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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한은의 반란…‘양적완화’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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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시급하더라도 정당한 절차 거쳐야…국민적 합의 필요”

‘정부 발권력 동원 주장’ 공개 비판…박 대통령 레임덕 현실화

한국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한국판 양적완화’ 주장에 대해 “아무리 시급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측의 한은 발권력 동원 움직임에 한은이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4·13 총선에서 참패한 박근혜 정부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보는 29일 통화신용정책 보고서 브리핑 중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윤 부총재보는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해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라며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활용해 재정의 역할을 대신하려면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구조조정 과정에 필요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해 재정을 쓰기보다 한은이 새로 돈을 찍어 국책은행에 대한 출자나 채권 인수 등의 형식으로 지원해주길 바라고 있다.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려면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야당이 협조해줄지도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한국판 양적완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데 이어 이튿날 국무회의에서도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선별적 양적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발권력 동원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만 거치면 되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선 빠르고 쉽게 쓸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국회 동의를 구하는 예산 편성이라는 정공법 대신 손쉬운 방법에 기대는 것이자, 대기업 지원을 위해 국민이 부담을 떠안는 전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은이 ‘국민적 합의’를 강조한 것은 결국 대기업 지원에 한은의 돈을 쓰려면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은 갖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회적 비판을 담고 있다.

윤 부총재보는 “기업 구조조정을 포함한 구조개혁이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필수적 과제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할 정도로 시급한지에 대해선 여러 가지 견해차가 있을 수 있다”며 “아무리 시급하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보다 중앙은행의 기본원칙에 부합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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