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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IF] 아츄! 널 보면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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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사이언스 샷] '봄의 불청객' 꽃가루…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민낯

새로 나온 과자 아니면 초콜릿일까. 색색이 예쁜 알맹이들이 가득하다. 봄날 세상을 온통 환하게 만든 꽃에서 나온 꽃가루다. 전자현미경으로 찍었다. 사진에서 축구공 같은 무늬가 있는 가장 큰 게 나팔꽃의 꽃가루이다. 지름이 0.1㎜(100㎛)쯤 된다. 맨눈으로는 먼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 안에 이리도 아름다운 세상이 있었던 것이다.

꽃가루는 식물의 생식기관인 꽃의 수술, 그중에서도 꽃밥에서 만들어진다. '스포로폴레닌(sporopollenin)'이라는 단단한 단백질 껍질 안쪽에 정자가 들어 있다. 꽃가루 속 정자는 암술의 난자와 만나 수정한다. 바로 꽃가루받이다. 꽃이 아름다운 것도, 달콤한 꿀이 가득한 것도 모두 벌과 나비를 유혹해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까지 전달하기 위해서다. 꽃가루가 수정되면 과일과 곡식으로 여물어 인류를 먹여 살린다.

설사 수정에 실패한 꽃가루라도 인류에겐 소중하다. 꽃가루는 껍질이 워낙 단단하고 양도 많아 화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학자들은 꽃가루 화석을 통해 과거 지구의 기후와 식물상을 알아낸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상헌 박사는 "경기도 지역의 5000~6000년 전 지층에서 지금 제주도나 남해안에 사는 상록성 난대식물의 꽃가루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 지역이 아열대기후였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석유 탐사에도 꽃가루가 유용하다. 탄소와 수소, 산소로 구성된 꽃가루는 보통 밝고 투명한 연노란색이다. 사진의 꽃가루는 실제와 다른 색을 나중에 입힌 것이다. 온도와 압력이 올라가면 가벼운 수소가 떨어져 나가고 최종적으로 탄소만 남아 어둡고 불투명한 검은색으로 변한다. 이상헌 박사는 "원유가 가장 경제성이 있을 때는 꽃가루 화석이 중간 단계인 진노란색을 띤다"고 말했다.

범죄 수사에도 도움을 준다. 과학수사 요원들은 시신에서 발견한 꽃가루가 근처에 있는 꽃에서 온 것인지 먼저 조사한다. 이를 통해 사망자가 현장에서 사고를 당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죽어 옮겨진 것인지 알 수 있다. 만약 용의자의 옷에 시신에서 나온 특이한 꽃가루가 붙어 있었다면 수사망을 좁힐 수 있다.

이처럼 이로운 존재이지만 봄철에는 알레르기의 주범으로 원망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모든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벌과 나비가 즐겨 찾는 꽃에서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꽃가루가 나온다. 사진에 있는 꽃가루들이 대부분 그렇다.

이에 비해 꽃이 예쁘지 않고 잎과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식물은 꽃가루받이에 곤충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자작나무, 참나무, 느릅나무 같은 식물에서는 머리카락 절반 굵기인 평균 0.03㎜(30㎛)의 매우 작은 꽃가루를 만들어서 바람에 날려 보낸다. 이게 호흡기에서 걸러지지 않고 우리 몸 안으로 들어와 과도한 면역반응을 부른다. 알레르기 비염은 못생긴 꽃이 일으키는 셈이다. 꽃가루 알레르기는 봄이 지나도 나타난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종인 돼지풀은 여름에 0.02㎜(20㎛) 정도 작은 꽃가루로 알레르기를 유발한다. 이래저래 밉상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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