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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부모에게 얹혀사는 '리터루족' 늘어 중대형 아파트 다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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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찬밥 신세 벗어나는 '큰 집'

#1. 박모(35·남)씨는 결혼 4년 만에 다시 부모와 함께 살게 됐다. 맞벌이인 박씨는 2년 전 아이가 생기자 부모가 사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 같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1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59㎡(이하 전용면적)형 전셋집에 3억8000만원을 주고 들어갔다. 그런데 7월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이 전셋값을 7000만원 올려 달라고 했다. 고민 끝에 박씨는 부모와 한집에 살기로 했고 같은 단지 112㎡형으로 이사했다.

부모가 살던 84㎡형 시세는 6억5000만원, 112㎡형으로 옮기려면 1억2000만원이 필요했다. 부족한 돈은 박씨가 전셋집을 빼서 보탰다. 전세보증금을 받아 새집에 보태고 대출을 다 갚고도 1억원 정도 남았다. 박씨는 “대출이자에 아이 양육비까지 버거웠는데 이제 숨통이 좀 트인다”며 “시부모와 함께 살아야 하는 아내가 걱정이지만 1년 동안 매일 아침 아이를 맡기고 밤에 찾아오는 생활에 지쳤는지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했다.

#2.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사는 신모(58·여)씨는 이사한 지 1년 만에 다시 새집을 찾고 있다. 신씨는 지난해 둘째 딸이 결혼하면서 113㎡였던 집을 72㎡로 줄였다. 딸 두 명이 모두 결혼해 남편과 둘이 지내기엔 집이 컸기 때문이다. 집을 줄이고 남는 자금으로 퇴직한 남편과 해외여행을 다니며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즐길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지난해 큰딸이 아이를 낳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혼자 아이 보기 버겁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찾아왔다. 퇴근한 사위와 함께 아예 자고 가는 날도 많았다. 여기에 올 초 둘째 딸이 임신을 하자 신씨는 이사 결심을 굳혔다. 신씨는 “집 안에 아이용품이 하나 둘 늘기 시작하는 데다 같이 살지 않아도 7명이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감당이 안 된다”며 “적어도 방 4개에 120㎡는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서울 미혼 10명 중 6명 캥거루족

부모와 사는 기혼자 5년새 4배 늘어

집 줄인 은퇴세대 다시 중대형으로


중앙일보

쌍용건설이 개발한 리모델링 평면. 전용 84㎡형을 110㎡형 복층형(오른쪽)이나 3베이(아래)로 바꿔 2세대가 살거나 임대를 주고 월세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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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얹혀사는 이른바 ‘캥거루족’이 늘어나면서 찬밥 신세였던 전용 85㎡ 초과 중대형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내 집 장만’은 대다수 성인의 꿈이었다. 내 집을 산 이들의 다음 목표는 ‘큰 집으로 갈아타기’였다. 임채우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인구 대비 주택보급률이 낮았기 때문에 집주인 눈치를 보지 않는 내 집은 삶의 중요한 목표였고 여기에 큰 집은 이른바 성공한 인생의 상징과 같았다”고 말했다.

중대형이 찬밥 신세가 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주택시장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큰 집이 직격탄을 맞았다. 집값이 비싼 데다 관리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수요도 줄었다. 주택시장 주력층인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한 영향이 컸다. 자녀를 분가시키고 퇴직까지 한 이들이 비싼 비용을 치르며 계속 큰 집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들은 퇴직 후 30~40년을 더 살아야 하지만 자산이 집 한 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집을 줄이고 차액을 노후 생활비에 보태려는 것도 이유”라고 말했다.

