮여 있어 폐지 수거 노인의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소 연구원은 이번 보고서에서 재활용정거장을 현행 재활용센터처럼 거래 개념이 포함되는 공간으로 재구성할 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고물상과 재활용정거장의 협력관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고물상이 비인가 시설인 상태이고, 이조차 시 외곽으로 이전하겠다는 방침이 결정된 상황에서 고물상과 재활용정거장의 협력관계 구축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2010년 정부가 도심지에 고물상 사업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담은 폐기물 관리법을 개정하면서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고물상들이 늘고 있다. 고물상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면서 불똥이 폐지 수거 노인에게 튀었다. 고현종 노년유니온 사무처장의 말이다. “환경부가 폐기물과 자원재활용을 구분하지 않아 집에서 내놓은 분리수거물도 폐기물 대상이 됐다. 폐기물을 취급하는 고물상들은 폐기물 처리업자가 되면서 시설기준이 까다로워졌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 도심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고 도시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폐지 줍는 노인들이 폐지를 주워서 리어카에 실어 변두리까지 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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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수거 노인에 대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의 목소리가 높아가지만, 현재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선뜻 아무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폐지 수거‘가 제도권 노동으로 들어왔을 경우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점이 발생할 수도 있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폐지 수급이 제도권 내로 들어오게 되면 “기초수급권자는 그 대상에서 아예 소외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현종 노년유니언 사무처장은 “얼마 안 되는 기초수급으로 생활이 어려운 노인 기초수급권자 중에 몰래 폐지를 수거하러 다니는 경우가 꽤 많다. 구청이나 지자체 공무원들이 돌아다니다가 이를 적발해 수급비에서 해당하는 금액만큼 깎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봉화 전 소장은 “제도 운영이 항상 그렇다. 전혀 뜻하지 못한 데서 피해를 입는 취약계층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런 것을 감안해서 재활용산업이 공공화되게 하는 게 필요하다. 재활용산업이 먹이사슬의 제일 마지막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지적으로 쓰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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