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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10년이 지나 잊을만 하다는데… 엊그제 상처처럼 항상 가슴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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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연평해전 10주년… 전사자 4명의 아버지들

"전사 처리 천안함 비해 아들 처우는 지옥 수준"

지난 정부에 원망 깊어

HanKookI

제2연평해전 10주년을 하루 앞둔 28일 해군 전사자 유족들이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 인근 해군 콘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국민이 전사자들을 명예롭게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각각 고 서후원·황도현 중사, 윤영하 소령, 조천형 중사의 아버지인 서영석, 황은태, 윤두호, 조상근씨. 평택=김주성기자 poem@hk.co.kr


"형님, 요즘 술 많이 드셨다더니 얼굴은 더 좋으시네."

28일 오후 3시쯤 경기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 인근 해군 콘도 305호 쇼파에 4명의 중년 남성이 모여 앉았다. 제2연평해전에서 목숨을 잃은 고 윤영하 소령과 조천형ㆍ황도현ㆍ서후원 중사의 부친들이다. 서 중사의 아버지 서영석(59)씨가 조 중사를 먼저 보낸 조상근(72)씨에게 농을 치자 역시 아들을 가슴에 묻은 윤두호(69), 황은태(66)씨가 빙긋 웃었다.

이들이 자리를 함께 한 건 이튿날 해군2함대에서 거행되는 제2 연평해전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한일 월드컵 3, 4위전의 열기로 뜨거웠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357호에 기습 공격을 가했고 이로 인해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했다. 제2 연평해전이다.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하루와 다름없다. "자식을 보낸 부모들이 다 똑같겠지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납니다. 10년이나 지났으니 잊을 만도 하다고들 여기겠죠. 말로는 '이제 괜찮다'고 하지만 속마음은 엊그제 상처를 입은 것처럼 늘 아픕니다." 조씨는 망연히 창 밖을 바라봤다.

아들을 잃은 뒤 서씨는 '이중 생활'을 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남들이 볼 때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멀쩡한 척, 태연한 척했어요. 부부 간에도 서로 등 돌리고 누워 울었습니다. 각자 천장을 보고 눈만 껌벅거리기 일쑤였고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죠." 윤씨의 심경은 더 복잡했다. "안 그런(슬프지 않은) 척 살 수도 없고, 눈물만 짜고 살 수도 없었어요. 이래도 이상하고, 저래도 이상하니까요."

지난 정부에 대한 서씨의 원망은 깊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아들에 대한 국가의 보상은 야박했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은 당시 군인연금법에 '전사' 항목이 없다는 이유로 '공무상 사망자'로 처리돼 국가 보상금이 3,000만~6,000만원에 불과했다. "처우 면에서 제2연평해전이 지옥이라면 (46용사가 전사로 처리된) 천안함은 천당입니다." 이런 홀대로도 부족해 이에 항의하는 자신을 정부가 '구박'은 물론, '사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2007년 5월 2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자식을 낳고 키우고 가르쳐 군대 보낸 게 죄가 되느냐'고 따져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요즘 말로 '민간인 사찰'을 받기 시작했죠. 어디 갈 때는 행선지를 얘기하라는 요구를 경찰 관계자에게서 받기도 했어요. '요주의 인물'이 된 거죠."

이들이 가장 원하는 건 자식들이 명예로운 전사로 기억되는 것이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제2연평해전 기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소식에 서씨는 "대통령이 온다고 마당쇠가 하루 아침에 마님이 될 수 있느냐"며 시큰둥해 했다. 하지만 그는 "원망스러워도 어쩌겠어요. 어제는 미련했지만 오늘 현명하면 되는 거죠"라며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낙관을 드러냈다.

평택=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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