| 소형 평형 인기 끌어 값 많이 올라

서울 평당 가격 중대형이 더 싸져

건설사들도 세대분리형 평면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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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육아 등의 이유로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 자녀가 늘면서 큰 집에 새삼 관심이 몰리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전용 244㎡ 거실. [사진 각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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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성인이 되고도 부모 품에 머무는 자식이 늘자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미혼 청년층(25~34세) 10명 중 6명이 부모와 함께 사는 캥거루족이다. 여기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부모와 함께 사는 기혼 자녀인 신캥거루족은 5년 새 4.2배 증가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력이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난의 장기화, 임대차 시장의 월세화로 주거비용이 크게 늘었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경제적 여력이 없는 젊은 층이 독립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여기에 연일 어린이집 폭행이 이슈화하면서 육아를 위해 부모에게 돌아오는 기혼 자녀가 늘어난 것도 이유”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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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육아 등의 이유로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 자녀가 늘면서 큰 집에 새삼 관심이 몰리고 있다. 경기 고양시 장항동 킨텍스 원시티 120㎡ 거실. [사진 각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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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중대형 공급이 적었던 것도 한몫 거든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07년 전체 신규 분양단지의 36.5%를 차지했던 중대형은 지난해 7.6%에 그쳤다. 지난해 분양한 새 아파트 51만6000여 가구 중 중대형은 3만9000가구에 불과했다.

가격 부담도 줄었다. 그간 전용 60㎡ 이하 소형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2009년 강남구 소형 아파트 값은 중형보다 3.3㎡당 624만원 쌌지만 지난해 되레 346만원 비쌌다. 6년 새 소형이 3.3㎡당 2690만원에서 4218만원으로 뛰는 사이 중대형은 3314만원에서 3872만원으로 오르는 데 그쳤다. 마포구 소형 아파트도 2009년 중대형보다 655만원 쌌지만 지난해 409만원 더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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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육아 등의 이유로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 자녀가 늘면서 큰 집에 새삼 관심이 몰리고 있다. 경기 시흥시 시흥배곧 한라비발디 119㎡형 세대 분리 공간. [사진 각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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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이렇자 건설사도 이들의 입맛에 맞는 평면 개발에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대림산업·GS건설·한라 등은 세대분리형 평면을 개발했다. 한 집 안에 사실상 두 집이 있는 구조다. 출입문은 물론 주방·화장실 등이 별도로 있고 전기·수도계량도 각각 할 수 있다. 대부분 큰 공간과 작은 공간으로 쪼개고 아예 층을 나눠서 쓰는 복층형도 있다. 이런 움직임은 리모델링에도 반영되고 있다.

쌍용건설은 84㎡형을 110㎡형으로 리모델링할 경우 65㎡와 45㎡로 나눠 설계하는 평면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쌍용건설 김용균 차장은 “작은 공간을 임대한다면 리모델링에 드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함께 살지 않아도 육아 등을 이유로 많은 시간을 부모 집에서 보내는 실질적 3세대 가구가 늘어나고 있어 이런 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랑스선 ‘탕기’ 이탈리아선 ‘맘모네’ 캐나다선 ‘부메랑 키즈’라 불러

요즘 성인이 돼서도 부모 품을 떠나지 못하는 젊은 층(18~34세)이 증가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취직을 못해서, 집값이 비싸서, 육아 때문에….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선 캥거루족이 대표적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미혼 자녀를 뜻한다. 결혼 후 부모와 동거한다면 신캥거루족이다. 독립해 살다가 다시 부모와 함께 사는 이들은 리터루(Return+Kangaroo)족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에선 이들을 어머니가 해 주는 음식에 집착한다는 뜻의 맘모네(Mammone)라고 한다. 프랑스에선 탕기(Tanguy)라고 부른다. 독립하지 않으려는 20대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탕기’에서 유래했다. 영국에선 키퍼(Kid in Parents Pocket)라고 한다. 부모 주머니 속의 아이란 뜻이다. 캐나다에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집에서 생활한다는 의미로 부메랑 키즈(Boomerang Kids)라고 부른다.

일본은 취업난에 35세가 넘어서도 부모와 함께 사는 중년 캥거루족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40세가 넘어서도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구하는 자식과 이에 부담을 느끼는 부모 간 법적 분쟁이 연 8000건에 이른다.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최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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